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연마의 도

▲김덕권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018년 6월21일자)에 <내 젊은 날의 초상… ‘영정사진’ 찍는 2030>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웰빙’ 보다는 ‘웰다잉’ 시대를 맞는 새로운 풍속도로서 영정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늘어간다는 얘기입니다. 아니 한창 신나게 살아가야 할 나이에 죽음을 준비하다니요? 그러나 죽어가는 보따리 챙김은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종교의 문제가 ‘웰빙’의 문제에서 ‘웰다잉’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합니다. 일본 사찰은 무병장수를 비는 신자보다는 ‘9988234’의 웰다잉을 기원하는 사찰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엔 연간 고독사가 34,000건 발생합니다. 지자체의 가장 장애되는 요소가 고독사를 처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유망 산업의 하나가 죽음 산업이지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대종경(大宗經)》<천도품(薦度品)>에서 죽음에 대한 법문을 내리셨습니다.「범상한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나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내역과,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지마는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 행할 도(道)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요약하면, 생과 사의 도에 벗어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살 때에 생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생의 가치를 발하지 못합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죽을 때 사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악도(惡道)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 쉬었다 하는 것과 같으며, 잠이 들었다 깼다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사란 그 조만(早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습니다. 생사가 본래 둘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얼마나 종종걸음을 칠까요? 우리 미리미리 죽음의 보따리를 챙겨둡시다. 그러면 조금은 여유롭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런지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2030대에 벌써 영정(影幀)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영정사진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구직할 때 쓰는 증명사진과 크기가 다를 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마음가짐이지요. 영정 사진 앞에서 죽음을 앞 둔 순수함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죽음도 평소에 준비가 있어야 경계(境界)를 당해서 당황하거나 단촉한 처사로 일을 그르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여유 있고 완전한 처사로 큰일을 무난히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는 불과 몇 십리 하루 길을 나설 때에도 며칠 전부터 준비를 서두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생과 내생을 바꿈질 하는 그 길에 어찌 죽음의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있겠는지요?

생과 사의 거리가 가깝기로 말하면 호흡(呼吸)지간입니다. 그러나 멀기로 말하면 그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이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만일 가까운 줄만 알고 먼 줄을 모르면 자칫 끝없는 함정에 빠지게 될 위험천만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생사의 도를 늘 연마하여 미리 실력을 쌓아 두어야 할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착심(着心) 두는 곳이 없이 걸림 없는 마음을 늘 길들여야 합니다.

둘째, 생사가 거래(去來)인 줄을 알아서 늘 생사를 초월하는 마음을 길들여야 합니다.

셋째, 마음에 정력(定力)을 쌓아서 자재(自在)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넷째, 평소에 큰 원력(願力)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이상 네 가지를 평소에 늘 연마하여 놓는다면 사는 일은 물론이요, 죽어 가는 길에도 그렇게 아쉽고 당황하지 않게 수월스럽게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를 연마하는 도요, 생사를 해결하는 큰 길입니다. 과학문명이 웰빙에 방점을 둔다면 도학문명은 생사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생과 사는 호흡지간에 있습니다. 우리가 젊어서부터 영정사진을 찍고 끊임없이 생사를 연마하면,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생사대해(生死大海)를 무난히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서산에 죽음이 걸린 듯한 우리 노년이야 이 죽음의 준비를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 어느 노부부의 대화에서 이 죽음의 보따리를 챙기는 방법을 알아보면 어떨까요?

“영감! 내가 오래 살아 있어야 영감을 챙기제, 나죽으면 누가 당신을 챙겨 줄 거요? 누가 먼저 아파서 기동이 가망이 없을 때는 노인병원에 입원을 해야 돼요. 애들은 제 살기에 바빠서 누가 병수발을 하겠어요?” “누가 먼저 치매라도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해요. 늙어 힘없어 서로가 병수발 하기 너무 힘들어요.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제” “잘 알고 있네, 할멈!”

“할멈! 내가 먼저 세상 뜨고 나면 남는 재산 처분해서 자네 죽음 준비도 하게끔 공증까지 해뒀네”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후에 할머니 죽음의 준비도 해뒀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의 준비! 자식들이 살기 바빠서 병든 부모 부양을 할 수 없는 세상이란 걸 노부부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분 중 누구 하나 치매에 걸리면 병원에 갈 거고, 혼자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은 후에 자식들이 장례문제는 책임을 지겠지 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봅니다.

인생 삶이 왜 이렇게 준비할게 많을까요? 젊어서는 ‘자식들 교육준비’ ‘자식들 결혼준비’ 장년에는 노후대책 ‘노후준비’를 세우고 나면 이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죽어가는 보따리는 젊어서부터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現世)에 사는 것만 큰일로 알지마는,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크게 알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이 없는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마 그래서 요즘 2030세대들이 영정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까요? 어쨌든 나이가 40이 넘으면 죽음의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종종걸음을 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7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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