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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임사홍, 그는 어쩌다 간신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 이상윤 기자
  • 승인 2018.04.09 08:02
  • 수정 2018.04.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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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뉴스프리존=이상윤 기자] 8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간신’ 2편 ‘공공의 적 임사홍’이 방송되었다.

“사헌부 대사헌 등이 차자를 올려 말하기를, ‘임사홍은 형편없는 소인(小人)입니다.’(중략)” <성종실록, 성종 23년>

성종 시기, 대간들은 한 남자를 앞 다투어 비난하기 바빴다. 그는 ‘간신’이라는 표현도 부족해 ‘소인(小人)’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은 임사홍이었다. 연산군 대까지 임사홍을 따라다닌 ‘소인(小人)’ 꼬리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는 조선의 대표 간신으로 알려져 있다. 임사홍은 어쩌다 간신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 임사홍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1만 미녀를 연산의 품에♥’

정사(政事)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연회를 즐긴 연산군. 그는 연회에 쓰일 기녀들을 모집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미인을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것도 모자라 등급까지 나누어 관리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연산군의 횡포에 백성들의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연회에 ‘흥청망청’의 아이콘이 된 연산군. 그리고 그의 곁에 붙어 있던 임사홍. 백성들의 원망까지 등지고 임사홍이 연산을 위해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 12년 만에 부활한 ‘소인(小人)’

공신의 아들이었던 임사홍. 본인은 효령대군의 손녀사위로 든든한 뒷배까지 갖추는데. 뿐만 아니라 18세에 과거에 급제할 만큼 뛰어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조정에서 임사홍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을 듯했는데. 

“흙비[土雨]가 내렸다.” <성종실록, 성종 9월 4월 1일>

어느 날, 조선 왕실은 자연재해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임사홍을 비롯한 대간들은 조선 시국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게 되고. 이후 임사홍은 대간들 사이에 ‘소인(小人)’으로 낙인 찍혀 몰락하고 유배까지 보내진다. 유배지에서 쓸쓸한 세월을 보낸 임사홍. 그는 12년 만에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하는데. 그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아들과 맞바꾼 권력, 부메랑이 되다

“작은 소인(小人) 숭재, 큰 소인 사홍이여!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 천도(天道)는 돌고 돌아 보복이 있으리니, 알리라,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 <중종실록, 중종 1년>

관직에 복귀한 임사홍은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며 신임을 얻는다. 심지어 임사홍은 연산군의 친모 ‘폐비 윤씨’의 죽음을 언급하고 이를 들은 연산의 광기는 갑자사화로 표출된다. 연산군의 총애를 잃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임사홍은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양으로 삼기에 이른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잔치를 열었던 임사홍. 그에게 있어 권력은 아들과도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었을까?

조선시대 대표 간신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임사홍의 이야기는 4월 8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2부작 ‘간신’ 2편 ‘공공의 적 임사홍’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윤 기자  sg_number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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