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에게 실망했다 - 그런 소리가 잦다. 친박 부스러기類의 도무지 엉뚱해 보이는 사람까지 불쑥 내뱉는다 - 문재인에게 실망했다. 소리의 빛깔과 울림, 다양하지만, 그 이유는 딱 하나다 - 자신들 성에 차지 않는다. 자신들 기대에 아주 조금이나마 미치지 못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탁, 내뱉는다 - 문재인, 당신에게 실망했다. 자살하라! 그런 소리도 나왔다던가?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문재인에게 투표한 거, 후회한다, 그런단다. 단언해도 좋을 듯한데, 그런 소리 내지르는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은 문재인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소리가 더 가소롭다. 역겨움도 느껴진다. 문재인에게 투표한 거, 후회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했어야만 그들의 현재 기대가 충족되었겠는가?

김상조위원장이 <진보의 조급증 탓에 문재인 정부 실패할수도>  있다 라고 했다는데, 이 말씀에서 ‘진보’라는 표현은 틀렸다. 그들은 ‘진보’니 하는 이념가들이 아니다. 이념이라는 게 무엇인가도 모르는 축들이기 일쑤다. 그들은 단지 촉각적 욕망에 꼬드김 당해 되고말고 내지르는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성이야 무엇이든, 그들 부류의 조급증 탓에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문재인 정부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김상조위원장 경고는 현실의 정곡을 꿰뚫는 비수와 같다.

문재인은 전능의 신이 아니다.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 - 그렇게 외치던 것이 그다지 오래지도 않은 과거다. 그 적폐, 줄잡는다 해도 해방 뒤 수구 집단에 의해 국정이 망가지던 70여 년이고, 조금만 더 늘려잡는다면 퇴영적 왕조의 전형이었던 조선조 500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찌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뚝딱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런 기적은 적어도 인간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그 70여 년이나 그 500년에 견준다면 수유에 지나지 않을 1년 남짓 시간에, 문재인은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이렇게 적으면, 상시적 전쟁 공포를 평화 가능성으로 바꿔놓은 남북관계를 우선 연상할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보다 더,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가치 회복이고 희망 창출이다. 인간 세상이기에 당연히 소중한 것이어야 할 모든 가치가 똥치는 막대기만도 못하게 되고, 희망이니 하는 것은 꿈도 꾸어볼 수 없던 최악 막장 현실에서, 우리는 인간적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나마 해보게 되었고, 아직 어린 세대들이 살아갈 미래의 조국에 대한 희망을 구상이나마 해보게 되었다.

아직은 실상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다 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적어도 조금씩이나마 진도 나갈 수는 있게 되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는 ‘그래, 이게 바로 나라야’하고 신들메를 고쳐 조여매게 되었다.

그런데 문재인에게 실망했다고? 미안하다. 가소로워하지 않겠다. 바투 눈앞 이익에만 눈이 멀어있는 것, 당신 잘못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조금이나마 먼 앞날을 보는 그런 지혜와 여유가 불가능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외침(外侵)만 1,000회 가까운 나라에서, 가장 퇴영적인 왕조의 학정에 시달리고나 있었는데다, 그 왕조로부터 벗어나 공화국이 된 뒤에도,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 끝이 불행해진 대통령과 그 추종 모리배들에 의해 사사건건 농락만 당하는 세월을 감내해내고 있다 보니, 우리는 가치를 가치로 인지하는 눈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문제인 보유국의 국민이 된 이제는 관점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이라고 기억하는가? 반세기 훨씬 전 사람인 그의 당대로 보아 뉴 프런티어의 기수라 불리던 그는 그의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 국가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당신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으시라.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이라고 기억하는가? 반세기 훨씬 전 사람인 그의 당대로 보아 뉴 프런티어의 기수라 불리던 그는 그의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 국가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당신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으시라.

어떤가?
맞는 말씀 같지 않은가?

앞에서 이미 적어둔 그대로, 국민 하나하나는 그대로 욕망의 촉수다. 욕망에 끝이 있는가? 없다. 욕망은 무한이다. 충족 불가능하다. 충족 불가능한 그 욕망에 꼬드김당할 때마다 부르짖을 때, 국가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공동체에서 Leadership보다 더 중요한 것은 Followership이다. 치자와 피치자의 의지와 지향이 만나지 못할 때, 국가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유지 못할 때, 그것은 곧 태양계의 종말을 뜻한다.

지난 역사에서 국론분열은 항수였다. 사람 숫자대로 조각조각 갈라진 국론분열이 항수였기에, 우리의 진도는 불가능했다.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고, 뒷걸음질이었다. 그래서 이룩된 것이 통계가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 최악 절대 다수였고,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었다.

촛불로 모든 것을 이룬 게 아니다. 단지 대통령 하나가 바뀐 것뿐이다. 국회를 비롯한 법원이며 언론 등, 우리 사회 중추 세포의 저항은 완강하다. 우리가 문재인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은 단기적 이익 극대화가 아니다. 낡은 집을 부수기보다는 새로 세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 우리가 적폐라 하는 그것들을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내가 이 블로그에서 설정해둔 것은 <민주정부 최소 50년>이다.

문재인은 그 50년 가운데 최초 5년이다. 우리는 문재인에게 그다음 반세기를 위한 길닦기 정도를 기대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뒤를 이을 차기, 차차기 지도자들이 새로운 나라를 이룩해나갈 수 있는 기초를 다져두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긴 눈이 되어야 한다. 우선은 폭망을 되풀이하고도 최악 행패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새누리잔당 괴멸을 차기 총선에서 완성하여 의회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그 모든 목적을 위해 개개인의 촉각적 욕망은 최선을 다해 억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다. 정언적 명령. 이 명령에 불복할 때, 문재인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도루묵, 우리 모두의 패배다. 새누리잔당은 호시탐탐, 880만분지 1의 요행수를 바라듯이, 바로 그 패배를 노리고 있다.

우리는 노무현을 기어코 죽이려던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혼연일체가 되어, 노무현을 기어코 죽이는데 동참한 적이 있다. 이제는 문재인이다. 발군의 플레이어인 문재인 바람에 찍소리도 내보지 못한 채 죽게 된 무리들이, 저희들의 살길을 찾아, 어떻게든 문재인을 죽이려고 광분하고 있는데, 우리 자신이 그들 광분에, 본의 아니게 동참하고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다르다. 맷집이 다르고, 학습효과도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처럼 결코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은 역시 전능의 신은 아니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문재인에게 <Free Hand를 용납하시라>고 적어둔 바 있다.

우리가 자유 의지로 선출한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그를 위해 작은 것이나마 무엇을 거들어 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보유 효과 극대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 절대의 길이기 때문이다. 어진 백성들 지혜와 용기를 기대한다.

케네디의 저 목소리에서 문재인의 호소를 들어야 한다.
그 호소에 우리 살길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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