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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복궁(景福宮)을 아십니까?
  • 이승식
  • 승인 2018.03.12 13:24
  • 수정 2018.03.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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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을 아십니까?

1392년 7월 16일 조선(朝鮮)을 국호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는 1394년 도읍을 서울로 천도하며 가장 먼저 종묘(宗廟)와 사직단을 짓고 궁전은 이듬해인 1395년에 완공, 10월 28일 입궐한 궁궐이 바로 경복궁(景福宮)입니다. 궁 이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시(詩)가운데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 부분을 발췌(拔萃), 왕실을 비롯한 온 나라 백성에게 큰 복을 누린다는 의미로 경복궁이라 지었답니다.

현 행정구역,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있는 경복궁은 1592년 조선 제14대 왕 선조 치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구들에 의해 궁 전체가 전소되었습니다. 이후 270년 동안을 경회루 돌기둥만이 잡초로 뒤덮인 황량한 궁터를 외롭게 지켜왔습니다. 선조 때부터 25대왕 철종 때 까지 폐허로 남아있던 궁터에 1865년 고종 치세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 건립공사를 2년에 걸쳐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완공시켰습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正門)입니다. 문 좌우로 높은 대좌를 만들고 상상속의 동물인 해태를 돌로 조각하여 올려놓았습니다. 경복궁을 축조한 뒤 잦은 화재가 발생하자 불의 성질을 가진 관악산(조산:朝山)의 화기가 궁궐로 침입, 화마의 피해가 크다는 풍수설을 당시에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방편으로 관악산에 우물을 파 동(銅)으로 만든 용을 집어넣는 한편 물을 다스린다는 해태를 조성, 궁궐 정문 앞에 놓았다고 전해집니다.

주 출입문, 광화문을 거쳐 흥례문을 지나면 영제교라는 돌다리가 있습니다. 세 칸으로 구분된 다리 위 중앙은 왕 만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신하들은 양 측면으로 건너야 했답니다. 돌다리 곳곳에는 겨드랑이와 뒷다리에 갈기가 선명하게 돋아 있고 정수리에 뿔이 달려 있는 ‘천록’ 또는 ‘산예’라고 부르는16마리의 상상 속 동물이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치 메롱 하는 듯 혀를 내밀고 있는 천록의 모습이 천진스러워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 근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동서를 문신과 무신으로 나누어 정1품에서 종9품까지 18등급 품계석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3품 까지는 정(正), 종(從)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4품에서 9품까지의 12개는 정, 종 구분 없이 세워져 있으며 조정의 큰 조회나 신년 하례식, 국왕탄신일 등 중요 행사에 문무백관이 자신의 벼슬 품계석 앞에 정렬했습니다. 이 품계석은 궁내에 위계질서가 문란함을 없애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세워졌답니다.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 중앙에 우뚝 선 근정전은 경복궁의 중심이 되는 정전으로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이중으로 단(월대)을 쌓고 그 위에 세워진 근정전은 전후좌우 사방으로 계단을 설치했으며 상, 하 월대에는 연잎 모양의 짧은 기둥인 하엽동자를 받친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각 계단과 월대 모서리에 12지신 상을 새겨 넣고 정면 계단에는 석수를, 계단 중앙의 사각형 돌 답도에는 봉황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정면 5칸(30m), 측면 5칸(21m)의 중층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으로 지은 직사각형 건축물로 용마루로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의 아름다움을 졸필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추녀마루위에 있는 ①대당사부(大唐師傅) ②손행자(孫行者) ③저팔계(猪八戒) ④사화상(沙和尙) ⑤마화상(麻和尙) ⑥삼살보상(三煞菩薩) ⑦이구룡(二口龍) ⑧천산갑(穿山甲) ⑨이귀박(二鬼朴) ⑩나토두(羅土頭)라는 잡상들은 잡귀와 화마를 막는다는 주술적 의미랍니다.

근정전 내부에 열두개 기둥이 정면으로 4개, 측면으로 4개를 세워 중앙부 내진(內陣)과 외진(外陣)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계선 역할까지 함께하게 했습니다. 중앙으로 부터 북쪽 후면에 방형(方形)의 보좌(寶座)를 만들고 그 위에 어좌(御座)를 놓았습니다. 어좌 뒤편으로 일월오악(日月五嶽, 일월곤륜도)을 그린 병장(屛障:병풍)을 둘러 세우고 어좌 위쪽 천정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보개(寶盖:닫집)를 꾸몄습니다.

근정전 뒤 사정문(思政門)을 지나면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입니다. 이곳은 왕이 평상시에 정무를 보던 곳이기도 합니다만 문신들과 경전을 강론을 하기도 하고 종친 및 대소신료들과 주연(酒宴)을 열기도 하던 곳입니다. 사정전이란 이름은 경복궁 축조 후 각 전(殿)과 문(門)의 명칭을 지을 때 정도전(鄭道傳)이 지었다고 합니다.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지나면 왕의 침전으로 사용하는 강녕전(康寧殿)입니다.

강녕전 건립 당시에는 동서로 대칭되는 부속 건물들로 춘추전과 만춘전을 지어 행랑으로 연결된 편전(便殿)으로 왕과 신하가 학문을 토론하던 곳입니다. 온돌이 있는 춘추전은 왕이 가을과 겨울철에 주로 이용했으며 우측 봄을 상징하는 이름 그대로의 만춘전은 마루가 깔려있어 봄철에 이용했습니다. 임진왜란 전란에 화재로 소실된 춘추전과 만춘전은 대원군이 궁궐을 재 건립하면서 동떨어진 형태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강녕전 뒤편 양의문(兩儀門)을 지나면 왕비가 사용하던 교태전(交泰殿), 즉 왕비의 침전입니다. 주역(周易)의 64괘 가운데 태(泰) 쾌의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발췌한 명칭으로 괘의 형상이 위로는 곤(坤)이고 아래는 건(乾)이 니 두 괘가 합쳐진 모양이 지천태(地天泰), 즉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교태전은 궁내에서 꽤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지만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교태전에 딸린 부속 건물로 우측에 원길헌(元吉軒), 좌측으로 함홍각(含弘閣), 동북쪽으로 건순각(健順閣)이 있는데 이곳은 왕비의 전용 해산실(解産室)이랍니다. 여인네들이 기거하는 곳인 만큼 모든 건축물이 아기자기할 뿐만 아니라 정성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 아름답지만 교태전을 둘러싼 담장의 문양과 뒤뜰의 계단식 정원위에 늘어선 굴뚝에 새겨 넣은 봉황, 박쥐 매화, 국화 등은 자경전 꽃담과 함께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붉은색 벽돌을 다양한 형태로 쌓고 그 테두리 사이사이를 검은색과 흰색 석회로 마무리한 기하학적 문양은 보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교태전은 1553년 경복궁 화재로 소실, 1555년 8월에 재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로 완전히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1869년 교태전을 재건했으나 창덕궁의 화재로 내전이 소실되자 목재를 이용하기 위해 허물었다가 1990년에야 현재 건물을 새롭게 중건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승식  newsfreez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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