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칼럼니스트

지덕행 겸양위상

저는 오래 전에 스승님으로부터 여덟 가지 마음가짐을 다짐 받았습니다. 그 제 1조가 ‘겸양이상의 미덕은 없다’입니다. 그로부터 부지런히 이 <스승님 8훈(訓)>을 실천에 옮기느라고 무진 애를 썼으나 아직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 같아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이 ‘겸(謙)’ 자의 한문풀이를 주역(周易)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겸손’이란 산처럼 높지만 땅처럼 낮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겸(謙)’의 뜻을 나타내는 괘명(掛名)은 땅(地) 아래 산(山)이 있는 상(象)입니다. 풀이해보면, 산처럼 높은 학덕이나 재능이 있더라도 땅처럼 낮다고 생각하고, 산처럼 높은 공을 세웠다 해도 땅처럼 낮추는 것이 ‘겸’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산처럼 높이 여기더라도 자기 자신은 땅처럼 낮추는 것이 겸손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모자라서 낮추면 그것은 비굴이 되지만 가득 찼기 때문에 낮추는 것은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겸손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천도(天道)는 가득한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지도(地道)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며, 귀도(鬼道)는 가득 찬 것을 해롭게 한다.’했습니다. 즉 하늘의 달도 가득차면 기울고, 땅의 높은 언덕도 차츰 낮아지며, 귀신도 좋은 일에는 마(魔)를 끼게 합니다. 이처럼 하늘이나 땅, 귀신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하여 이지러지게 하거나 변화시키거나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情)도 가득 찬 것을 싫어하는 천도(天道), 지도(地道), 귀도(鬼道)를 본받아 가득 찬 체 하는 자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교만한 자를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함이 아니겠는지요? 하늘이나 땅, 귀신의 도(道)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거나 변화시키어 그것을 모자란 것에 다 채워줍니다. 이것이 바로 ‘겸’의 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겸의 덕’을 본받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 권력, 재능, 학식 등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합니다(益謙). 또한 아래로 흘려보내어 어려운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요(流謙). 그래서 ‘겸의 덕’을 한 마디로 가진 자의 베풂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면 이익을 받습니다(謙受益). 그러니까 겸손은 자기 자신을 겸허(謙虛)히 하는 것, 즉 낮추고 비우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어 결국 이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수익(謙受益)’이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이 가득 찼다고 자만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만초손(慢招損)’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와 남 그리고 세상사에 절대 필요한 덕목이 겸손입니다. 자신에게 겸손하면 얻음과 발전을 이룰 수 있고, 남에게 겸손하면 사랑과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세상사에 겸손하면 실패와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내가 겸손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워야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은 경쟁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어느 곳을 보아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선의의 경쟁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악의에 찬 경쟁은 다툼을 일으키고 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음양으로 대립되어 있지만 선의로 화합하면 조화를 이룹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이 이루어 내는 신비로운 조화 아닐까요?

그리고 겸손은 낮은 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자도 겸손해야 합니다.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61장에 보면, “큰 나라가 자신을 낮추어 작은 나라를 대하면 작은 나라를 취하게 되고, 작은 나라가 자신을 낮추어 큰 나라를 대하면 큰 나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낮춤으로써 취하게 된다.

그런데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겸병(兼倂)하여 이끌려고 하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섬기려 할 뿐인데, 양쪽 나라가 모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큰 나라가 마땅히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인지덕행(人之德行) 겸양위상(謙讓爲上)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사람의 덕행은 겸손과 사양이 제일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겸손이란 자신의 능력이나 공을 과시하지 않는 태도이지만,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긍심까지 없는 것은 겸손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겸손하게 물러나서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내적 충만감을 먼저 가져야 진정한 겸손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라디오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찰에서 기소(起訴)했다는 얘기가 매 시간마다 쏟아져 나옵니다. 그야말로 MB에게는 겸양지덕은 온데 간 데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도 헌정사상 최초로 현역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임기를 열한 달 남겨둔 채 청와대를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역시 겸손했더라면 그런 오욕(汚辱)의 역사를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가 있었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그들 자신이 하나같이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일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 수 많은 영웅호걸이나 경세가(經世家)들이 큰 공과 업적을 세우고도 비명횡사한 것은 공적을 쌓는 데는 성공했으나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나 개인의 흥망성쇠가 한 결 같이 겸손으로 일어났다가 자만으로 쇠하게 된다 한 것이지요.

겸양 이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우리 늘 척(慽)없는 말을 하고, 넉넉한 말을 하며,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고, 조금이라도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심 없이 기도드리면, 첫째는 우리의 마음이 대자 대비한 부처님의 심경을 이루어 먼저 이익이 돌아오고, 둘째는 그 소원이 마침내 달성되어 세상에 그 이익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인지덕행 겸양위상’의 진리를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1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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