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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白山) 곽권일(郭權一 ) 화백 “자연으로 귀의 하시다”백산선생" 46년 화업의 걸음을 멈추다"
  • 박재홍 (시인. 전문예술단체 장애인인식개선 오늘대표
  • 승인 2018.06.03 08:56
  • 수정 2018.06.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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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01일 07시30분 백산 곽권일 화백의 발인이 있었습니다. 새들도 철마다 계절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을 하듯이 화업(畵業) 또한 선생의 풍이 있으니 이것은 내림이요 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산 곽권일 선생의 스승은 백포 곽남배 선생님으로 “실경 산수화의 대가로 풍류, 멋과 관용, 여유, 해학과 기지를 함축하고 있는 서정적 작가로 국내뿐 만 아니라 일본미술연감 외국작가 명단에 등재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분으로 ‘모닥불’, ‘원두막’,‘청해소견’등의 독특한 화풍을 남겼으며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분으로 한 집안의 형님 이었습니다.

 뿌리가 깊으면 그늘도 깊다는데 白山(백산) 郭權一 (곽권일)선생은 화력 46년의 외길을 걸어온 동안 『전일본전』 공모전에 특선 우수상 대상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전통약식의 화을 올곧게 천착하여 법통을 이었고, 무궁화를 비롯해 동백, 모란, 매화, 철쭉, 장미, 각종 조류 등 花鳥畵(화조화)에 능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와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근작에서 풍경이나 산수 등이 자주 등장하였고 시대정신에 걸 맞는 기법상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여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의 화풍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모닥불을 소재로 한 작품 <早春(조춘)>은 스승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하지 않지만 선생이 자란 유년의 해안가의 갈대밭과 모래사장을 묘사한 작품 <고요한 가을 아침>은 먹의 남용을 최소화한 세련된 이미지화로서의 수준 높은 역량을 보여주신다 할 수 있습니다. 근경의 유려한 농묵과 중경의 듬성듬성 솟은 연갈색의 모래톱은 한 폭의 시요 그림이라고 김남수 미술평론가는 말했습니다.

  백산 곽권일 선생의 삶의 궤적도 남달랐습니다. 한국의 남단 예향 진도에서 태어나 남도창의 발상지인 그곳에서 많은 화가들이 배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화목으로 우뚝하게성장시킨 선생은 가문 자체가 화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문중이기도 합니다.

  특히 말년의 선생은 서정성 짙은 색채감을 드러내며 유년의 자연환경에 대한 경도된 화풍을 통하여 스승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무궁화에 대한 애착을 보여 작품의 실용성과 대중성을 추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 하셨습니다. 작고하기 전까지 일본과의 대회 교류 및 중국 화랑과의 교류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국제 교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백산 곽권일 선생의 타계는 호남 실경 산수화의 토착화된 화맥 중 하나가 단절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호탕함과 義氣(의기)가 남달랐던 선생의 타계는 전통문화의 부재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차례 심장이식 수술을 하면서도 “살아 나왔어” 하면서 부인 자랑과 딸 자랑 아들 손주 자랑을 하시면서도 붓을 잡으면 선봉장처럼 기개를 잃지 않고 빈 화폭을 호령하시는 모습을 떠올릴수록 주변에 선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필자의 사무실에 들려 휘호를 하시며 즐겁게 주고받던 담소가 아직도 귓가에 풍경처럼 우는 것을  한참동안 여운으로 품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백산 곽권일 선생이 통화중에 하시는 말씀이 “박관장 바쁜 일 좀 끝났나? 같이 일해야지 아직 내가 좀 젊을 때 말이여 안 그런가?” “首丘初心(수구초심)하시며 백포 곽남배 선생의 미술관 건립을 걱정하시더니 그예 소천 하셨습니다. 선생님 약속했던 비문 쓸 사이도 없이 그곳에서 여여 하십시오” 라고 가슴에 길을 내고 말았습니다.

박재홍 (시인. 전문예술단체 장애인인식개선 오늘대표  pjh214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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