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눈물로 쓴 시 70편…자택 ‘통일의집’엔 박물관 마련…‘남북관계 준비’ 시민 토론회도

통일 염원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떠오르는 한 사람은 늦봄 문익환 목사(1918~1994)다. 다음달 1일로 탄생 100년을 맞는다. 목자이자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운동가, 우리말을 사랑한 시인 문익환을 기리는 작업이 이어진다.

■ 문익환 삶을 담은 시집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문익환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던 그는 1968년 구약성서 번역 일을 맡으면서 문학에 눈을 뜬다. “문학작품 중의 문학작품이라는 구약성서를 어떻게 훌륭한 작품으로 옮겨내느냐는 생각이 처음부터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소.”(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 후기 중)

‘아름다운 우리말’로 성서를 옮기려는 시도는, 쉰을 넘긴 그를 시의 세계로 인도한다. 1971년 봄 무렵부터 시를 썼다. 모두 5편의 시집을 펴냈다. 출판사 사계절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를 최근 펴냈다. 70편을 추린 시집은 삶의 궤적을 따라 4부로 나눠 편집했다. 1부엔 어린 시절 추억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 존재론적 상념 등을 표현한 시들을, 4부엔 종교인으로서 고뇌를 담은 시들을 수록했다.

2부에는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전태일’ 등 민주화·노동운동 현장의 문익환을 떠올릴 만한 작품을 실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영화 <1987>의 대미를 장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26명의 열사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이가 문익환이다.

3부는 통일 열망을 노래한 시들로 가득하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잠꼬대 아닌 잠꼬대’)라고 시를 썼던 문 목사는 1989년 평양을 방문해 ‘4·2 남북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시집 제목은 시 ‘손바닥 믿음’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지난 4월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꼭 잡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게 누구 손이지/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손이 손을 잡는다/ 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 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인정이 오가며/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 내일이 밝아 온다”(‘손바닥 믿음’ 전문)

김숨 작가는 추천 글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어 더 낮아질 데 없는 자리에서 눈물로 쓴 시들”이라며 “그가 우리의 선한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목자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이 한 권의 시집으로도 충분”하다고 적었다.

■ 통일의집 박물관 개관

문익환이 세상을 떠나기 전 24년을 살았던 집(서울 도봉구 수유동 527-30)이 다음달 1일 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한다. 이름은 ‘문익환 통일의집’이다. 붉은 벽돌 단층집인 이 집은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역사의 현장’이다. 민주화·통일운동을 이유로 11년2개월을 옥중에서 보낸 그는 출소 뒤에도 툭하면 가택연금,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 집에서 ‘3·1 민주구국선언문’을 썼다. 문익환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김대중·함석헌 등과 기소된다.

문익환은 1994년 1월18일 이 집 안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인 박용길 장로는 ‘통일의집’이라고 현판을 직접 써 붙여 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통일 논의와 교육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1년 박 장로 타계 후 유족은 통일의집을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사단법인 통일의집이 발족한 2016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집에는 문 목사가 쓴 편지와 성명서부터 사진, 서예품, 미술작품 등 각종 자료가 2만5000여점 남아 있다.

통일의집 측은 ‘문익환 목사 가택 박물관 프로젝트’로 스토리 펀딩을 진행했다. 목표액은 1000만원이었으나, 7300여만원이 모였다. 시민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상시 전시한다. 다양한 평화·통일 프로그램도 연다.

■ “평화와 화해의 길로”

탄생 100년을 맞아 되새길 만한 그의 사상은 무엇일까. 문익환의 큰딸인 문영금 통일의집 관장(70)은 “문익환 목사는 생전 ‘절차적 통일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우리 마음속의 통일’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체제나 지역, 성별 등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게 우리의 모습인데, 먼저 화해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면서 “정치가만 통일운동을 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 생활 속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상과 행적을 기리는 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29일 오후 1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새로운 남북관계 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란 주제로 시민토론회가 열린다. 31일 오후 6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다시 늦봄의 사상과 꿈을 말하다’란 주제의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통일의집 개관식은 6월1일 오후 5시에 열린다.[=경향신문]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