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의 만남

지난 주말 전 WBA jr 라이트급 1위 이일복 선배의 연락을 받고 파주에서 개최되는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일복이 전무(專務)로 재직 중인 아트 컨티뉴 고양파주 갤러리 의 소속사 조각가 김원근님의 초대 기획전(企劃展)이 파주시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로 향하면서 이 고장 출신의 복서로 1978년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진 제2회 세계선수권 대회(밴텀급)에서 복싱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한 김정철(동국대) 선배가 불현 듯 떠올랐다. 2년전 하늘에 별 이 된 김정철 선배가 요양 중인 이곳 파주에 문병을 다녀온 지난날의 추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WBA 국제심판 김병무 WBA 슈퍼 미들급 챔프 박종팔(우측)
WBA 국제심판 김병무 WBA 슈퍼 미들급 챔프 박종팔(우측)

현장에 도착 이일복의 죽마고우(竹馬故友)이자 ㈜ 명성종합건설 김성식 회장을 비롯 이곳 파주에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정해직 김태승 관장. WBA 국제심판 김병무 심판. IBF jr 밴텀급 챔피언 전주도. OPBF jr웰터급 챔피언 이상호.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박종팔 등이 참관 자리를 빛내주었다.

8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한 이일복 이상호 박종팔 3명의 복서를 마주하자 지금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퇴장한 MBC 신인왕전이 불 현 듯 생각난다. 1958년 2월 전남 신안군 에서 출생한 이일복은 1979년 9월 프로에 대뷔 신인왕전에 출전한다.

파죽의 5연승(3KO)를 기록한 핸섬보이 이일복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준결승에 선착 최우수복서 후보로 물망에 오른다. 그리고 맞이한 상대가 안현 이었다. 안현 (동근체) 은 1979년 5월 제32회 아마추어 전국 신인선수권(페더급)을 재패한 복서였다. 5전 4승 1패를 기록한 안현과 맞대결한 이일복은 상대의 일격에 녹다운을 당하면서 1패를 당한다.

김원근 조각가 이일복전무 박종팔 챔프(우측)
김원근 조각가 이일복전무 박종팔 챔프(우측)

전반적으로 이일복이 주도권을 잡고 리드한 경기였지만 한차례의 녹다운이 승패의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했다. 1980년 2월 프로에 대뷔 6연승 (5KO)을 기록한 이상호는 1980년 11월 19일 MBC 신인왕전에 출전한다. 1회전 상대는 1전 1승을 기록한 극동 중앙체육관 정희수. 이 경기에서 이상호는 4회 판정승을 거뒀지만 식겁(食怯)한 일전이었다. 

1978년 제10회 아마츄어 전국 우승권 대회 (라이트급)를 석권한 정희수(김천 대한 교통)는 1979년 제5회 킹스컵 국가대표 선발전 최종결승전( 라이트 웰터급)에 진출 양설석(수경사)와 일전을 벌였던 톱 클라스 복서였다.

1977년 12월 25일 MBC 신인왕(미들급)전 박종팔의 결승 상대는 펭권 체육관 강승환 선수였다. 공교롭게도 미들급에 춢전한 선수가 적어(3명) 강승환은 프로 대뷔전이 신인왕전 결승이었다.

이 대결에서 박종팔은 8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미들급 신인왕에 등극했다. 3개월후 박종팔은 강승환과 재대결을 펼쳐 8회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 경기는 박종팔이 패했다고 판정을 해도 할 말이 없는 팽팽한 대접전이었다. 발끈한 강승환은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3전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3개월의 짧은 프로복서 생활을 접었다.

박종팔 이상호 챔프 이일복전무(우측).
박종팔 이상호 챔프 이일복전무(우측).

58년 개띠생인 이일복과 박종팔은 동아체육관 출신에 천호 상전 선 후배 관계다. 오민근과 천호 상전 동기인 이일복은 1년 선배가 김철호 양일 박종팔 김응식 이상봉 이종근이다.  이일복은 천부적으로 태권도를 비롯 격투기에 능한 복서였다.

1978년 동아체육관에 입관  박종팔 이승순 황준석 김환진 이상봉 김응식등 역대급 복서들이 포진된 동아체육관 소속으로 그해 개최된 제31회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한다. 이일복은 결승전에서 수원 복싱의 송기섭을 맞이하여 3차례 다운을 빼앗고 1회 2분 22초 RSC로 제압 7전 7승(4KO)을 기록 최우수상을 받는다.

박종팔 챔프와 정해직 관장(우측)
박종팔 챔프와 정해직 관장(우측)

우수선수는 라이트 플라이급의 권채오(한국화약) 최우수 지도상은 페더급의 이일복을 비롯 밴텀급의 오민근 라이트급의 성낙석 미들급의 송치근등 4체급을 석권한 동아체 김춘석 사범이 차지했다. 1979년 제3회 김명복 박사배에 출전한 이일복은 결승에서 전남체고 김동길과 맞대결 죽창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두 차례 다운을 탈취하는 등 비록 판정패를 당했지만 정상급 복서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일전이었다.

이 경기를 끝으로 26전 23승(17KO) 3패의 짧은 아마츄어 전적을 남기고 1979년 9월 이원구에 4회 판정승을 거두며 프로에 전향한 이일복 은 1979년 11월 펼쳐진 프로복서의 등용문인 제9회 MBC 신인왕에 출전 5연승(3KO)을 질주하며 준결승에 선착한다. 

