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1990)의 한 장면

인간의 불완전함이 파멸을 자초한다
 
‘파리大王’의 인물들은 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성과 善을 대표하는 랄프나 피기, 그리고 예언자인 사이먼도 모두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이들의 낙원이 파멸을 자초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파멸을 자초한다.

‘파리大王’의 인물들은 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성과 善을 대표하는 랄프나 피기, 그리고 예언자인 사이먼도 모두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이들의 낙원이 파멸을 자초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랄프는 유능한 지도자이지만 지도력과 책임감이 완벽하지는 않다. 골딩은 “랄프는 이제 와서 공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체스를 두듯이 한다. 문제는 그가 결코 훌륭한 체스 선수가 되지 못할 것”라고 서술하고 있다.

한편 피기는 랄프보다 더 예민한 책임감과 두뇌와 상식을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신체적으로 결점이 많다. 피기라는 그의 별명처럼 비만하고 천식에 걸려 있고 안경이 없으면 장님이 될 만큼 시력이 나쁘다.

피기가 가진 또 하나의 결점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콘크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아보고 랄프에게 그것을 부는 법까지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천식 때문에 콘크를 불 수가 없다.

예언자로서의 사이먼도 결함이 있다. 짐승은 아이들 자신 속에 있다는 사이먼의 통찰은 옳다. 그리고 사이먼만이 아이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악령 같은 짐승은 낙하산 줄에 감겨 죽은 조종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이먼은 그의 통찰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惡靈(악령)은 아이들 자신 속에 있는 惡의 본능이라는 진실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사이먼의 실패의 원인이다. 사냥의식의 진행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광란하는 사냥꾼들은 짐승의 정체를 전달하려는 사이먼을 살해한다.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한 것이다. 사이먼은 순교자처럼 악의 정체를 밝히고 악을 물리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악인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다.

잭의 불완전함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그는 絶對惡(절대악)의 化身(화신)이다. 랄프가 자신의 선한 의지와 피기의 지혜, 그리고 아이들의 순응에 의해 지원을 받는 순수한 민주적 권위를 대표한다면, 잭은 자제를 모르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국가자체를 흡수해 버리거나 흡수할 수 없는 것은 파괴해 버리는 赤裸裸(적나라)하고 무자비한 독재적 권력을 대표한다.

法과 神이 없으면 인간은 모두 짐승이 된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짐승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문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마법이나 사고에 의해서 문명이 破棄(파기)되고 인간동물(human animal)이 혼자 남아 자신의 인간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인간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짐승이 나타난다.

물론 짐승이 불가피하게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랄프나 피기 또는 사이먼 속에는 잭이나 로저 만큼 짐승이 맹렬하게 날뛰지는 않는다. 그러나 짐승은 랄프와 피기 및 사이먼 속에도 潛伏(잠복)해 있다. 피기는 돼지(piggy)라는 짐승의 별명이 있고 랄프는 사냥놀이에서 돼지의 役(역)을 하는 로버트의 '갈색 살'을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며 聖者(성자)인 사이먼도 짐승처럼 자신의 개인 소굴로 숨어 들어간다.

피기가 살해되고 랄프도 혼자 남아 위기에 처할 때 문명만이 그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때마침 도착하여 랄프를 구출하는 영국해군 장교는 문명의 상징이다. 문명이 짐승을 패배시킨다. 문명의 힘이 강해져서 본능을 압도하면 악령 짐승은 정글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물론 사라진 짐승은 언제라도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만 깔끔한 제복을 입은 해군장교가 있는 한 짐승은 숲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공동체는 초기발달 상태에 있는 성인사회를 나타내고 아이들의 충동이나 신념은 어른들의 축소판이며 ‘파리大王’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이다.

‘파리大王’은 인간이 法에 의해서 구속받지 않거나 神의 섭리에 저항할 때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흉악성을 사실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소설로서 소설 어디에도 인간 본성에 대한 암울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어떠한 악한도 예외적인 인간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문명의 타부를 제거해 버리면 랄프도 사냥꾼이 될 것이다. 그를 구원하는 것은 그가 가진 내적인 미덕 때문이 아니고 지도자로서의 의무감이다.

골딩은 인간을 전락한 창조물이며 누구나 악의 가능성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파리대왕인 바알세불 악령은 로저이고 잭이며 당신과 나로서 문명의 통제력이 느슨해지거나 사라지면 악령은 즉시 활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선량하며 선을 지향하는 피기와 사이먼과 랄프의 선한 의도도 잭이나 로저의 악마적인 악의에는 敵手(적수)가 되지 못하다.

천진한 아이들에서 살인을 즐기는 아이들로

‘파리大王’은 인간성의 근본적 핵심을 점진적으로 밝히고 있는, 用意周到(용의주도)하게 잘 짜여진 예술작품이다. 소설에는 여섯 개의 무대와 여섯 번의 사냥이 있으며 각각의 무대와 사냥은 江의 源泉(원천)을 향해 올라가는 항해처럼 인간의 본성에 근접해간다.

불을 지피고 은신처를 짓는 랄프가 섬의 주된 건설적인 세력인 반면 사냥꾼 잭은 이에 맞서는 파괴적 세력이다. 돼지의 생살에 칼을 박을 수 없고 쏟아지는 피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멧돼지와의 첫 대결에서 잭은 실패한다. 그는 아직 “지난 날의 생활의 禁忌(금기, taboo)에서 아직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용기부족을 부끄러워하며 다음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다.

두 번째 사냥에서 돌아오며 그는 돼지의 목을 잘랐다고 자랑스럽게 공포한다. 그러나 이 때도 그는 문명의 금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다. 그는 그의 업적을 발표할 때에 “몸에 경련을 일으킨다.” 이것은 그가 아직은 돼지의 목을 베는 행동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전의 금기와 새로운 야만적 자유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사냥은 멧돼지가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 번째 사냥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凶暴性(흉포성)의 씨앗을 심게 된다. 돼지를 잡지 못한 분풀이로 아이들은 로버트를 둘러싸고 창으로 찌르면서 불길한 模擬(모의)사냥의 儀式(의식)을 거행한다.

극은 아이들의 “돼지를 죽여라! 돼지의 목을 잘라라! 그놈을 짓밟아라!”라는 고함소리(chant)와 함께 광기를 띄워 간다. 거의 압도적인 암흑의 욕망이 아이들을 사로잡는다. 문명의 터부는 극히 일부분만 남게 된다. 공포에 질린 로버트는 살아남지만 엉덩이에 상처를 입는다. 이 모의 사냥극은 실제로 일어날 살인극의 序曲(서곡)이 된다.

네 번째 사냥은 성공한다. 멧돼지를 추격하고 돼지의 피를 보면서 사냥꾼들은 광적인 흥분 속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되며 잭과 로저는 환희에 차서 그들의 어두운 욕망을 충족시킨다.

다섯 번째 사냥은 양심이나 터부 같은 본능을 통제하는 고삐가 완전히 풀려 충동에 左之右之(좌지우지)되는 인간의 야만적이고도 악마적인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냥꾼들은 술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광란의 환희 속에서 사이먼을 무참하게 살해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냥의 대상은 랄프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內在的(내재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선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냥꾼 아이들이 내재적 요인으로 인해 천진한 아이들에서 살인을 즐기는 악마로 변하는 전락과정을 보면서 그 주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두움의 세력인 짐승 즉 파리 대왕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외부적 힘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암흑이며 치명적인 내적 욕망이다. 그 암흑의 욕망은 몰도덕적인 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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