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준 시인의 시집 『공양젖 한 홉』의 화두

논어에서 이르기를 ‘공경하는 마음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부양한다는 것은 개나 말과 차이가 없다’라는 것처럼 詩(시)가 부양처럼 恭敬(공경)하는 마음이 체화되지 않으면 개나 말이 먹는 음식과 차이가 없다.

4부로 나누어진 김동준 시인의 시집 『공양젖 한 홉』은 익히 듣던 시인의 말과는 조금 상이하다. “기도를 하러 가는 길이 詩(시)를 짓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또 “기도하러 가는 길은 지난하고 뿌듯한 내 삶의 수행길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김동준 시인이 살아온 날 수 보다 살아갈 날수가 적은 삶의 궤적을 놓고 보면 “반추하다”라는 관념적 상황보다 실존적 삶의 방향성을 돌이켜 보는 自省(자성)이 그의 삶의 감정과 실천 의지를 인간의 본연 태도라고 믿는 품이 느껴진다.

1연 양쪽 합쳐 /족히 서너 되는 됐을 풍만한 발우/알맹이 털린 쭉정이처럼 가붓하다/ 2연 어머니 골수 짜낸 안다미로 차고 진진한 젖, /물고 / 내 뼈 마디마디 굵어지고/ 그 덕으로 굳건히 바닥을 딛고 / 어머니는 설설 바닥을 기고/3연 꿈결에 들어/ 어머니인 양 주어 본 아내의 발우/ 열 말 죄 공양하고/ 어머니 젖 진 자리처럼 가붓하다 『발우 전문』

앞에서 말한 공경하는 마음과 실천하는 공양의 실천적 과정을 통해 공자가 말한 내면적 도덕의 의미는 강조하지 않아도 잘 드러내 있다. 뿐 만 아니라 김동준 시인의 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를 통해 “내세와 현세”의 궁극의 통일성을 시를 통해 유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詩(시)는 성공하고 있고, 김동준 시인의 삶의 공경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體化 (체화)되어 잘 드러나 있다고 보여 진다.

공자가 말한 최고의 보편적 사랑은 양친을 공경으로 봉양하고 안팍으로 연장자를 恭順(공순)으로 받들고 효와 제를 말함인데 즉 최고의 실천은 가족 안에서의 사랑의 실천 이 근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당나라 때 최산남으로 불린 사람이 있었다. 山南(산남)에서 벼슬을 해서 사람들은 그를 산남이라고 불렀다. 최산남의 증조모 장손부인이 나이가 많아 이가 다 빠졌다. 산남의 할머니 당부인은 효성이 지극하였고, 매일 목욕을 하고 젖으로 시어머니를 공양을 하였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장손부인은 먹지 않고도 건강을 유지하게 되었다.

후에 임종을 맞이하는 데 있어 “나는 며느리의 은덕을 보답할 길이 없는데 증손자와 증손며느리들은 그가 나에게 효성했던 것처럼 그에게 효를 다하기를 바란다”라고 유언을 남겼고, 그 후 최산남은 당부인을 극진하게 공대하였다고 한다. 김동준시인의 詩(시)에는 구조적 장치는 불가의 풍이 확실하나 내면에 일상에서 그를 지탱하는 유가적 극기복례의 발원이 있으니 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다양한 방향성의 觀(관)을 보여준다 하겠다.

『눈색이꽃』에서 그는 눈 속의 내소사 기와불사 소원이 봄꽃처럼 피기를 바라고 “ 꽃에 녹지 않는 눈이 없지요”하고 얼음새꽃이 전하는 발을 들려주기도 하고 『골담초 연등』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바람은 온종일 푸릎 펴고 느긋하게 쉬고 있다”라고도 하며 여유를 부린다. 그러한 여유가 “보광전 처마 밑이 환하다”라고 긍정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산사나무 독경소리』에 등장하는 늙은 공양보살... 중략... 제법 잘 늙은 공양보살/ 제 몸에 품어 키운 직박구리 돌려보내고/ 애써 등뼈를 허물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物我一體(물아일체)적인 감각적인 부분과 『수국꽃 삼매에 들다』 “문수보살”이 나온다. “반야의 도리”를 희원하는 중에 시인이 인간의 도리로 이어진 작은 소로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김동준 시인의 시집에 나타난 나무들의 수령이 이미 神體(신체)를 이룬 샤머니즘적 사유가 잘드러나 있다. 『느티나무 경전』을 비암사 일주문에 문이 없다... 중략.../ 하기도 하고, 『모과나무 기둥』 거듭 육탈하여 겨우 뼈만 남은/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 늙은 고승 같다... 중략.../ 『소신공양』... 생략 .../ 통도사금강계단 제단 위/ 꽃 공양 올려지겠지요/라며 한국적 무속의 물체나 귀신이 거주하거나 관장하는 것이 아닌 생활에서 익숙한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지금껏 살펴본 김동준 시인의 시세계는 유불선의 사상이 혼융된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인드라망”이요. 사바세계에서는 “생명공동체사상”에 대한 동질의 결이다. 『공양젖 한 홉』 젖이 돈다/ 메지구름 옷고름 풀어헤친다/ 바싹 타 들어가는 대지로/ 대못 치듯 내리 꽂히는 젖 줄기/벅찬 기운 목젖 깊이 적실 틈 없이/ 금세 잦아든다/ 겨우 얻은 공양젖 한 홉/ 그것이 뼈였구나/ 마른 물관 자작자작하게 적셔주며/ 돌돌 말린 머위 잎을 /비틀린 하늘나리 꽃대를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정강이뼈였구나/ 휘모리장단에 입 맡긴 여름 하나/단 젖 먹은 자리마다 훅 끼치는 젖 내음/비릿하다 아기동자꽃 그새 씨앗 한 톨 품는다/[전문]

결론적으로 보면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十方世界現全身(시방세계현전신) 100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더라도 한 발짝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와 나는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범맥을 따라 조사들의 게송과 문답을 통해 이미 禪門公案(선문공안)인 無門關(무문관)에 등장하지 않는가? 김동준 시인의 4번째 시집 『공양젖 한 홉』은 그러한 점에서 극단적 자기희생이 초래하는 신비한 효감과 포상의 양상을 부정한다.

반추하여 산을 타고 끊임 업이 화두잡이에 조탁되지 않은 언어들과 꽃, 산사, 고찰을 찾아 떠나는 이승의 그의 구도는 행복하다. 무릎이 꺾일 때 쉬어가는 그는 지혜롭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봄에서 겨울이 아니라 겨울에서 봄을 향해 걷는다. 꽃들도 해를 닮아가지 않는가? 부디 선하디 선한 그의 심성과 김동준 詩(시)세계에 문수보살의 가호가 스미기를 바란다.

폭우가 내린 날백석의 시집을 넘기다가‘갈매나무’라는 시구를 덮은빛바랜 사진을 보며울컥 가슴이 미어졌다.사람이 사랑이란 다짐죄다 어디 떠나보내고상처만 주고받았는지이젠 수묵화처럼 남은사진 속 그 사람맑은 웃음만 떠오를 뿐전설처럼 잊히어간다. 한바탕 소나기 지난 자리마냥엉클어진 내안에 괴물이 사는가?그리워 그리워 울다가잊으려 잊으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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