준결승 상대는 안현 선수였다. 이 경기에서 이일복은 방심을 하다 1회 선제 다운을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한 끝에 결국 판정패를 당하며 고배를 마신다 안현은 결승에서 차동수에 1회 KO승을 거두며 최우수복서에 선정되었다.

워커힐 3총사 장정구 김철호 이일복(시계 반대방향)
워커힐 3총사 장정구 김철호 이일복(시계 반대방향)

심기일전한 이일복 은 이후 파죽 (破竹)의 9연승 (4KO)승을 질주한다. 연승기록 중에는 베네주엘라에 원정 네오넬 헤르난데스 를 2회 KO로 잡은 경기를 비롯 김득구 (동아)와 무승부를 기록한 경흥 체육관의 유망주 김종표. 동양 챔피언을 지낸 후끼다 류(일본)와 어닝 그라페 (필리핀)등 강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이일복은 언론에서 제2의 서강일 이란 찬사를 받는다.

1965년 12월 4일 국내 프로복싱사상 최초로 WBA JR 라이트급 세계타이틀전에 도전한 서강일은 1967년 LA에 원정 그해 7월 아몬드 라모스에 10회 판정승을 8월에 로드리게스에 10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국내 복서로 유일하게 미국링 에서 2연승을 거둔 복서다.

서강일 은 초창기 한국 프로복싱을 대표하는 원조(元祖) 테크니션이다. 

이일복 선수의 경기장면(좌측)
이일복 선수의 경기장면(좌측)

여담이지만 서강일은 1967년 9월 로하스와 15회전 타이틀전을 벌여 판정패를 당했는데 이 경기부터 한국복서들의 미국원정 연패의 서막(序幕)이 시작된다. 길고 긴 19년간 진행된 24연패를 종식 시킨 복서가 바로 박종팔이다.

각설하고 물이 오를대로 오른 상승세의  이일복은 10연승의 제물이라고 생각한 에르난데스와 베네주엘라 원정 2차전을 펼친다.

이 경기에서 이일복은 2회 칼날처럼 예리한 스트레이트와 컴퓨터 처럼 정교한 어퍼컷을 날리자 충격을 받은 에르난데스는 코너에 몰려 비틀거리자 주심은 스톱을 선언한다. 이 상황에서 이일복은 주심이 당연히 스탠딩 다운을 선언할 줄 알고 중립 코너로 움직이려 하자 웬걸 주심은 이일복이 어퍼컷을 때릴 때 팔꿈치로 가격을 했다는 이유로 파올을 선언한다. 

이일복 전무 김태승 관장 김병무WBA 국제심판(우측)
이일복 전무 김태승 관장 김병무WBA 국제심판(우측)

주심의 황당한 판정에 이일복은 어이없는 모션을 취하며 등을 돌려 세컨을 바라보자 주심은 곧바로 이일복 의 반칙패를 선언하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허탈한 심정으로 귀국한 이일복은 4연승 (3KO)를 기록하며 전열을 추스린다.

그리고 1981년 12월 27일 대전에서 호루헤 알바라도와 세계 타이틀 도전자결정전이란 중요한 경기를 펼친다. 그러나 이경기를 앞두고 극동 전호연 회장과 심영자 후원회장 간에 김철호 챔프의 3차방어전(마루야마) 파이트 머니 미지급으로 인한 설전(舌戰)이 상호간(相互間)에 격하게 벌어진다.

이일복 전무와 서강일 선수(우측).j
이일복 전무와 서강일 선수(우측).j

이 사건으로 인해 이일복은 심 회장의 지시로 장정구 김철호와 함께 부산해운대로 잠적한다.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이일복의 <세계타이틀 도전자 결정전> 이라는 <빅카드>를 펑크내어 전호연 회장에게 타격을 입힐 생각으로 심도(深度) 높게 기획한 심 회장의 시나리오였다. 

이일복전무(좌측)와 명성종합건설 김성식 대표 부부
이일복전무(좌측)와 명성종합건설 김성식 대표 부부
정민수대표 이일복 전무 김신중 관장(우측)
정민수대표 이일복 전무 김신중 관장(우측)

결국 20일간 유흥(遊興)에 질퍽하게 젖은 이일복은 경기 전날 극적으로 생포(?)되어 서울로 압송된다. 단 하루도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한 이일복은 급작스럽게 이뇨제(利尿劑)를 복용 체중만 맞추고 경기에 임한다.

이 대결에서 시종일관 연체동물(軟體動物)처럼 흐느적거리면서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 10회 판정패를 당한 이일복은 팬들에게 거센 질타를 받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그런 형국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일복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졸전을 펼친 그 경기에 대해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다.

전주도 챔프 김병무 심판 이일복 전무(우측)
전주도 챔프 김병무 심판 이일복 전무(우측)

그런 마인드를 지닌 이일복은 가진멋 보다는 풍기는 맛이 넘치는 그런 사나이다. 이일복의 복싱 역사는 알바라도와 일전으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이일복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수 없음을 감지하고 1984년 3월 장오규 전을 끝으로 6년 동안 34전 30승(17KO) 4패의 커리어를 남기고 공식은퇴를 선언한다.

링을 떠난지 올해로 40년이 훌쩍 지난 이일복 전무는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그가 인생 3막의 길목에서 무지개빛 아름다운 노을이 꽃길처럼 펼쳐지는 그런 날들이 지속되길 기원해본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