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여성의 날, 광화문에서 ⓒ뉴스프리존

권력관계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타고난 유전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어떠한 미래로 나아갈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성범죄에 대한 인식은 다소 후진적이었다. 범죄 책임을 피해자의 주의 깊지 못한 품행으로 돌리거나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편견이 있었다. 과거 여성의 정조관념이 만연했었던 사회에서 오히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는커녕 숨기기에 바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피해자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하에 2013년까지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처럼 덮어오기만 하던 여성 성범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미투 운동이다.

이러한 미투운동의 확산은 갑자기 한순간에 떠오른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 내재되어 있던 인권의 문제가 미투라는 움직임에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투 운동은 SNS에 ‘Me Too’ 해시태그(#MeToo)와 함께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폭로하며 여성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이다. 2017년 유명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파문 당시 미국의 영화 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참여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후 체육계, 정치권으로 퍼진 미투 운동은 미국 여성들에게 피해 사실 폭로에 용기를 주었다. 또한,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유명 배우들이 집단 항의 의식과 연대감을 상징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며 다시금 미투 운동에 열기가 붙었다.

남성과 여성, 상사와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등 한쪽이 우위에 있는 상하의 권력관계와 그 권력관계 아래에 놓여진 약자의 인권의 문제가 동시에 분출된 것이 이번 미투운동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한국에서도 미투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1월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이하 서 검사)의 검찰 조직 내 강제추행 폭로로 시작한 국내 미투 운동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서 검사는 지난 1월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모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그녀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하며 재차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주위에서 피해자가 직접 나가서 이야기해야만 진실성에 무게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서 이렇게 나오게 됐다”라고 말문을 연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 나왔다”라며 자신의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서 검사의 폭로로 법무부와 검찰은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구성해 검찰 조직 내 성범죄 진상규명을 예고했다. 이러한 현직 검사의 폭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녀의 용기는 국내 미투 운동 확산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의 불씨는 연극계로 퍼졌다. 지난달 14일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이하 이 씨)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연극계의 대부로 알려진 그의 비상식적 행태는 연극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이 씨에 대한 추가적인 폭로도 이어졌고, 배우 김지현 씨는 이 씨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낙태를 했으며, 재차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 씨는 지난달 19일 공개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지난달 28일 ‘이윤택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은 이 씨를 강제추행,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 씨 외에도 오태석 연출가에 대한 성추행 폭로도 이어졌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낸 그의 작품에 7차례에 걸쳐 4억 원 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지원된 사실이 밝혀지며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연예계에도 미투 운동 바람이 불었다. 지난달 20일 배우 故 조민기를 시작으로 조재현, 오달수, 최일화 배우와 관련된 폭로가 이어졌다. 이들 모두 드라마·예능 하차와 교수직 사퇴를 하며 공개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이후 문단에서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 전 충남지사 안희정 외에도 의료계·종교계까지 성범죄 피해 사실들이 잇따라 폭로되며 국민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투 운동 피해 사례의 공통점은 불합리한 권력 구조하에서 범죄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교수와 제자, 연극 제작자와 배우 등이 그 예다. 피해자는 업무나 인사상의 우월적 지위를 갖는 가해자의 범행 사실을 쉽게 신고하지 못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권력형 성범죄는 대부분 조직적 은폐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가해자 처벌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에 정부는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 법정형을 대폭 강화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경우 최대 징역 5년, 최대 벌금 1천 500만 원에서 최대 징역 10년, 벌금 5,000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 예정이며, 공소시효도 7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피해자의 범죄 사실 신고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수사 과정에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 적극 적용과 피해자에 대한 온라인 악성 댓글을 엄벌할 것을 약속했다. 앞으로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 강화 등을 통해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피해자들을 보호·지원할 방침이다.

사회 확산, 드러나는 미투 부작용

한편에서는 ‘당신과 함께하겠다.’라는 의미의 ‘위드유(With You)’운동이 함께 확산되고 있다. 미투에 공감하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한다.’는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번 미투운동으로 인해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성적 고정관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희망도 생긴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며 여러 사회적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펜스룰’이 번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성과의 접촉을 일체 차단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펜스룰을 지지하는 남성들은 미투 운동을 지켜보며 회식 자리에서의 악수와 같은 사소한 신체 접촉, 휴식 시간 가벼운 농담 등이 자칫 성범죄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가했다고 한다. 불안 속에 살 바에 여성과 업무 외의 일로 접촉을 사전에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범행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2차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도 남성들로 하여금 펜스룰을 지지하게 하고 있다.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 한 번 여성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받아 여성과의 접촉이 부담스럽다고 남성들은 주장한다. 이처럼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기피 현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펜스룰이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을 애초에 배제하는 펜스룰은 직장 내 여성의 기회 감소와 고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들의 업계 내 입지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채용에서도 남성 선호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70년대부터 직장 내 여성 성희롱이 문제가 된 미국에서 기업들은 남성 고용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한국에서도 2013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 이후 해외 순방에서는 모두 남성 인턴으로 대체하는 일이 있었다.

▲사진: 여성의 날, 광화문에서 ⓒ뉴스프리존

문제는 펜스룰이 한국 사회 내 여성 성범죄 근절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펜스룰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소통 부재로 이어져 여성 성범죄 해결에 어려움을 준다. 성범죄 희생자들을 위해 시작된 미투 운동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져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펜스룰을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을 겪으며 변화의 과도기에 겪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여성 성범죄 근절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남성들이 극단적인 펜스룰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펜스룰을 명분으로 이뤄지는 우리 사회 속 여성 차별에 대해 지속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권력 중심형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미투운동의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해

미투 운동의 ‘일방성’에 대한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일 미투 운동으로 성추행 의혹을 받던 배우 故 조민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음란 메시지, 커피숍 직원 강간 미수 등의 폭로에 대해 성실히 경찰 조사에 임하기로 입장을 밝힌 그는 가족과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이 사건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죽음으로 미투 운동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미투 운동 열기의 악용 혹은 폭로 이후 입증된 사실과 관계없이 이뤄지는 여론몰이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미투 운동은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거친 비난과 온갖 신상 정보가 파헤쳐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자칫 선의의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을 크게 훼손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故 조민기의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는 근거는 없지만 인터넷상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진행되는 여론재판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며, 우리가 경계해야할 대상임은 확실해 보인다.

미투 운동은 국내 여성 성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확실히 이전과는 변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피해자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운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 속 여성 성범죄, 특히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고 여성 성범죄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성평등 사회로 한 걸음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투운동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의 변화를 기대하며, 공직사회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양성평등하고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에 더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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