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니스트

백화제방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갖가지 학문, 예술, 사상 등이 발표되어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어 우리나라 조선조에 들어와서 사색당쟁(四色黨爭)으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16세기 선조 대 이후 중앙정계에 진출한 사림(士林)은 그들 사이에 정치노선에 차이가 있었지요.

선조 초 ‘이조전랑’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심의겸과 김효원간의 정쟁(政爭)으로 사림은 영남학파인 동인(東人)과 기호학파인 서인(西人)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 뒤 권력을 잡은 동인은 서인 문제를 두고 온건파인 남인(南人)과 강경파인 북인(北人)으로 분열되었고, 북인은 다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나뉘었지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는데, 서인도 노론(老論)과 소론(小論)으로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권력은 서인의 집권 가운데 남인과의 공존체제로 유지됩니다. 그러나 효종이 죽은 뒤 왕실 복상(服喪) 문제로 서인과 남인 간에 ‘예송(禮訟)’이 일어나면서 공존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망국적인 당쟁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모이기만 하면 남인, 북인, 노론, 소론하며 사색당파와 족벌, 향벌, 문벌, 군벌 등 파당을 이루곤 했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에 있어서도 한쪽이 찬성이면, 한쪽은 반드시 반대를 합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망국의 패거리 문화가 만연하다 보면 소위 ‘갑 질 문화’ ‘금 수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누가 그 사색당쟁의 후예가 아니랄까봐 지금 대한민국은 극심한 망국의 유령들이 횡행하며 나라를 또다시 분열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본래 백화제방은 누구든 자기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 중국의 정치구호입니다. 그리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도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을 말한 것입니다.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처럼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했던 때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수백 나라가 500여 년 동안이나 먹고 먹히면서 쟁패(爭覇)를 벌였습니다. 그 치열함은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나라가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력이 튼튼해야 했지요.

그래서 국력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방책이 각광(脚光)을 받았으며, 이를 두고 여러 계보(系譜)가 나름대로의 방안(方案)을 내세워 이름을 다투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백화제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말이었지요. 이렇게 선비를 양성하는 풍토가 성행함에 따라 여러 선비들의 대열은 끊임없이 확대 되었습니다.

그들은 책을 써서 학설을 세우고 이 학설을 각 임금에게 유세(遊說)하고 제자(弟子)에게 가르쳐 문화와 학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여러 학파의 이론가들이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나고, 이 사람들을 일컬어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합니다.

이러한 제자백가들의 자유로운 논쟁(論爭)과 토론(討論)이 ‘백가쟁명’으로 학문과 사상은 더욱 발전되었으며,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창조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공자(孔子)사상입니다. 공자사상의 핵심(核心)은 인(仁)입니다.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은혜로움, 민첩함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감으로써 부드러움, 신중함, 너그러움, 겸손함, 우아함, 예의바름, 즐거움 등의 성품(性品)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유가(儒家)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아(自我)의 인격적 수양입니다. 유가에서는 먼저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인’의 실현과 중용(中庸)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또 무력이나 법의 구속을 가지고 다스리는 것을 패도(覇道)정치라 하여 배척(排斥)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천도(天道)에 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 왕도정치의 바탕은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학식을 닦고 덕행(德行)을 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정쟁(政爭)만 있고 국정(國政)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익(私益)만 있고 국익(國益)은 없는 그런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요? 이렇게 우리사회가 우리 안에 이런 극단적 상황을 펼치며, 정쟁으로 치닫기만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정쟁은 멈추어야 합니다. 바야흐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드디어 우리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한 발걸음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쟁을 멈추면 화합할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멈추어야 할 정쟁은 계속하고, 계속해야할 화합은 외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대립국면은 마주보며 돌진하는 열차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사건건 반대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탐욕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면 화합은 저절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탐욕을 멈추면 갈등이 사라집니다. 독선과 남 탓을 멈추면 미움이 사라집니다. 상호 비방과 편 가르기를 멈추면 충돌이 사라집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 적으로 진정한 백화제방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펴며 화합과 단결로 정쟁을 멈추면 이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을 이루어 마침내 어변성룡(魚變成龍)의 나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3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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