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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최전선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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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최전선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 박지영
  • 승인 2018.03.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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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 영 (시인. 문학마당 편집장)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이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새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두고 쓰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동계올림픽에서 멋진 경기로 스타덤에 오른 여성 선수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전율이 일고는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회 때마다 여성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놀랍게도 비인기 종목이었던 컬링이 국민적 관심과 응원으로 일치된 광풍의 세레모니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동계올림픽대회 속에 여성선수들의 과거 모습은 참여 종목도 제한적일 만큼 적었지만 요즈음 그러한 풍경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세련된 기능성 의상과 화려한 운동성 그리고 신체의 역동적인 자유로움으로 인해 유리천장은 깨졌다고 할 정도로 양성평등이 구체화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1990년대 이르러 아이스하키, 2000년대에는 봅슬레이 등 남성스포츠의 전형처럼 여겨졌던 종목에 출전을 하게 되었고, 소치 올림픽에서는 90년 동안 금녀의 종목이었던 스키점프까지 총 14종목에 여성이 참가하게 되었으며, 2018년 평창에서는 컬링, 알파인스키 혼성종목과 신규채택까지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선수들이 참가한 대회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8년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양성평등 여정의 100년으로 편견 없이 모두가 하나 된 열정으로 참가한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이슈가 된 ‘성평등’은 왜‘양성평등’이 되었을까? ‘젠더’는 왜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이 되었을까?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동성애에 반대하는 이들이 조직적으로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몰아 색깔론과 지역주의를 내세워 정치인들이 선거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의 논쟁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표현인가’를 놓고 논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차기 대선의 쟁점이 될 도화선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이슬람권, 우리나라까지 자유주의 정권들이 추구하는 다양성에 대한 옹호가 주로 젊은 남성층의 일자리 창출의 싸움의 소재가 되고 남북의 위기에 따른 정쟁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적 박탈감에 좌절하는 이들이 약자들을 표적으로 삼을 때 이에 합류해 세계화 이후 불평등을 키우는 경제구조가 국민들을 촛불로 이끌었고, 이로써 민주주의 작은 희망인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키우는 경제구조가 낳은 싸움의 표적과 칼끝은 결국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에 ‘Me Too운동’과 ‘WithYou 운동’이 유력 대선후보와 사회지도층들과 문화예술 정치 종교를 총망라하는 폭풍으로 국내를 휩쓸었고, 국민을 자괴감에 빠지게 했으며 새로운 적폐를 내부에서 도륙하는 일들이 빈번해 졌습니다. 이런 상황에 약자를 겨냥한 혐오발언과 공격은 더욱 삼엄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세계의 군사력이 남북을 감싸고 있는 동안 자원봉사들과 올림픽조직위위원회와 패럴림픽조직위는 국내에서 4년 6개월 동안의 세계인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도 차별과 혐오는 정당화 될 수 없다”며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혼돈하면 안 된다”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하였습니다.

현재 개헌 헌법을 발의하기 위한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헌법의 이념이 성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둘러싼 그 동안의 ‘성평등’과 ‘양성평등’ 의 현실적 왜곡이 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어떠한 경우에서든 ‘국민주권’이 우선하는 대상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 받는 가치를 정책적 이념을 바탕으로 해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명시가 필요합니다.

개회식과 폐회식 참여 내내 느낀 것은 몇 년의 숨은 준비로 고생한 조직위 관계자들과 애국심으로 자원한 봉사자들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전통과 우리의 ICT기술이 융합되어 축제처럼 펼쳐지는 패럴림픽 대회 내내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의 자손 같은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는 경쟁과 이념이 없는 ‘하나 된 열정’이 주는 ‘감동과 영감’을 나누는 축제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정부는 외교적 전선에서 분단의 현실을 잊지 않고 위기 때마다 민족적 ‘놀이판’을 통하여 국난으로부터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괄시 받고 천대 받던 현실이 불을 보듯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형평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현장과 화면에서 비쳐진 대통령과 영부인의 장애인 선수들과 껴안고 눈물 흘리고 웃던 장면이 이벤트로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동이 끝나거나 영감이 지나치지 않게 제도와 지원 정착이라는 브랜드력을 갖추도록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의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어 대한민국만의 브랜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중하게 나아가고 물러남이 합리적인 대통령과 선수들 속에서 하나가 되어 응원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던 영부인의 모습이 오래오래 人口에 회자되도록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신나게 일하는 정부로 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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