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전 원불교협회장

낙조의 황홀함

작년 여름 서해바다의 하섬(荷島)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하섬은 변산 근처에 있는 원불교해상훈련원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연꽃섬(荷島)’이라고 했을까요? 저는 뜻한 바가 있어 그 섬에 들어가 훈련원장님에게 부탁해 80평생 가까이 달고 다니던 제 머리에 배코를 쳤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이 하섬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落照)의 황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몸이라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거의 다 산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더 살더라도 저리 붉게 타오르다가 갈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당뇨병으로 시작한 병원출입이 이제는 안과와 심장혈관내과 그리고 치과까지 또 어느 과가 추가 될 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다리가 아파 잘 걷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어찌 낙조의 황홀함을 맛보고 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사람의 연령(年齡)에는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적(靈的)연령 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자연연령과 건강연령은 쇠약해지더라도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은 능히 불태울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인생을 아주 멋지게 해 나가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건 잘 수행하며 열정(熱情)을 쏟아 부을 멋진 일에 몰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늙으며 떠나야 할까요? 오히려 노년은 지성(智性)과 영혼(靈魂)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는 황금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는 세월이 흐르는 대로 늙어 가는 것과 적극적으로 늙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어머니 릴리안 여사를 통해 배웠다고 합니다. 카터는 그의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953년 남편을 잃었을 때 어머니의 나이는 겨우 55세였다. 몇 주 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어머니는 어느 날, 집에 있으면서 수동적으로 노년을 즐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어머니는 30년을 더 살았지만 결코 더 늙지 않았다.”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 여사의 삶은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영위하고, 새로운 활동과 새로운 성취들을 이루고, 삶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예가 되고 있습니다.

노년의 삶은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수도 있고,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노년기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무한히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되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마비상태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낙조의 황홀함을 만들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통해 삶의 긍정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현재 이 자리에서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지요.

둘째,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보람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덕화만발 카페에 혼신의 힘을 다 합니다. 하루하루를 몰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재에 깨어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도 잊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셋째,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입니다.

노년생활을 활발히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감사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결코 행복하고 평탄한 삶만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실망과 실패, 잃어버린 것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살면서 받은 크고 작은 선물들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원망하는 생활이 지옥생활입니다. 그러나 감사생활이 극락이고 천국인 것이지요.

넷째, 상(相)없는 공덕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공덕(功德) 중의 으뜸은 보시(布施)공덕이라 했습니다. 공덕은 자신이 땀 흘려 번 재물이 있으면 재물로,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몸으로, 그것도 아니면 마음으로라도 상대방이 잘 되도록 축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 품에 상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자신과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지요.

다섯째, 진리를 믿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진리적 종교를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라 함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3학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요란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그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삼학을 닦은 힘이 삼대력(三大力)이고 불보살의 위에 오르는 방법입니다.

여섯째,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고 흥미진진한 마음은 권태로움에 내줄 시간이 없고, 자기 연민에 빠질 공간이 없습니다.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카페에 열중하면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낙조의 황홀함을 느끼고 맛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아니한 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고 갈 때에 의(義)가 유여(裕餘)하고, 덕(德)이 유여하며, 원이 유여하면 그것이 바로 서녘하늘을 장식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우리 하섬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낙조처럼 정열을 불태우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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