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실의와 비탄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침침한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사진: 전 원불교 문인회장

사람은 일평생 얼마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한 것이 보입니다.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은 인류의 감정 중 가장 흔하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 대상을 좋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게 하며, 반대로 그 대상이 떠나갈 때에는 매우 슬프게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감정이 지나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 사람을 망치기도 하지요.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을 웃고 울리는 묘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에서 〮 희⦁노⦁애⦁락이 파생되기에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복잡한 감정 중 하나인 것입니다. 특히 미움(憎惡)과는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사랑에서 미움이 파생되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랑 중에도 송강 정철(鄭澈 : 1536∼1593)과 기녀(妓女) 강아(江娥)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조선시대 전라도에 기녀 진옥(眞玉)이 있었습니다. 정철의 호인 송강(松江)의 ‘강(江)’자(字)를 따 강아(江娥)라고 불렸지요. 강아는 시조문학에 있어 ‘송강첩(松江妾)’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조 문헌 중에 ‘누구의 첩’이라고 기록된 것은 오직 강아 뿐입니다.

전라도 관찰사로 등용된 송강 정철은 전라감영에 있을 때, 강아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당시 불과 십여 세 남짓의 어린 소녀, 강아에게 머리를 얹어 주고 하룻밤 같이했으나, 청렴 결백했던 정철은 어린 강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다만 명예로운 첫 서방의 이름을 빌려주었습니다.

이런 정철의 인간다움에 반한 강아는 어린 마음에도 그가 큰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정철 또한 어리지만 영리한 강아를 마음으로 사랑하며 한가할 때면 옆에 앉혀 놓고 틈틈이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외어 주고, <장진주> 가사를 가르쳐 주며,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강아는 기백이 넘치고 꼿꼿한 정철을 마음 깊이 사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582년 9월, 도승지로 임명받은 정철은 열 달 만에 다시 한양으로 떠나게 됩니다. 강아는 그를 붙잡을 수도, 좇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낙담한 채, 체념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요. 그러한 강아의 마음을 눈치 챈 정철은, 작별의 시를 주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백일홍) 곱게 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이/ 모두 네 고움을/ 사랑하네.』

그 시에는 강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당부의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좋은 낭군을 구해서 시집을 가 잘 살고, 자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건만, 철부지 어린 나이에 머리를 얹은 이후로 단 한순간도 그를 잊지 못했던 강아는 관기(官妓)노릇을 하면서도 다시 정철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십년고절(十年孤節)의 세월을 버텨냅니다.

기생의 처지로 다른 남자의 유혹을 거부하며 수절을 한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정철이 북녘 끝 강계로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강아는 이제야 정철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귀양살이를 하는 정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서둘러 행랑을 꾸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작은 발로 삼천리 길을 걸어 강계로 달려온 강아는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하늘 한자락 보이지 않게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초라한 초막에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정철의 초췌한 모습에 진주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울음을 그친 강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를 몰라보시는지요? 10년 전 나으리께서 머리를 얹어 주셨던 진옥이옵니다.” 강아는 그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과 귀양소식을 듣고 송강의 생활을 보살피고자 부랴부랴 달려왔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대 정치가이자 일세의 문장가인 정철의 유배생활은 보기에도 가혹해 보였습니다. 정철은 실의와 비탄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침침한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강아는 정철을 앞에 두고도 정녕 믿기지 않았고, 정철은 강아를 볼수록 살풋한 여인의 향기에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말을 잃은 두 연인(戀人)! 방안엔 정적만이 무겁게 가라앉는데, 그때 조용히 강아가 어린 시절 정철에게서 듣고 외웠던 ‘사미인곡’과 ‘장진주’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네가 아직도 외우더냐?” “예, 나으리께서 배워 주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으리가 그리울 때면 가야금을 타고 마냥 불렀던 노래이옵니다.”

이만하면 강아는 ‘명기(名妓)’요, 뛰어난 시인이었던 것이지요. 그날 이후, 정철이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강아는 늘 그의 곁에서 기쁨을 주었고, 가야금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강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 혹은 기녀가 아니었습니다. 정철은 유배지에서 부인 안씨에게 서신을 보낼 때면 강아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습니다. 부인의 서신 속에도 강아에 대한 투기나 남편에 대한 불평보다는 남편의 유배생활을 위로해 주는 강아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 있었다고 하네요.-후략-】

이렇게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랑에도 작은 사랑이 있고 큰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남녀 간의 사랑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일체생령(一切生靈)을 사랑하는 불보살의 사랑만 하겠습니까? 우리 이제 영원히 변치 않는 큰사랑을 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7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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