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계약서 서명 만능주의 앞세운 금융사 제동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사진=정태영 현대키패탈 사장 SNS>

[뉴스프리존=이정현 기자] 금융사가 고객에게 대출 시 약관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책임전가를 일삼던 관행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10일 이슈타임에 따르면 대법원 재판 1부(주심 이기택)는 지난달 19일 현대캐피탈에 대해 대출 고객에게 어렵거나 중요한 약관을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 뒤 발생한 채무에 대해 전면 면책 판결을 내렸다.

현대캐피탈은 기존의 채권·채무 관계에 있는 A씨로부터 변제를 받을 수 없게 되자, A와 아파트를 거래해 초기 임대차 관계를 설정했던 B에게 해당 아파트에 현대캐피탈이 질권 설정을 해둔 것을 이유로 금 1억2960만원을 갚으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B씨가 또다른 C씨에게 아파트를 매매했고, 이 과정에서 C씨는 B씨의 임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했다고 판단해 B에게 현대캐피탈 채무 면책 결정을 내렸다.

이에 현대캐피탈은 약관에 적혀있는 규정을 적용해, 통지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B씨는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항소했다.

A씨와 B씨는 매매 당시 현대캐피탈의 약관 계약서인 `질권 설정 승낙서 및 임차보증금 반환 확약서`를 통해 계약했다. 약관 내용에는 `만약 아파트를 팔 때 현대캐피탈에 매매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대캐피탈의 '설명 의무 소홀'을 지적하며 B에게 채무 면책 결정을 확정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고객이 서명한 질권설정 승낙서 및 임차보증금 반환 확약서에서 `임대차 목적물의 매매 즉 아파트 매매로 인해 소유자가 변경될 경우 매매계약서에 현대캐피탈에서 전세자금 대출이 취급됐고, 질권 설정 내용과 새로운 소유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적고 회사에 통보하도록 한다`는 약관 조항이 이미 적혀있어도 이 내용을 현대캐피탈은 고객에게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객이 해당 약관에 확인 서명을 했더라도 현대캐피탈이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은 이상 채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현대캐피탈은 물론 금융업계 전반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전까지는 약관의 내용을 읽어보고 서명했다면 이해 유무와 관계없이 약관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B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다수의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작은 글씨로 적혀있어 약관을 꼼꼼히 확인하기 어려웠던 고객들의 피해사례가 꽤 많았던 것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이슈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금융기관이 계약에서 유·불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내용을 약관에 조그만 글씨로 안내해놓고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일어나는 분쟁, 사고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깨알같은 약관 때문에 많은 고객이 피해를 봤는데 이런 부당한 관행이 없어지고 고객들이 보호받는 중요한 길이 될 것 같다"며 "앞으로 모든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은 중요 약관을 명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들에게 유·불리 내용을 반드시 고지해서 설명하고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동의절차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명제일주의`를 앞세운 은행·보험사의 추심으로 위기에 몰렸던 피해자들은 재판 결과에 희망을 얻어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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