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척결 vs 외환위기…다시보는 YS 4대 공과

26일 영결식과 국립현충원 안장을 끝으로 영면에 든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저평가된 대통령이란 견해엔 이견이 적다. 금융실명제 도입, 군사정권을 이끌었던 군의 핵심 사조직 '하나회' 척결 등 굵직한 업적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측근의 전횡으로 정치가 왜곡됐고 외환위기 즉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로 많은 국민이 고통 받은 기억도 여전하다.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이 앞다퉈 나선 '재평가'가 맹목적인 '고평가'여선 안되는 이유다.
 

◇하나회 척결vs 외환위기 충격=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1993년 8월 12일 극도의 보안 속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제'를 전격 발표했다. 어느정부도 감히 하지 못한 미완의 개혁 과제를 특유의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 음성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단 평가다.
 

군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해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없앴다. 문민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여러차례 하나회 문제가 거론됐지만 김 전 대통령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다 임기 초반 전광석화같이 움직여 군부의 반발을 무력화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회의 대표주자 격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재판에 세웠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지방자치제 부활도 김 전 대통령 때 이뤄졌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수출 10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임기말인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꿨다. 대기업 연쇄부도, 금융기관 부실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 결과였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의 쓴 대가이기도 했다.
 

노동법 날치기 처리는 평생 의회주의자로 살았다는 고인의 자랑을 무색케 하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아들 현철 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임기 후반 부정적 평가의 배경이다.
 

◇마지막 메시지 '통합·화합'…재평가 배경은 총선?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1970-80년대 민주화 투사로 오랜 기간 탄압을 이겨낸 모습을 국민 뇌리에 깊이 남겼다. 사상 첫 국회의원 제명,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그는 야권 지도자이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우뚝 섰다.

정치권은 이 때문에 그의 긍정적인 면을 재평가하자는 기류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계승하는 새정치연합도 뒤지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면서 가장 앞장서고 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김 대통령이 이룩한 개혁 업적이 저평가돼 왔는데 이제는 역사적 재평가를 할 때가 됐다"며 "후배들은 그런 개혁을 완수할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하나회 척결로 다시는 군부가 정치에 깊게 개입할 수 없는 확고한 조치를 취했는데 지금은 당신께서 평생 온몸으로 싸워 얻은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제는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란 생각"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 입문한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도 "김영삼 대통령은 가시면서도 새로 역사를 썼다"며 "통합과 화합의 역사를 썼고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배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단 최근 재평가 분위기는 정치인들이 일반 여론을 앞지른 면이 있다. 빈소에서 '위인' '큰별'로 칭한 이들은 대개 정치인이다. 무엇보다 여야 모두 고인을 계승하겠다고 나서 며칠동안 빈소를 지킨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빈소정치'로 평가됐다.

고인의 선거 역정에도 공과 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15대 총선은 김 전 대통령이 '사람'을 알아보는 선구안과 파격적인 공천을 통해 인재를 대거 영입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동시에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자금을 여당의 총선 자금으로 썼다는 이른바 안풍사건이 벌어진 때이기도 하다.

IMF 구제금융 사태는 비록 극복했다지만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 역동성이 떨어진 영향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3당합당으로 '문민 대통령' 집권 돌파구를 열었지만, 그 결과 지역주의가 더욱 고착된 것도 여전한 숙제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일방적인 저평가도, 일시적 분위기에 편승한 과도한 고평가도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YH, 민주화, 조깅, 대구탕…YS의 추억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사저와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위치한 동작구 상도동으로 향하고 있다. '화해와 통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날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2015.11.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2일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마지막 국립묘지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통령, 정치인, 민주화 투사,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의 '김영삼'을 회상했다.

'민주투사'이자, 친근한 동지,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회고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YS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금융실명제는 일본도 못하고 있어. 일본 정상들 만나면 자기들이 그거 해보겠다고 하는데 아직 못했어"(지난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YS의 업적으로 하나회 척결을 언급하자)

◇"내가 조그마한 성의로 '박정희 대통령이 괴롭혀 드린거 조금이라도 좀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해서 옆에 와 있다'는 애기를 한 번 (YS에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조용히 웃으십디다."(지난 22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 전 대통령과의 60년 세월을 회고하며)

◇"에너지를 다 쓰신 것 같아. 기를 쓰고 다 가셨어. 암이나 이런 질병은 (피부가) 새카맣게 되는데 안 그러셨다."(지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표정이 편안해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YH여공 사건 이거 엄청 큰 일이었다. 훌륭한 일 많이 했는데 IMF 때문에 다 묻혀가지고 안타깝지."(지난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적어놓은 신문기사를 보다가)

◇"우리당 창당 60주년 기념행사할 때도 다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어했습니다. 40대 기수론 때 김대중 후보에 패한 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김대중 후보 지지연설하는데 그게 엄청났죠. 우리나라 야당사에서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지난 22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업적을 회고하다가)

◇"언론사 정치부장들이랑 식사를 잡아놨는데 나는 5분전에 갔는데, YS는 벌써와서 다다미방에 혼자 뒷짐지고 서성거리고 있더라. 약속을 정말 칼같이 지키는 분이다. 사적인 약속이든 뭐든 항상 5분, 10분전에 가 계신다."(지난 24일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신의 정치입문 당시를 설명하다가)

◇"각하는 매일 오전 5시에 조깅을 뛰셨다. 캄캄할 때. 35년 동안. 그러니까 저것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되심에 충분하다고 누가 그랬어."(지난 24일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다가)

◇"밤에 찾아가면 직접 와인을 꺼내주셨죠. 심지어 주일날 아침에 가면 당신 옷갈아 입는 침실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주실 정도로 인간미가 넘쳤습니다."(지난 23일 이낙연 전남도지사, 본인의 기자시절 YS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YS는 자기가 '돈 정거장'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이 있더라도 돈을 다 나눠주다 보니까."(지난 25일 강인섭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 전 대통령과의 과거 추억을 회상하며)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였어요.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정치력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죠."(지난 25일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 김혜숙씨,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인자하신 분이었고 직원들을 참 편안하게 잘 대해주셨습니다. 거제에서 올라온 대구로 맑게 끓인 대구 지리탕을 좋아하셨어요."(지난 25일 전 청와대 주방장 이한규씨, 김영삼 전 대통령을 15년 동안 모셨다고 밝히며)

◇"한 번은 왔다 가는 것인데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지난 22일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스님, 빈소에서 유족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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