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최경환' 분담론도 거론…총선후 본격 점화 가능성

개헌론을 둘러싼 정치권 내 갑론을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국회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여야 의원 15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새누리당 내에서는 비박계를 중심으로 개헌론이 제기되곤 했다. 그 선봉에는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이 있다.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 고문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은 기회가 될 때 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외쳐 왔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원내 과반인 15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폭넓게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들고 나오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돈다.

특히 내년 총선의 핵심 의제로 개헌론을 밀어붙이겠다는 청와대의 정치적 의도가 배경이 됐을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자칫 개헌론이 다른 정치 이슈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당 지도부가 여당발(發) 개헌론에 심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 데 비해 일각에서는 차제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등 당내 '불협화음'도 나왔다.

또 "내년 총선의 주요 의제로 개헌론을 끌고 가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며 "당에서 전략적으로 검토해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열린 사전회의에서 이런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전략적 대응책을 모색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헌론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나 민생 문제 등 다른 모든 논란을 덮어버리는 새로운 이슈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도 제기됐다.

당 관계자도 "총선 전에 대통령이 직접 개헌을 이야기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친박계를 통해 '애드벌룬'을 띄울지에 따라 파괴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결국 대통령의 입을 봐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면 전면전"이라고 말했다.

당내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전·현직 대표도 직접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의심을 한다"고 지적했고,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통화에서 "친박계가 영구 집권하려는 생각 아니냐"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노동개혁과 역사교고서 국정화 논란 등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당내 개헌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모습도 보인다.

문병호 의원은 통화에서 "개헌도 민생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충분히 토론할 가치가 있다"며 "총선 공약으로 해도 된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도 "어떤 개헌이 될지는 몰라도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야당도 다수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혀왔기 때문에 개헌하는 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의원은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파적, 정략적 차원으로는 절대 안 될 것"이라며 "개헌을 하려면 특정 정파나 개인이 아니라 여야 합의 하에 특위를 구성해 투명한 절차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문종 의원은 12일 KBS 라디오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면서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블랙홀론'을 제기하며 반대 견해를 분명히 밝힘에 따라 여권에서는 개헌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10월 김무성 대표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개헌론을 꺼냈다가 하루 만에 청와대를 향해 사과했던 게 단적인 장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통하는 전직 사무총장 출신의 홍 의원이 개헌을 얘기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포함해 몇몇 친박계 인사들이 사석에서
제기했던 개헌론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셈이다.

그러자 단박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외교를 담당하는 대통령으로 세우는 동시에 친박계 총리, 특히 대구·경북(TK)에 근거지를 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각주'까지 붙었다.

개헌 논의의 시기에 대해서는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년 총선 이후가 유력하다는 구체적인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 데다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아직 부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친이(친이명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했으나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통상 집권 후반기에 나오는 개헌론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이 많다는 점에서 당 주류 인사가 굳이 나서서 이를 언급한 데 대해 의아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분권형 개헌론이 박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권력 누수' 방지와 퇴임 후 구상과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TK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박 대통령이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최근 제기되는 'TK 물갈이론'이 사실이고 나아가 이런 흐름이 부산·경남(PK)까지 번지면서 '영남권 물갈이'가 현실화해 박 대통령의 '친정 체제'가 이뤄진다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영남권은 전체 300석 가운데 61석으로 20%를 넘기 때문에 단독으로 또는 연정을 통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선을 그었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국정 현안이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동개혁 5대 입법, 경제활성화 4개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조속한 처리와 민생경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박계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국회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경제살리기와 4대개혁을 달성하고, 청년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어떤 입장에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방향을 잘못 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도 "(홍문종 의원의) 개인의견일 뿐 다수가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의견도 아니고, 논의 자체도 전혀 없다"면서 "이를 친박계의 개헌론으로 부풀리는 것은 사실과 다른 공상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는 내년 총선으로 구성되는 20대 국회에서 해도 충분하다. 엉뚱한 분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하자 이날 한·중 민간경제협력포럼 참석차 중국을 찾은 홍문종 의원도 "지금은 우리가 민생에 전념을 할 때이고 개헌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얘기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에서 친박계가 '애드벌룬'을 띄우고, 청와대는 일단 거리를 두면서 여론 추이를 살피는 '역할 분담'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당내 비박(비박근혜)계와 야당은 '친박발(發) 개헌론'의 진의를 파악하면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당장 개헌 논의가 급진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개헌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개헌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언급을 삼갔다.

한 비박계 의원은 "개헌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반대하더니 뜬금없이, 그것도 구체적 권력 구도까지 제시하며 추진하는 게 의아하다"면서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개헌론을 강하게 주장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도 "정략적,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87년 체제 극복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면서 "정권 연장을 목적으로 불쑥 청와대가 주도하거나 정파적 차원에서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국민 여론도 결정적 변수다. 헌법 개정은 국회가 의결한 후 국민투표에 부쳐 유권자 과반의 투표와 과반의 찬성을 거치도록 돼 있다.

국회 의결이 이뤄진다고 해도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자칫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역풍을 맞고 정권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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