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취재 박승권 기자, 편집 정수동 기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다가오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주남저수지를 찾아 화려한 자태의 연꽃과 예쁜 개개비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10일도 변함없이 카메라 앵글에 두 녀석들을 담기 위해 주남저수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이날따라 개개비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개개비 한 마리가 불안한 날갯짓으로 애처로운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 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7~8명의 출사객들이 광각 렌즈를 들고 1미터 앞의 무언가를 열심히 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충격입니다. 그 놈들이 찍고 있는 피사체는 다름 아닌 둥지속 아기 개개비들이었습니다.

개개비는 여름 주남저수지의 주인공입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또 그놈들은 개개비 둥지 촬영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더군요. 연꽃을 잘라내고 탐방로에 삼각대를 걸치고 개개비 둥지 속에 숨어있는 어린 개개비 촬영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놈들이 들고 있는 장비와 복장으로 미루어 봤을 때 사회적 지위와 교양을 자랑하는 놈들 같았습니다.

상황을 구성해 보니 그 놈들이 연꽃을 훼손하고 둥지를 드러내고 사진을 찍으면서 어미 개개비가 아기 개개비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못주고 안달이 났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신고를 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가운데 안타까운 일이 기어코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 놈들이 촬영을 위해 연대를 꺾어 놓았습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그 놈들의 셔터 소리에 놀란 아기 개개비 4마리 가운데 2마리가 둥지를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아기 개개비는 둥지를 나온 후 연대에 붙어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는지 끝내 물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놈들에게는 이 같은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놈들은 그 순간에도 셧터를 눌러 댔습니다. 아름다운 연꽃뒤로 드러나고 있는 인간의 추악함이었습니다. 멋있는 장면을 찍겠다는 욕심에 작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놈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연밭을 짖이겨 놓았습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밀양에서 온 사진가 홍득순씨는 “연꽃을 담고 개개비를 담는 건 좋은데  사진가들이 자연을 훼손하면서 사진을 담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사진가들이 더 본보기를 보여야 하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먹고 자는 곳에 방문을 열고 저렇게 사진을 담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연대를 헤치고 사진을 담는 행위는 범법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구에서 찾아온 사진가 정정대씨는 “아무리 사진이 좋다하지만 자연이 우선”이라면서 “주남 개개비 둥지 사진 사건은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사진가의 자격이 없다”면서 “찾아내서 제명을 시켜야 한다. 사진을 하는 사진가들은 자연이 훼손이 안 되는 범위안에서 사진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안타까움을 말했습니다.

대구 열린사진공간의 회원인 사진가 김수희씨는 “우리가 무심코 행한 행위가 자연을 훼손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면서 “다들 바빠서 내 욕심만 챙기고 사는 세상이지만 한번쯤 자연을 보호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출동해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이날 기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주남저수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5분 만에 출동했습니다. 그들은 현장을 살펴 본 후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고 줄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사진가들의 접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5일이 지나자 그 놈들이 꺽어 놓은 연대가 시들어 있습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5일만인 오늘(15일) 아기 개개비들이 궁금해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텅 빈 둥지만 덩그러니 남아 따가운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주남저수지 관리자는 “어미 개개비는 자신의 둥지가 외부로 드러나게 되면 다시 찾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놈들이 개개비 일가족을 불행에 밀어 넣은 게 확실해지는 전문가의 말입니다.

개개비 둥지에서는 더 이상 귀여운 녀석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사진 = 박승권 기자

주남저수지 연 꽃밭 개개비들에게 사진가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에 발길이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 놈들의 이기심이 주남저수지 연꽃밭 개개비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귓가에 개개비들의 울음소리가 더 애잔하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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