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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역사이야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지금은 상식처럼 생각되는 말이지만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또한 여러 민란이 있었기에 지금시대의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살고 있는 듯 하다.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8.04.08 19:28
  • 수정 2018.04.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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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농민과 천민의 봉기 발생장소

[뉴스프리존=김현태 기자]1176년 정월 공주 명학소에서 민란이 발생한다. 민란의 주동자는 망이와 망소이! 이들은 무리를 끌어 모아 순식간에 공주 지역을 점령한다.

조정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3천 명의 토벌대를 급파하지만 토벌군은 망이, 망소이의 반란군에게 대패하고 만다. 이들은 왜 민란을 일으키게 된 것일까?

민란이 일어난 장소가 공주 명학소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당시 고려시대에는 각 지역별로 등급이 있었다.

그 중에서 향, 소, 부곡에 사는 주민들은 잡척이라고 불리며 타 지역민과 같이 조세, 공무, 역역 등을 부담하며 국유지 경작의 의무를 추가로 지거나 지방의 특산물을 생산, 납부해야 했다.

향, 소, 부곡의 주민들은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천대까지 받았던 것이다. 정부군이 패하자 조정에서는 명학소를충순현으로 승격시키겠다는 명을 내린다.

명학소가 현으로 승격되자 망이, 망소이의 난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1177년 망이와 망소이도 항복한다.

그런데 이때 정부에서 진압군이 내려와 난을 일으킨 이들의 가족들을 체포하고 이에 분노한 이들이 다시 난을 일으킨다.

고려 조정은 화해 조치로 시간을 벌며 뒤로는 반란군 진압을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민란은 진압군의 대대적인 토벌에 제압된다.

1년 6개월 이상 지속된 망이, 망소이의 난은 비록 실패했지만 민초들의 호응 속에 민란의 시대를 열었다.

또한 고려시대 약 900개였던 향, 소, 부곡이 조선 초기에는 약 100개로 줄었다가 이후 점차 사라지는 등 차별을 줄이는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1세기에 살고있는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보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신분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신분제도로 인해 사람이 사람 대접 못받고 동물보다 더한 취급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바로 고려시대에 일어난 만적의 난이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최초의 노비 해방운동이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라는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사 열전 최충헌편에 실려있어서 최충헌의 사노비다라고 추측을 할뿐이다.

만적의 난을 일으킨 만적의 핵심 주장은 고려에서 천민 신분을 모두 없애자이다. 그당시 노비는 물건처럼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노비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없다가 정답이다. 고려는 어떤 나라보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노비 만적이 난을 일으킨 이유?

첫번째 이유가 두번째 이유가 바로 이의민은 어머니가 노비인 천민 출신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만적 또한 최고 권력자가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음, 만적의 난 결과는? 실패로 끝이났다. 고려시대 무인정권시기 최충헌은 무인으로 고려의 최고권력자가 된다. 이당시에는 노비,천민 출신들도 무인으로 출세해 권력을 갖거나 그랬던시기였다. 이때 최충헌의 집 노비 만적이라는 사람이 다른 노비들을 불러놓고 말한다.

왕후장상 영유종호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이는 중국 진시황이 죽고나서 진나라말기에 진승,오광의 난때 농민봉기때에도 나온 말인데요 왕후장상은 왕과 제후 장군과 재상 이라는 뜻이다. 사마천 사기에 기록되있는말로 고려에까지 퍼진 말인것 같다. 최충헌은 개경 오늘날 개성 사람인데, 만적은 개경노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시 모여서 반란을 일으키자한다. 그때 순정이라는 다른 노비는 우물쭈물??,,하다가 주인,,에게 이를 알린다. 이에 최충헌은 순정을 양민으로 노비에서 나오게해주고 만적은 잡혀서 자루에 묶여 강에다 버려진다. 실패로 끝이난 만적일행은 수장되었는데 그 이유가 노비는 사형시키는 것도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무인시대 100년 동안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민란의 시대이다.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봉기가 일어났으며 대부분 실패하였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며 누적된 마일리지처럼 차츰 차츰 신분제도에 대한 변화된 생각으로 대한제국때에 완전히 신분제가 사라졌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지금은 상식처럼 생각되는 말이지만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또한 여러 민란이 있었기에 지금시대의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살고 있는 듯 하다.

김현태 기자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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