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訪日 외교 ‘화려한 포장, 속빈강정’

윤석열 대통령이 첫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12년 만으로 이틀간 ‘실무 방문’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공동기자회견에서 ‘구상권 청구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다”고 말하자,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3자 변제 해법 조치는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로 인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노력으로 평가한다”고 화색했다.

사진: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이번 한일정상 회담의 결과로, 경제측면에선, 일본 정부는 반도체 3종에 관한 한국의 수출 규제를 해제했고, 한국 정부는 이 문제의 WTO 제소를 철회했다. 그러나 ‘화이트 리스트’의 원상 복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안보 측면에선, 상호 동맹국도 아니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의 완전 정상화’를 선언하는 등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두고 여야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격돌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외교의 경제, 안보적 성과를 높게 평가하는 한편, 민주당은 “친일 외교를 넘어 숭일 외교”라고 비판하면서 “윤대통령은 지난 3·1절에도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했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과 정체성을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동북아 최대의 ‘미일 동맹’ 수반은 이번 방일에 실질적 답례 대신 옹졸한 선물을 마지못해 내놓았다. 일본 기시다 총리는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견제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강화는 시급하다”며, 일본이 의장국인 5월 히로시마 G7 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일 전후로 윤대통령의 전향적 대일 굴종외교에 4월 말에는 국빈 자격으로 초청해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으로 알려진다.

▶ 진정한 사과 부재 ‘형식적 수사’

윤석열 대통령은 금번 한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자평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8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8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기시다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매우 모호한 반응을 내놓았다. 즉, 구체적인 사죄나 반성은 일절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김대중-오부치 총리’ 선언문의 핵심은 “한일 정상은 이상 각 분야의 양국 간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기초는 정부 간 교류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간의 깊은 상호이해와 다양한 교류에 있다는 인식하에 양국 간의 문화·인적교류를 확충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일본의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심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문구가 포함된 바 있다.

지금 한국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은 그 유효성을 일본에 확인한 다음, 공동선언에 입각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선언을 편향적으로 해석하면서 일본의 움직임에 동조해 그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 뇌관이자 후폭풍 ‘과거사 문제’

한일 정상이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다짐했지만, 양국 간 갈등을 봉합할 해결책이 될지는 불투명하면서 새로운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뇌관이자 후폭풍은 과거사 문제이다.

사진: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무효와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무효와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3월 6일 한국 외교부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안을 발표한바 있다.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돈을 마련해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총 15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결정이다. 정부는 징용 피해자들이 끝까지 배상금을 받지 않을 경우, 법원에 공탁을 맡겨 채무를 소멸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점,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 불인정,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 배상이라는 사건 특수성을 감안해 법원이 제3자 변제 방식의 공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일절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들은 우리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가운데 생존자 3명 ‘일본제철의 이춘식 할아버지, 그리고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의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등 전원이 같은 뜻을 밝힌 것이다. 특히 양금덕 할머니는 “나는 절대, 금방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돈 안 받으려 합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법적 대응에도 돌입한 상태이다.

피해자들이 추심금 청구를 한 자산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자회사인 국내법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 주식회사의 금전 채권이다. 대리인단은 2021년 9월 해당 채권을 압류·추심할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을 받았고, 그 결정문은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에 송달됐다. 추심금 청구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해당 자산을 강제 집행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반발 여론도 점점 커지는 모양새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한일 정상회담 전후로 반대 집회와 기자회견을 잇달아 열고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단순히 해묵은 반일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 그리고 정의로운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상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한일정상회담은 3.1절 기념사와 굴욕적인 강제 동원 해법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에 면죄부를 주고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팔아먹은 대가로 얻어낸 것입니다.”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 해법과 관련해 필히 부족한 부분을 화답해야 하는데, 묵묵부답이어서 굉장히 유감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와 사죄일 것이고, 분노의 여론을 넘어 해당 기업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역사적 과오의 실질적 해소이다.

정부가 갈등을 봉합하겠다고 내놓은 해법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향후 일본이 무엇을 내놓을지, 그리고 한국이 무엇을 얻을지가 관건이다.

한일 양국정상은 “현재 전략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강화는 시급한 일이라는 점, 그리고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우호 협력 관계에 기반해 한일 관계를 더욱 더 발전시켜나가는 데 일치했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 간 의사소통을 활성화해 나가는 데 전폭 동의했다”

이런 대내외 선언문이 진정성을 담으려면, 미래의 역사에 과중한 채무를 남겨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민심과 역사’에 퇴행하는 미봉책 억지 봉합이 마치 최근의 건조한 날씨에 산불처럼 활화산으로 점화되는 것을 누구든 원치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지향점은 중국을 견제·포위하려는 미국을 편들며 결속을 다지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는데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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