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책이란 모름지기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특히 소설책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나는 엊그제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는데, 안재성 작가가 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책이다.

이 책은 6.25전쟁 때 북한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인민군의 영남지역 교육위원으로 임명된 정찬우라는 사람이 전쟁터와 포로수용소, 그리고 교도소에서 겪은 온랒 수난을 기록한 책인데, 한 개인의 수난사를 넘어 이 민족의 수난사가 되고도 남을 책이다.

6.25전쟁을 비롯해서 남북한 관계를 다룬 작품은 대체로 이남과 이북의 어느 한쪽 시각에 입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남과 이북의 시각을 넘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며, 이념대립을 악용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남에서도 이북에서도 잔인하고도 참혹한 일들이 수없이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겪은 엄청난 고난은 물론 이념 대립으로 겪은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이겨낸 정찬우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는데도, 이것을 보고서 기쁘기보다는 슬픔과 분노에 사무치는 것은 그가 겪은 고난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남과 북,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서울과 대전에서 맞닥뜨린 제트기의 기총소사와 소이탄 폭격에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고,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이 유엔 연합군에 궤멸되다시피 한 이후로는 빨치산 신세로 산속에 은둔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신세가 된다. 결국 포로로 잡힌 정찬우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고 전범재판을 통해 남한에서 10년의 세월을 복역한다. 정찬우는 노동당 간부라는 출신 때문에 수용소와 감옥에서 빨갱이로 취급받고 공산주의 사상을 교도소 내에 전파한다는 누명을 쓴 채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마침내 사면 받아 고향인 전남 고창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공산주의자가 되어 본 일이 없이 오직 북한에서 살게 된 그 이유만으로 인민군의 영남지역 교육위원이 되고 마침내 빨치산까지 되었을 뿐인데도, 그는 이념문제로 부당하기 짝이 없는 핍박과 목불인견의 고난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고서도 전향서를 쓰게 된다. 이것은 내가 보아온 비전향장기수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대구교도소, 전주교도소 등에서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왜 전향서를 쓰지 않는지 그 이유를 내 나름으로 추측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를 계속해서 신봉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전향 문제로 그들이 겪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압에 굴복하지 않은 데서 갖게 된 자존감을 지키고 싶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전향서를 쓸 시기를 넘긴 것도 같았다. 전향 문제로 겪은 그 잔혹한 고난을 이겨낸 그 자존감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터라 전향서를 쓰게 되면 금방 생명을 잃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전향 전담 교회사를 만나게 되면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전향을 강요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전향서보다 생명이 더 중요해서 말이다.

그런데 정찬우는 달랐다. 이념문제로 겪은 엄청난 고난과 이 고난을 이겨낸 자존감 때문에 그도 전향서를 쓰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도, 그는 ‘남이야 무어라 하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전향서를 쓰게 되는데, 그의 소신과 지혜와 용기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이 책에서 나타난 그의 고매한 인품으로 보아 그는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이 책은 전쟁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모함과 핍박이 없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씌어졌을진대, 저자의 이 간절한 바람대로 전쟁과 모함과 핍박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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