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철폐에 앞장서야 한다

▲ 사진: 수원신문 참고

언론은 ‘국가보안법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을 뿐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그 존폐 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일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모든 공식 언론매체는 국가보안법을 철저히 의식하고 그에 저촉되지 않는 기사를 쓰고 제작 작업을 해왔으며 실질적으로 ‘국가보안법 통치’의 하위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신문이 특히 앞장선 ‘국가보안법 보도’는, 언론의 기본적인 취재 보도 원칙을 외면한 것으로 대북 공세 차원에서 반복되는 말 폭탄, 말 흉기의 성격을 지녔다. ‘카더라’식의 근거 없는 보도가 춤을 추고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도 정정, 사과 보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제도언론의 보도 행위가 국가보안법의 틀이 허용하는 공간 속에서 장기간 이뤄지면서 전체 사회의 의식 구조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북한은 국내법으로 보면 국가가 아니며,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라는 이중적 의미가 언론에 의해 일상적으로 반복되면서 대북 시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어엿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외면하고 부인한다. 이는 법치와 법 감정에 혼선을 초래해 공동체의 규범 형성은 물론 미래의 평화통일 추진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중앙대 교수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파문당해 기득권이 아니게 된다. 그만큼 국가보안법은 위협적이다. ‘빨갱이’라는 한 마디는 어떤 기득권 세력이나 저명인사도 맥을 못 춘다. 김대중·노무현 등 대통령급 인사도 이 말 때문에 개혁을 실현할 수 없었지 않는가. 참여정부 아래서 국가보안법 폐기 운동은 안하는 것만 못했다. 도리어 국민적인 반감만 조성한 꼴이다. 지난 총선 직후 제1 다수당으로 부각했을 때 폐기시켰어야 했는데, 그때 처리 못한 것은 기회를 놓친 것이고 지금은 감히 그걸 거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더 급한 쟁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위클리 서울 2007년 12월27일자).

임 교수는 이어 “어느 나라나 독재·독점 추구형 세력이 있고 그걸 확보하기 위한 악법이 있기 마련이지만 21세기에는 거의 사라졌다. 특히 한국과 같은 지적·경제적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은 상상할 수 없는 법이다. 한국 지배세력이 늘상 부러워하며 추구하는 목표인 유럽연합이나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더구나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유엔도 반대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보안’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불안’, ‘국가 위축’의 법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국가보안법은 실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고 있는 안개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한국 사회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지 않는가. 이를테면 기득권 유지에서 오는 불법적인 정치적 문제와 자본가의 노동자 탄압 문제(여기에는 금전과 관련한 비리도 포함된다), 소수자 문제, 그리고 학문과 사상과 예술의 문제 등이 해결된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보안법은 세계 인권헌장은 물론이고 우리의 헌법정신에도 위배되며, 우리의 국가관과 학문 예술관을 왜곡시킨다. 또 단순한 통일의 걸림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며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정신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애물이자 전 국민을 ‘정박아’(精薄兒)로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했다

국가보안법에 예속된 언론 보도 속에서 북한은 절대 국가가 아니며 존재해서는 안 될 불법집단, 그래서 반드시 박멸해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 전쟁터에서 적이라 해도 그의 장점을 칭찬하는 식의 열린 사고를 절대 불허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고 언론은 이런 논리의 확산에 봉사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가증스런 악마로 언론에 의해 강조된다. 이런 식의 언론 보도는 남한 내부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은 국제적 수치다. 이들은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국가보안법 존속을 주장하면서 그 폐지를 외치는 세력에 대해 색깔론으로 덧칠한 왜곡된 논리를 흉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이 법에 종속된 언론에 의해 확산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 악취는 대단히 심각하다.

수구세력과 족벌신문들이 합창하는 ‘종북 타령’은 자기들의 입맛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를 반국가 행위로 몰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려는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국가보안법은 지난 반세기 이상의 긴 기간 동안 남한 사회의 살인적 흉기로 작용했다. 남한 정권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터뜨리는 공안사건을 기소 이전 단계에서 공식 발표해 실질적인 ‘여론재판’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언급되는 개개인의 인권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죄지만 제재가 가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공안당국은 사건 수사를 장기화하면서 당사자들을 심리적, 경제적으로 괴롭히고 압박하는 간교한 방식을 쓰고 있다. 남한 정권이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자행한 국가보안법 사건 대부분이 무죄 판결로 결론이 나고 있지만 공안당국은 여전히 국가보안법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제도언론은 군사정권 하의 ‘보도지침 언론’를 준수하는 것처럼 정부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보도하며 국민을 겁박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한 권언합작이 조건반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수구보수언론이 북한은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민족의 반쪽 아닌 악마적인 유령 집단에 불과하고, 통일 방식은 남한 주도의 통일 외에는 절대 상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북을 평화통일 추진의 동등한 파트너로 제시하다가는 자칫 친북, 종북파로 몰리기 때문에 상상력이 극도로 제한된 통일방안만이 제기될 뿐이다.

