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스프리존 DB자료

[뉴스프리존=김희수 기자]지난 2015년 지방의 한 대학 A 교수는 여학생들을 성희롱했다는 사유로 해임되자 억울하다며 소송을 냈다. 해임이 적법했다는 1심과 달리 2심은 A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징계사유 14건 중 8건을 인정하며 해임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수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반복적·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하고도 진심 어린 사과 대신 피해자 회유에 나서 2차 피해를 불렀다”며 “계속 근무하면 다시 성희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선 컴퓨터 실습 시간에 질문에 답을 하며 교수가 뒤에서 끌어안았다는 피해 여학생 B의 주장은 발생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여럿이 받는 수업인 데다 B 학생이 익명 강의평가에서도 별도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었다는 이유였다. B 학생의 부탁을 받고 과거 자신도 학과 엠티에서 자는 동안 얼굴에 입맞춤을 당했다고 나선 여학생 C의 주장은 애초 신고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진술 자체를 배척했다. 일부 징계사유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제자의 뺨까지 때렸는지는 입증이 부족했고, 학생 1명은 재판에서 “장난으로 받아들였다”며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부인해서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차 피해 우려 등을 감안할 때 C 학생의 진술 배척은 신중하지 못했고 B 학생 역시 여러 차례 비슷한 신체접촉을 겪은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는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다. A씨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강의평가가 긍정적이라거나 피해 이후로도 계속 A씨 수업을 들었다는 이유, 피해 진술이 소극적이었다거나 뒤늦게 이뤄졌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자 진술을 믿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은 법원이 충분히 심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성희롱 관련 재판에서는 2차 피해를 우려하는 피해자의 마음과 양성평등의 시각, 감수성을 갖고 심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살필 때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불이익 등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덧붙였다.

또, 역지사지 관점에서 당시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을까도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성희롱 소송의 심리와 증거판단의 법리를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면서 “향후 모든 성희롱 관련 사건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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