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람이 무대에 들어선다. 이들은 각각 배심원, 법무장관, 교도관, 사형수가 돼 연극을 시작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범죄 피해자의 유가족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가 이미 사형됐거나 그의 사형을 기다리는 이들은 사형제도와 관련한 행위자로 연극에 참여하며 사형구형의 순간부터 집행, 그 이후까지를 들여다본다.

연극 ‘4four’는 한 사람씩 무대의 중앙에 나와 독백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극을 하면 할수록 사형제도를 통해 가해자에게 복수하길 원했던 이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정의의 심판관처럼 보이는 배심원은 판결이 집행된 이후의 혼란스러움을 예견하지 못한 채 판결을 내린다. 사형집행에 최종 명령을 내리는 장관은 사형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감정과 사형제도 폐지라는 정치적 신념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는 극우 정치인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달리 오랜 기간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교도관은 오랜만에 집행을 하고나서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낀다. 사형수는 재판이 끝난 후 들려오는 새소리에 자신이 묻지마 살인이라는 몹쓸 짓을 했다는 죄의식에 몸부림친다.

행위자들의 마음의 동요로 인해 연극은 잠시 중단된다. 그러나 잠깐의 휴식 동안에도 혼란은 계속된다. 배심원은 사형집행 서류에 서명을 하지 못하는 장관을 비난한다. 그가 소심해서, 사적 감정 때문에 서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형수는 사형집행을 최종 결정하는 장관 역시 사람 목숨을 빼앗는 살인자라고 쏘아 붙인다. 교도관은 집행 후에도 일상을 계속 살아가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한다. 혼동 속에서 연극은 재판 이후를 다루며 다시 시작된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지, 이들은 알아보기로 한다.

신이 아닌 인간, 사형을 집행하다

사형수는 휴가 후 복직한 교도관에게 무섭다는 심정을 고백하며, 최후의 순간에 옆에 있어줄 것을 부탁한다. 교도관은 그런 사형수를 안아주며 말한다. “난 절대 (당신에게서) 안 떨어질 거야.” 그러자 교도관에게 사형수의 기억이 들려 오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대라는 현실에서 도망쳐 망상 속에서 살았던 사형수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사형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형 집행을 둘러싼 의견이 점점 더 갈린다. 교도관은 이미 사람들이 정해놓은 법이니 누군가는 판단을 내리고, 집행명령을 내리고 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심원은 사람 목숨을 뺏은 사람의 목숨은 없애도 된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사형수는 감옥이 착한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그저 끔찍한 환경이라며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사형보다 더 큰 진짜 벌이라고 외친다.

사형집행 서류에 서명하기 전, 장관은 사형수를 면회한다. 매일 무슨 생각을 하냐는 장관의 물음에 사형수는 반성과 속죄의 나날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신이 죽인 사람의 가족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음 깊이 반성하니 살려달라는 사형수를, 장관이 돌연 때린다. “살인을 했으면 너도 고통을 더 받아야지.” 장관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을 거라 결심한다. 그러나 이전의 연극 장면에서 이미 서명을 해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사형은 집행된다. 장관은 사형집행을 준비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외친다. “인간은 인간을 심판할 수 없어. 우린 신이 아니야.” 그러나 배심원은 이에 반박한다. “신이 없는 나라에서는 인간이 대신해야 해.”

결국 사형은 집행된다. 교도관은 사형 집행에 대해 누군가는 짊어져야 하는 일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자신이 맡은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리고 그는 교도관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자신의 실수로 인해 누군가를 직접 죽였던 일로 정신병에 걸린 자신의 선배에게 사과를건넨다. 당시 그의 복잡했을 심경을 일 면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장관은 사형집행에 반대했던 과거 자신의 행보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 결과로 대중으로부터 비난에 휩싸인다. 그가 “살인자를 살려두면 네 세금만 축낼 거 아니냐”며 외치는 영상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배심원은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자살한 직장 동료를 떠올린다. 그러고는 이 잔혹하고 형편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으면서도 또 죽고 싶지는 않은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사형집행 이후 한 남자가 더 들어와 연극에 참여한 이들에게 어땠냐고 묻는다. 장관 역할을 맡은 사람은 모두에게 묻는다. “다들 사형집행을 바란게 맞죠?” 그러자 교도관을 했던 사람이 “딱 잘라 그렇게 말 못하겠어요”라고 답한다. 사형이 집행되면 시원해질 거 같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전 안 시원하던데요.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 같더라고요”라는 답을 건넨다. 그러자 장관 역할을 맡은 자가 외친다. “그러면 사형은 뭘 위해 있는 거야?”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연극은 재개된다.

사형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새로 등장한 남자의 독백을 시작으로 연극이 재개된다. 그는 살인자의 아버지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아들의 편지를 읽은 그는 차라리 ‘죽이는 쪽 말고 죽는 쪽이 되지’, ‘다른 사람 말고 우리를 죽이지’라며 혼잣말로 아들을 원망한다. 하지만 아들의 사형이 집행되자 슬픔도 불안도 원망도 모두 사라진다. 살해당한 가족을 가진 유가족의 모임에서 살인자의 부모 역할을 하는 그를 보며 모두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다. 원래는 피해자의 가족 역할을 해야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대본이 바뀐 것이다. 배심원 역할을 하던 이는 감정의 동요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극을 하다 뛰쳐나간다. 남은 사람들은 사형을 통해 복수를 하고 후련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사형을 잊지 못한 채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형이 끝이 아니라는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 사이에서 연극은 끝난 다.

연극 ‘4four’는 해마다 사형이 집행되고, 사형제 존속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80%에 이르는 일본에서 집필됐다. 그러나 이 서사가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형제도는 단순한 법제도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심판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인간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온전히 합리적이지도 않다. 가장 엄숙하고 논리적일 것처럼 보이는 법정도 실제로는 인간들의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결국 이 질문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행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셈이다.

작가 가와무라 다케시는 이 작품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창작했다. 지진은 그에게 생명의 귀중함과 삶의 허무함을 실감한 기회였으며, 이 작품에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사회적 혼란이 스며들어있다. 사회적 혼란과 삶과 죽음에 천착한 작가는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주인공인 작품을 만들었다. 연극을 하는 모두는 가족을 범죄로 잃은 유가족 이며 교도관, 장관, 배심원, 그리고 사형수의 가족은 사형수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들이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채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나타낸다. 각자 상실과 보냄을 경험하면서도 그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복수나 망각보다는 창문을 열고 나아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보고 나누며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을 건넨다.[=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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