그 결과 남한 사회에서 통일과 그 이후를 상상하는 미래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남한의 수출위주의 취약한 경제 구조, 청년실업 등 문제 해결책의 하나가 남북 경제공동체의 추진이라는 방안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는다. 언론에 등장하는 남과 북은 1300년 동안 통합된 공동체였고 분단은 수십 년 간의 비정상적 상태라는 사실은 공론화에서 배제된다. 심지어 통일을 왜 하느냐며 분단을 당연시하는 반민족적 논리도 제시된다.

언론은 북한이 미국의 수십 년간에 걸친 철저한 경제봉쇄, 군사적 압박 정책으로 아시아 최악의 빈국으로 주민 절반 이상이 영양결핍이라 하는데도 인도적 지원과 같은 동포애 부각 등은 외면한다. 케이블TV 등에서 중동, 아프리카 빈민 등을 도와주자는 캠페인성 광고가 넘쳐나지만 북한을 돕자는 광고는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의 식량난 등을 외면하면서 이민족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자고 호소하는 모습은 위선까지는 아니라 해도 남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점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숨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언론의 국가보안법에 예속된 보도 행각으로 전체 사회는 국가보안법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심각한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 남한 사회에서 통일과 그 이후를 상상하는 미래학은 활성화되지 못하거나 궁극적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정부의 추진 등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 남한은 3면이 바다이고 북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는 외딴 섬과 같은 모습이다. 남한 주민은 국경선은 휴전선처럼 군대와 무기가 포진한 살벌한 곳으로만 인식하는데 익숙하다. 국가간 경계가 갖는 또 다른 의미, 즉 정치체제나 이념이 다른 공동체들이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의미로 받아드리지 못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학문 즉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의 틀 속에 갇혀 헐떡이고 있는 상태다.

역대 정권이 공안사건을 조작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불벼락을 내리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남한사회에는 흔히 말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은 존재치 않거나 거의 무시된다. 정권에 밉보이거나 반체제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면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되고 불이익이 강요된다. 반대로 국가보안법의 틀 속이 세상의 전부인양 외치고 행동하면 수구보수집단과 한 패거리가 되고 그에 따라 적지 않은 불로소득의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단순히 지역의 경계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상과 이념을 가르는 이념의 잣대가 되면서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수구가 말하는 공정사회는 국가보안법 테두리 안에서만 해당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이나 승부는 존재치 않는다.

한국 사회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살인적인 경쟁의 룰과 함께 승자 독식의 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 튀고 악취가 진동하는 헬조선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하루에 40여명이 자살하는 끔찍한 땅이 된 것도 상대를 배려치 않는 악법, 국가보안법의 영향과 이에 종속된 언론과 무관치 않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에게 위해를 가한다기보다 남측 내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무서운 족쇄가 되고 있다.

오늘날 과거 정권하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은 사건이 재심을 통해 연이어 무죄로 판결이 나는데도 남한 정권은 간첩 신고액을 두 배로 올리면서 국가보안법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과거 정부 시절 합법적 절차를 거쳐 남북 교류사업을 했던 시민사회단체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끔찍한 21세기 공안 통치였다. 그런데도 언론은 국정원이 통일부, 외교부를 통해 제공하는 대북 심리전 성격의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데 충실할 뿐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유엔과 세계 인권 기구 등이 연례행사로 철폐를 권고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것은 국제적 수치다. 동서 냉전이 종식된 21세기 지구촌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불허하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어떤 것일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런 국가에는 희망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남한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참혹한 비극을 잉태한 재앙의 씨앗이다. 이런 사실을 활발히 알릴 책무가 언론에 있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일상적으로 억압받는 현실을 직시하고 헌법에 보장된 제 4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철폐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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