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소리

 그 다음의 작품 또한 두 눈에 가득하게 들어왔다.〈아내〉란 제목의 인물화인데 같은 화가의 그림이었다. 애춘은 국내에서 꽤 인정받는 화가라고 잠깐 언급해 주었다. 아마도 화가의 가슴엔 현대인의 시대적 정서의 필요성을 내다보며 절실히 가슴 속에서 물결치는 그 내적인 생명을 그려낸 듯했다.〈아내〉란 그림은 애춘에게 사뭇 뭉클하게 다가왔다. 전원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한 어느 한 농부의 아낙이었다. 그 여인은 석양이 지는 들녘을 바라보며 처마 밑의 마루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모습이었다. 화가는 아내란 늘 기다림과 그리움의 존재라는 것을 표출하는 듯했다. 지선도 그 그림이 너무도 좋아 소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모델하우스 운영 때문에 재정난에 허덕이기 때문에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때 애춘이 그 그림을 사들였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먼 그림이지만 이 그림이라도 보면서 위로 삼아야죠!”

지선은 그 그림을 매입하는 애춘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아주 잘 사는 것입니다. 명품의 샤넬 핸드백을 사느니 훨씬 현명한 소비가 되지요. 분명히 이 그림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시대의 정서를 표현하는 현대사회에 목말라하는 내적 정서를 채워줄 수 있는 명화가 될 것입니다.”

오래 전, 그때 좋아보여서 그림을 구입했지만 그것들을 펴보지도 않고 포장한 상태로 밀실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방치하여 처박아 두었다고 해야 옳았다. 그 때 애춘은 그것을 보고픈 욕구도 없었고 오직 허무 속에 난잡하고 혼란한 삶에 가리어 그것을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애춘은〈고호의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문득 그 사실을 상기했다. 오랫동안 그 그림들을 처박아 두고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애춘은 벌떡 일어나 2층의 화실로 올라갔다. 화실은 오랫동안 밀폐되어 공기가 탁하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애춘은 마치 보물을 다루듯 서서히 그 그림들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식사〉와〈아내〉의 그림이 찬란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애춘은 그 그림들을 방치해 둔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게만 여겨졌다. 마치 보석과 같은 귀한 것을 버리고 자신은 쓸데없는 방탕 속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하였다.

‘너무도 허랑방탕하여 보물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이제 화실이 점점 밝아지고 온기가 있는 듯했다. 애춘은 이제 그림들의 내용이 자신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자신에게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애춘은 화순 댁에게 대청소와 정리정돈을 시켜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화실에서 보내는 거야! 새로운 세계를 그려보자. 나의 마음 속 깊은, 내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그렇게 하기도 짧은 인생이 아닌가! 누구도 원망하지 말자. 나 스스로도 미워하지도 말자.’

애춘은 다짐하며 외쳤다. 문득 지선이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이 그림을 사고 싶은데 모델하우스 운영에 재정이 시달려서….’

언뜻 스친 그 말에 애춘은 자신이 왜 그렇게 무관심하게 지나쳤는지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후원회가 되어 주었어야 하는데… 그 일을 지선과 함께 하면서 아름다운 세상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살아야겠다는 의욕으로 힘이 치솟았다.

애춘은 붓을 들어 이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남편〉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그림은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잡히지 않았다. 감동의 기억이 없었다. 다만 목석같고 냉담하고 시니컬한 남자! 그 남자의 어깨에 매달려 집착하는 어느 어리석은 여자! 바로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이 스칠 뿐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모성을 찾아 유방을 향해 기어가는 어린 아기의 애처로운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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