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재판거래가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관련자의 사법처리를 촉구하며 단식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프리존=강상덕 기자 ] 사법부가 정부와 재판거래를 하고 특정 판사를 사찰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과거사 사건 원고·피해자들'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 피해자를 두 번 울린 양 전 원장을 구속하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주업 공무원노조위원장은 “사법부가 자신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재판을 가지고 정권과 흥정하고 블랙리스트 만들었다는 사법농단 사건이 벌어졌지만 사법부의 책임 있는 고위 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시작해 약 10시간 동안 논의를 거친 후 4가지 항목이 포함된 결의안을 발표했다. 결의안에는 형사조치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실행할 것을 다짐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사법부는 자체 해결을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촛불이 끝난 이후 대법원에 이런 의혹을 제기하면서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과 기회를 줬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것은 사법부 자체로는 이 문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날 결의안은 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대표 21명이 공동 발의한 항목별 의안에 대한 논의를 거친 뒤 표결을 통해 재적인원 115명 중 의장을 제외한 과반(58명 이상)이 찬성해 의결됐다. 법관대표회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절차였다. 이번 법관대표회의 결과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형사조치, 구체적으로 검찰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해 4월 박근혜 정부의 사법관료화를 반성하며 상설화된 공식 모임으로, 법원 내부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 민청학련 사건 등 긴급조치 위반 행위로 처벌받았던 이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아람회 사건 관계자들, 1978년 일어난 노조 탄압 사건인 동일방직 노조 관계자들 등이다.

이들은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했다'고 자평한 대법원 대외비 문건이 드러났다"며 "사법부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과거사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투쟁을 통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립해 진실을 규명했고, 부족하나마 배상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면서 "그러나 양 전 원장이 반역사적 행태를 보였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당초 법원이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에 대해 '재심 사건의 경우 재심 확정판결 이후로 3년, 인권침해사건의 경우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2013년 대법원이 몇 차례 판결을 통해 6개월로 제한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가 2010년 활동을 종료한 후 여러 과거사 사건에 관해 재심이 이뤄지고 이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2013년 대법원이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여버리면서 시효 소멸을 이유로 파기환송되거나 패소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어 이들은 대법원이 2015년 '과거사 피해자로 규명됐더라도 민주화운동보상법 등에 따라 보상금을 이미 받은 사람은 국가로부터 재차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확정판결한 점, 또 대법원이 같은 해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에 관해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로 판결했던 점 등을 비판했다.

이들은 "부족하나마 경찰·국정원·국방부는 물론 검찰도 과거 국가폭력의 실체를 규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오히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었다"면서 "검찰은 양승태 등 관련자를 구속 수사하고, 대법원은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 관련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잘못된 판례를 변경하라"고 요구했다.앞서 고위 법관들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전국법원장들이 결의안을 통해 형사조치에 반대했으나, 인천지방법원 단독판사 등 일선 판사들은 대법원의 "수사의뢰"를 언급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판사들이 '형사조치'에 찬성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 주체로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날 오전 김 대법원장은 출근길에서 "오늘 전국법관대표회의 결과를 보고, 종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법관 의견까지 마저 듣고 심사숙고한 다음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재직 중인 대법관 중 고영한 대법관을 비롯한 7명이 사법농단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대표회의 의결안을 검토한 뒤 그동안 열렸던 판사회의를 종합해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시기는 북미정상회담과 6·13 선거 이후일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이날 오후 대법원 정문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원장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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