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모방’과 ‘창조적 지혜’는 다르다

이인권 논설위원장 / 문화커뮤니케이터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정보는 어디엔가는 존재한다. 그래서 경쟁력은 바로 누가 많이 남의 ‘좋은 사례들’(best practices)을 먼저 찾아내어 내 것으로 만드는 가에 있다.

시쳇말로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네 것이 되는’ 것이 서로의 벤치마킹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 분야에 있는 다른 조직의 훌륭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려고 열정을 쏟는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남의 모범적인 사례들을 내 실정에 맞게 올바로 활용하면 그게 바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책이다.

그 어느 분야보다도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TV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존 랭글리는 "벤치마킹은 다른 조직에서 실행해온 창의적인 변화 시도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 TV 예능의 주류가 되고 있는 실생활 중심의 프로그램을 1980년대부터 개척한 리얼리티 제작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는 프로듀서다.

랭글리의 정의를 바탕으로 이미 누군가에 의해 착안되어 성과를 낸 섬광 같은 아이디어들이라면 이미 검증의 단계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벤치마킹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함으로써 수반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실행 평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lead time)이나 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도 있다. 단지 외부의 좋은 실천사례들을 보다 창의적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된다. 벤치마킹은 ‘모방된 짝퉁’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인 셈이다. 남의 좋은 점을 새롭게 내 것으로 재창출해 내면서 개인이나 조직에 합당한 체제로 업그레이드 하는 노력을 쏟기만 하면 된다.

물론 벤치마킹을 생각할 때는 한 가지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벤치마킹이 모든 아이디어를 다 외부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직의 벤치마킹은 남이 창조해 낸 것을 새롭게 다듬어 내 것으로 발전 격상시키는 ‘정련자’(refiner)의 역할이다. 그러나 조직은 자체의 발상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독창자’(originator)의 선구자적 사명도 동시에 수행해내야 한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벤치마킹은 정련자와 독창자의 역할이 별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초경쟁 시대에서 벤치마킹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바로 고정관념이다. 세상에는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100 퍼센트 새로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벤치마킹을 하려고 해도 할 대상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 같은 일들이 얼마나 있을까? 발명도 따지고 보면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에서인가는 힌트를 얻게 되고 실마리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결과다. 인간의 두뇌는 연상 작용에 능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기존의 체계를 토대로 한 단계 한 단계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조직이나 개인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벤치마킹은 그런 맥락에서 성공으로 가는 보증수표다. 벤치마킹은 결국 경쟁자로부터 배우는 과정이다. 배워 터득한 지식의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창조적 지혜가 솟아나게 되어 있다.

벤치마킹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지식의 모방’만을 생각해서다. 반면에 벤치마킹의 효용성을 주창하는 것은 ‘창조적 지혜’를 바라보는 것이다. 오히려 단순한 모방으로 접근한 벤치마킹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남의 좋은 사례를 그 내용의 지식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부작용이 생겨 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공한 제도나 시스템이나 결과물은 그 본래의 바탕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운용되는 조직문화나 풍토에 이미 길들여져 있거나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벤치마킹을 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대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이다. 그 대상의 문화체계를 눈여겨보는 안목이 절대 필요하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벤치마킹을 해야 기대치에 다다를 수가 있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하드웨어적인 겉모양만 바라보고 소프트웨어적인 속마음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벤치마킹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무조건 남의 좋은 것을 그대로만 따라한다면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벤치마킹이라야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앞서 말한 대로 벤치마킹이 능사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은 벤치마킹을 하드웨어 측면의 표면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맹목적인 답습이나 베끼기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측면의 ‘문화적’으로 벤치마킹을 한다면 성공이 보장된다. 그것은 바로 생산적 모방이요 창의적 원용(援用)이다. 한마디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삶의 토대에서 문화적 경영과 창의적 벤치마킹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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