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세월호 사고’ 당시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는 청원 게시물이 올라왔다.

강 교감의 유족은 지난 20일 해당 게시판에 ‘故 강민규 교감선생님 위험직무순직공무원 인정 및 강압수사 의혹 진상규명’이라는 제목의 청원 게시물을 올렸다. 유족은 게시물에서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희생자는 305명”이라며 “교감선생님의 죽음 또한 (희생되신) 다른 선생님들과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강 교감은 선실을 오가며 학생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 구명조끼 착용을 독려했고 배가 기울자 비상구 쪽으로 팔을 내밀어 인명을 구조했다. 강 교감은 평소 지병으로 앓고 있던 당뇨 때문에 저혈당 쇼크로 정신을 잃고 헬기로 구출됐다.

뭍에서도 시신 수습을 도우며 인명 구출에 사력을 다했지만 일부 유가족들의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낙담한 강 교감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 뒷산에서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 내용에서 비통한 심경이 전해진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또한 작년 복구된 한 희생자의 카카오톡에서 “교감은 (출항) 취소 원하고”라는 사고 전날의 메시지가 발견됨에 따라, 강 교감이 당초 세월호 출항에 반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안타까운 사연이 세간에 알려졌지만 강 교감은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유족은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상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와대 청원을 시도했다. 유족은 게시물에서 “현재 있는 법으로는 죽음의 형태가 순직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재판부의) 기각 결정을 받았다”며 “저희가 주장하는 것은 공무상사망/순직/위험순직 등의 명칭으로 세월호 교사들의 죽음을 나누는 게 아니라, 모두 같은 입장으로서 인정해 주고 동등한 처우를 받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유족은 “교감선생님의 죽음은 세월호 합동영결식, 추도식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며 “법에서 외면하고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기억해 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유족 측은 현재 강 교감의 순직 인정 요구와 함께 사고 당시 해경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사고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세월호 4주기 영결추도식에 전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세월호의 완전한 진실 규명을 다짐한다. 미수습자 수습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세월호의 슬픔을 나눈 국민의 뜻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강 교감 순직 인정 청원에 청와대가 어떻게 응답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월호 재판부가 말하는 뒷 이야기

“세월호 참사는 부실한 배와 조타수의 실수, 구명벌(팽창식 구명뗏목) 오작동, 선박 내부구조 경험 없는 해양경찰이 만들어 낸 종합적인 인재(人災)다.” 처음 세월호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다. 이는 영화 <그날, 바다>에서 제기하는 ‘의도적 침몰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법정에서 증명된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소속 오준호 작가는 책 <세월호를 기록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014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에 이준석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사건이 들어왔다. 광주지법은 이들을 시작으로 장장 274일간 총 48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각기 다른 9개의 1심 재판을 진행했다. 한 명의 재판장이 두 개의 재판부를 번갈아가며 공판을 진행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간경향>은 이 사건 재판장이었던 임정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작성한 ‘세월호 사고 관련 제1심 재판 백서’를 지난 4월 26일 단독입수했다. 189쪽에 이르는 백서에는 재판과정에서 진행된 각종 뒷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세월호와 구조와 규모가 같아 쌍둥이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와 진도VTS 관제실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시도는 했으나 결국 무산된 세 번째 현장검증이다. 당시 재판부는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김경일 해경 123정의 정장에 대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 입증을 위해 현장검증을 먼저 제안했다. 당시 재판은 승조원들이 123정에 설치된 확성기를 이용해 퇴선명령을 했을 경우 세월호 선내에 있던 승객들이 안내방송을 듣고 탈출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안내방송만 했더라면 인명피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상공에 1~2대의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세월호의 규모상 확성기로 탈출 안내를 했더라도 승객들은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세월호와 비슷한 규모의 선박과 사고현장에 출동했던 헬리콥터를 이용해 비슷한 상황을 구현하는 현장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과 유가족 측에서 반발이 이어졌다. 임 부장판사는 백서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검찰은 현장검증을 하지 않더라도 향후 제출할 증거를 통해 확성기 소리가 선내 승객들에게도 들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유가족들 역시 재판부가 해경 정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하려 한다고 오해하고 피해자 진술을 통해 현장검증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최종적으로 불발에 그친 이유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예산상 세월호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선박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150톤 소규모 선박으로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도 없었다. 헬리콥터가 선박으로부터 수직방향으로 10m 떨어진 곳에 떠 있게 만들기도 어려웠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과 동일한 조건을 재현하기 어렵고, 선박규모와 헬리콥터의 높이를 수정할 경우 검찰과 피고인 양측 모두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실시하지 않았다.

