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유명한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있습니다.《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이 말은 사방에 초(楚)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와 궁지에 빠진 것을 비유하는 말이지요. 진(秦)나라가 멸망한 후,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면서 5년 동안 싸움을 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쌍방은 싸운 지 4년째 되던 해의 가을, 홍구(鴻溝)의 동쪽을 초나라, 서쪽을 한나라 영토로 하며, 항우가 인질로 잡고 있던 유방의 가족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항우는 약속대로 동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방은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의 계책에 따라 협정을 위반하고 항우를 공격합니다. 항우는 해하(垓下)에 진을 치고 한 군과 대치했습니다. 이때 항우의 군사는 10만, 한나라 군사는 명장 한신(韓信)이 이끄는 30만 대군이었지요.

한나라의 군대는 유방의 20만 대군, 그리고 팽월(彭越)의 3만 군사, 또 경포(黥布)와 유가(劉賈)의 군사를 합쳐 약 60만 대군이었는데, 주력은 한신의 군대였습니다. 천하를 놓고 진검 승부를 펼치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나라 군대는 항우의 군대를 여러 겹으로 에워쌌습니다.

항우의 군대는 한나라 군대에게 물샐틈없이 포위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군량마저 떨어져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나라 군사들이 펼친 심리전이었습니다. 항우는 초나라 군사들이 한 군에게 모두 항복한 줄 알고 그만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항우는 크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리 많단 말인가?” 항우는 이 싸움에서 대패했고, 계속 쫓기다가 오강(烏江)에 이르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전을 사용했던 유방과 한신, 이에 당한 초패왕 항우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남방의 초나라 출신입니다.

이 초나라를 중심으로 한 남방의 노래를 ‘초가(楚歌)’라고 하는데, 감상적이고 애잔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구슬프기 짝이 없는 노래입니다. 부모처자를 두고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전쟁과 향수에 시달려 온 항우의 병사들 중 구슬프고 애잔한 이 고향의 가락을 듣고 탈영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대한항공의 조현민 전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날뛰다가 이윽고 구룹 전체가 사면초가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대한항공 총수 일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처하게 된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다. ‘갑 질 물 컵’ 하나가 쓰나미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하도급업체 직원들의 ‘갑 질 제보’로 시작한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회사 직원 등 1000여명이 ‘총수 일가를 몰아내자’는 내부 반발이 이 사면초가의 정곡을 찌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토부는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무가 2010년 3월~2016년 3월까지 6년 동안 대한항공 계열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 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것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외국인은 국내 항공사 등기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법이 있는 모양입니다. 청와대 사이트에는 대한항공에서 ‘대한’이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는 청원이 최근 1주일 새 400건이 넘었습니다. 여기다가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양배추 · 체리에서부터 값비싼 드레스 · 가구까지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채 밀반입했고, 이 과정에서 항공기와 직원들을 사적(私的)으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총수일가의 갑 질 사태의 하이라이트는 총수부인이라는 여인의 갑 질 횡포 동영상이 터진 것입니다. 조 전무의 ‘갑 질’ 사태 이후 비난 여론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데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인 것이 전부입니다. 그나마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언론과 많은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물 컵 갑 질’ 논란이 벌어지는 사이 대한항공 주가는 7.1% 떨어져 시가총액 2400억 원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소성대는 천리(天理)의 원칙’이라 했습니다. 악업(惡業)도 이소성대의 천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소성대란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지요.

‘이소성대’는 원불교 창립정신의 하나입니다. 세상사가 모두 이소성대의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를 천리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부나 사업이나 기타 무슨 일이든지 허영심과 욕속심(欲速心)에 끌리지 말고 이소성대의 원칙에 따라 바라는 바 목적을 어김없이 성취하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은 선업(善業)만이 아닙니다. 악업도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악업이 태산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티클 악업을 초기에 진화해서 싹을 없애야 합니다. 그 방법은 진정한 참회(懺悔)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하건대 큰 솥 가운데 끓는 물을 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위에다가 약간의 냉수만 갖다 붓고, 밑에서 타는 불을 그대로 둔즉, 불의 힘은 강하고 냉수의 힘은 약하여 어느 때든지 그 물이 냉해지지 아니 함과 같은 것입니다. 반대로 저 솥 가운데 끓는 물을 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솥 위에다가 냉수도 많이 붓고 밑에서 타는 불도 꺼버리면, 아무리 백 천 겁에 쌓이고 쌓인 죄업(罪業)일지라도 곧 청정해 지는 것이지요.

요즘 대한 항공 조현민 전무 사건은 이소성대의 천리와 진정한 참회의 원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눈이 제 눈을 보지 못하고, 거울이 거울 자체를 비추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아상(我相)에 가려 제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의 시비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부인은 자타를 초월하여 자신을 살펴야 자타의 시비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악업도 작은데 부터 커져 대악을 이루어 마침내 사면초가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 아무리 사소한 악일지라도 처음 악의 싹이 나올 때 여지없이 잘라버려야 큰 악을 막을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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