[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윤석열 정권의 몰락이 전국에 생중계된 날

‘국무독백’이 되고 만 윤석열 정부의 국무회의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고 있다. 국민은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는 모습에 두 번 놀라고 있다.

첫 번째는 몰락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른 데 놀라고 있다. 윤석열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 지 겨우 열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정권의 실패가 사실상 불가역적으로 예정됐기 때문이다. 임기 초반,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취임 후 10개월 무렵에는 윤 대통령 같은 비호감의 대명사로까지는 전락하지 않았더랬다.

두 번째는 몰락하는 원인이 너무나 허망한 점에 놀라고 있다. 야당이 정권의 치명적 급소를 효과적으로 야무지게 타격·공략한 것도 아니었다. 여권 내에서 천인공노할 초대형 권력형 비리가 발생한 것도 아직은 아니었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이 낳은 정무적 헛발질과 정책적 자충수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탓이다.

윤석열 정권이 왜 몰락하고 있는지는 오늘 오전 국무회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권이 자멸하는 광경을 대중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텔레비전 방송으로 친절하게 생중계한 사건은 아마 인류사를 통틀어 남한의 윤석열 정부가 필경 처음일 듯싶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외교 및 주 69시간 근무제와 관련된 대국민 해명을 손수 내놓을 필요성을 분명 뼈저리게 절감했을 터이다.

보통의 한국인은 직업적 운동가 수준은 아닐지언정 한민족의 고단한 역사와 한반도의 착잡한 지정학적 조건에 관한 서생적 문제의식을 터득하고 있기 마련이다. 한 개인에게 어느 게 이익이 되고, 어느 것이 손해가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인적 현실감각 또한 대다수의 평범한 한국인들이 충분히 체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1박 2일 일본 방문의 구체적 성과물이 도대체 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이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제공해준 것들은 현금에 가깝다. 일례로 일본의 악명 높은 전범 기업들이 물어줘야만 마땅할 일제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징용 배상금을 제3자 대위변제의 형태로 한국 회사들이 부담하게 생겼다.

반면, 일본 측이 한국 정부에 약속한 호혜적 조치는 언제 실제로 돈이 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흐릿한 어음의 성격을 띠고 있다. 금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그야말로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은 격이다. 더욱이 일본은 한국이 실효적으로 점유해온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부각시키는 일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방사능 물질에 오염됐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물들을 한국 시장에 판매할 절호의 기회마저 얻었다. 야구 한일전 참패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자국민들에게 윤석열은 제대로 '빅 엿'을 먹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장장 23분에 걸쳐 방일외교와 주69시간 노동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과의 굴욕 외교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주당 69시간 근로제도를 들고 나와 수많은 월급쟁이들과 임금 노동자들의 분노와 원성을 자초했다. 이 일에서는 윤 대통령 본인도 별로 자신감이 없었는지 즉시 발을 빼는 모양새였다.

그로 말미암아 주 69시간 근무제를 둘러싸고 윤석열과 용산 대통령실의 참모들과 고용노동부 공무뭔들 사이에 폭탄 돌리기가 지질하게 펼쳐지는 양상이다. 자기는 이 정책을 제안하지 않았다고 모두가 부랴부랴 발뺌하고 있다. 당장의 책임 추궁을 면하려는 목적의 치졸한 핑퐁 게임에서 진범은 대개 관계자들 가운데 제일 힘센 인물이기 쉽다.

대일 외교의 실패와 노동 현안에서의 성급한 돌출행동으로 인해 윤석열 정권은 반일자주를 외치는 NL(민족해방) 세력과 노동해방을 부르짖는 PD(민중민주) 계열을 결과적으로 대동단결시키고 말았다.

현재의 집권세력은 대통령 선거에서 고작 0.73 퍼센트의 간발의 차이로 탄생한 정권이다. 통 큰 연합전선을 도처에서 부지런히 구축·결성해 지지층을 꾸준하게 확대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숙청함으로써 2030 청년세대는 현 정권의 가장 강력한 비토집단으로 떠올랐다. 전임 문재인 정권과 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과도하고 상습적인 반일장사에 지독한 염증을 느껴온 필자 같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조차 윤석열 정권의 석연치 않은 일본 퍼주기에 짙은 의구심을 품은 상황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6할대에 재진입한 게 이상한 기현상이 전혀 아니라고 하겠다.

윤석열, 소통이 달인이 아닌 독백의 달인

윤석열 정권을 조기에 몰락시킨 주요 요소의 하나는 윤석열의 거대하고 고질적인 착각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엄청 설득력 있는 달변가라는 심각한 오판에 빠져 있다. 혼잣말을 소통으로 착시하는 오판에는 고시생 시절의 독특한 경험이 톡톡히 이바지해왔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의 윤석열이 혼자 1시간을 떠들면 후배 고시생들은 박자를 맞추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한 노릇 아니겠는가? 가난한 고시생들에게 주기적으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고기 사주는 돈 많고 인심 좋은 선배가 1시간쯤 혼자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하여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 정도 눈치가 없으면 주머니 가벼운 신림동 고시촌의 수험생들이 무슨 수로 허기진 뱃속에 푸짐하게 기름칠을 하겠는가?

1시간 모임을 진행하면 윤석열 나 홀로 59분간 장황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젊어서는 술값을 혼자 내도록 해주는 두툼한 지갑이었다. 나이 들어선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거의 단절 없이 연속되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이었다.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특유의 장광설을 또다시 선보이며 발언을 독점했다. 언론은 그가 23분을 이야기하며 국무회의 사상 최장 발언 시간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회의는 여러 참석자가 고루 의견을 주고받으려 하는 행사인 법이다. 사장 혼자 23분을 떠드는 낡은 폐습과 관행은 웬만한 기업체들에서는 진즉에 사라진 지 오래다.

회의에서 최고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지시, 아니 교시를 내리는 국가들이 물론 몇 개 잔존해 있기는 하다. 김정은의 북한, 습근평(시진핑)의 중국, 푸틴의 러시아가 그렇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해왔다. 문제는 그가 입으로는 한미일 연대를 말하면서도, 몸으로는 북중러 동맹의 일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대한민국 최고위급 관료들의 열띠고 진지한 토의가 벌어져야 옳을 국무회의가 대통령 일방이 본인만의 검증되지 않은 설익고 조야한 비과학적 신념들을 일방적으로 떠들썩하게 쏟아내는 ‘국무독백’이 돼버리는 엽기적인 진풍경을 국민들은 드디어 TV 생중계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23분에 달하는 윤 대통령의 신들린 듯한 독백을 목도한 전국의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 중 과연 몇 프로나 윤석열표 외치가 성공했음을 믿게 됐을까? 현 정권의 주 69시간 노동제가 올바르고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납득하게 되었을까?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에 걸었던 마지막 기대와 희망의 끈을 장장 23분에 걸친 윤석열의 독백을 두 눈과 두 귀로 직접 보고 들으며 깔끔하게 놓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통령의 23분의 요란한 독백이 가냘프게나마 존재해온 윤석열 정권의 회생 가능성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 ‘마의 23분’이 되고 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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