힘겨웠던 동영상 증거조사

임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동영상 증거조사를 꼽았다. 재판이 한창 진행될 때 세월호 선실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 저장매체가 인양됐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선내 CCTV로 촬영한 동영상을 틀면 세월호가 전복된 직후 상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작 중요한 영상은 찍혀 있지 않았다. CCTV 영상 속에는 세월호가 출항한 후 전복되기 직전까지의 상황만 촬영돼 있었다. 결국 침몰시점 상황을 알기 위한 증거로 나온 것이 아이들이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이었다. 증거조사를 위해서는 법정에서 ‘현출’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가족은 선장 등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나가는 장면이나 숨진 학생들의 육성 등 생존 모습이 그대로 담긴 영상이 법정에서 재생되자 소리를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렸다고 임 부장판사는 기술했다. 재판부는 휴정 후 나머지 동영상을 법정에서 재생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정작 유가족의 반발에 부딪혀 결정을 철회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부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 이후 공공기관에 의해 사고 관련 정보의 제공이 제한되고 있으며, 여러 국가기관에서 자신들을 감시하고, 사고 관련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영상의 나머지 부분 재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재판부에 대해서도 사과 관련 정보를 숨기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백서 전체를 통틀어 이때의 판단을 가장 후회하는 대목으로 꼽았다. 처음부터 피고인들의 혐의와 관련된 동영상 일부만 재생하고, 나머지 동영상에 대해서는 재생하지 않겠다는 것을 사전에 고지했다면 유가족들의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임 부장판사는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해경은 왜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안 했나

지금도 의문 중 하나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출동한 해경의 미흡한 대처다. 임 부장판사는 원인으로 해경의 무능을 지적했다.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구조하는 방법조차 모를 정도로 무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서 각주에는 임 부장판사의 의견이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해경과 다른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들은 선장의 퇴선명령에 의해 승객들이 해상으로 나오는 통상적인 해난사고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만 받았다. 때문에 당시 사고현장의 해상에 승객들이 없는 것을 보고도 (내부에 진입해 구조해야 한다는 판단보다는) 당황한 나머지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대목에서 4년 전 수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어라.” 만약 선장이 적절히 승객들에게 세월호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만 했다면 304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제대로 된 정기점검조차 받지 않아 쓸 수 없었던 구명벌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인명피해를 더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백서는 기술하고 있다. 설령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출동 당시에는 몰랐더라도 이후 내부 승객들에게 적극적으로 퇴선 유도조치를 하지 않은 해경의 무능 역시 죄였다. 재판부는 김경일 목포해경 123정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여성기관사는 뭘 한 걸까

검찰은 공소사실 외 세간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도 피고인신문절차 및 증인심문절차에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중 하나가 JTBC가 제기한 여성기관사가 엔진 근처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CCTV 영상에 대한 의혹이었다. JTBC는 이 영상을 토대로 사고 원인이 엔진 이상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백서에서 내린 결론은 세월호 합동수사본부가 내린 결론과 동일한 ‘단순한 페인트 작업’이었다. 물론 여전히 이 부분은 각계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백서 출간을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시기를, 생존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사고로 인해 얻은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극복하시기를 기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재판은 모든 사건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내려져 마무리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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