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엘지(LG)그룹 총수 일가의 100억원대 탈세 혐의 수사에 나섰다. ‘지배구조 모범생’으로 통하는 엘지는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총수 관련 비리가 불거진 적이 없을 정도로 ‘오너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검찰은 “국세청 고발에 따른 탈세 수사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수사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 최호영)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엘지그룹 본사 재무팀 등을 압수수색해 세무·회계 관련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엘지그룹 본사가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지난달 국세청으로부터 총수 일가가 엘지 계열사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100억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고발인 중에는 구본무 엘지 회장은 빠진 대신,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포함됐다. 구본능 회장은 양벌규정에 따라 본인을 대리해 주식을 처분한 행위자와 함께 피고발인에 포함됐다고 한다.

국세청은 총수 일가가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기 위해 ‘장외거래를 가장한 장내거래’로 계열사 지분을 거래한 과정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주식은 장내거래일 경우 대주주 주식에만 과세를 하는데, 장외거래(시간외 거래)일 때는 대주주뿐만 아니라 주식을 양도한 모든 주주가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최대주주인 구본무 엘지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법인 2곳 제외)은 34명이다. 이 가운데 대주주 요건인 지분율 1% 이상은 6명(2017년 말 기준)이다. 검찰은 엘지 총수 일가가 양도소득세를 덜 내기 위해 서로 매도-매수 규모와 시간을 짠 뒤 장내에서 거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외거래를 가장한 장내거래’ 방식의 처벌 가능성을 두고는 법조계 관측이 갈린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이런 거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세금 탈루 고의성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보기 힘들다.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한 거래 등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때 고의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구광모 엘지 상무(지분율 6.24%)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편법·불법 여부까지 열어두고 수사에 착수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 시작부터 엘지그룹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재무팀을 곧바로 겨냥한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의 양아들인 구 상무는 2006년만 해도 지주사인 ㈜엘지 지분율이 2.75%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으로부터 190만주를 증여받아 지분율을 6.24%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11.28%)과 구본준 부회장(7.72%)에 이은 3대 주주다.

엘지그룹 관계자는 “일부 특수관계인들이 시장에서 주식을 매각하고 세금을 납부했는데, 그 금액의 타당성에 대해 과세 당국과 이견이 있어서 수사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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