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이틀 문재인 정부를 직접 겨냥해 맹비난을 쏟아내면서 북-미 간 비핵화 해법에 합의하는데 길잡이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난관에 부딪혔다. 청와대는 예민해진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로키(low key)’ 대응을 유지하며 국면 전환을 위한 물밑 접촉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전날 내놓은 비난 발언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제 시작단계인 만큼 멈추거나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이 일방적인 고위급 회담 연기를 통보하자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판문점 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유감”이라고 밝힌 데서 물러난 느낌이다. 리선권이 정부의 유감 표명에 “상식이하로 놀아대고 있다”, “어리석은 오판과 몽상”, “천인공노할 짓거리”라며 막말에 가까운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자 아예 북한에 대한 대응 자체를 자제한 것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반발이 단순한 신경전을 넘어 회담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본격적인 기 싸움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이틀 연속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은 섣불리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남북 관계를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구상에는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청와대가 전날 미국의 양보를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음에도 북한이 남북 관계 복원의 전제 조건으로 ‘엄중한 사태 해결’을 내건 만큼 남북 접촉은 북-미가 돌파구를 찾을 때까지 ‘올스톱’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워진 것. 남북관계가 북-미 회담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는커녕 북-미 관계의 종속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중재 역할을 자임한 문 대통령의 외교적 운신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핫라인 통화도 22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문제 삼고 있는 한미 연합훈련 ‘맥스선더’나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남북 정상이 직접 통화를 나누려면 새로운 명분이나 계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불만을 달래면서 북-미 간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비핵화 해법의 접점을 모색하기 위해 북-미-중과의 물밑접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반발 이후 북한과 지속적으로 접촉을 타진하는 한편 중국과도 소통을 이어가며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북-미 고위급 실무접촉이 지연될 경우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북한을 다시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동아일보]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