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안데레사 기자] 비좁고 어두컴컴한 통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동자동 쪽방촌. 누구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모여 사는 이 곳에 산타같은 사람이 등장했다.

그가 나타나면서 쪽방촌 주민들은 자신에게 맞는 복지서비스를 집 근처에서 신청하고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방 번호조차 중구난방이었던 미로 같은 쪽방촌에 문패가 걸리고 배치도도 생겼다. 수납가구를 마련해 집안팎을 정리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쪽방촌 주민들이 활기를 찾았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산타같은 존재는 바로 서울시 용산구 김종복 주무관이었다. 김 주무관은 도움을 받은 지역 주민들의 추천으로 올해 대한민국 공무원상 옥조근정훈장의 주인공이 됐다.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한건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가 했던 일들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힘을 모았던 동료들과 지역주민, 단체를 대표해 제가 대신 받았다고 생각해요. 모두 고맙습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김 주무관은 어렸을 때 부터 노동자나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그의 가치관과 성향은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길로 이어졌다.  

“남영동 주민센터로 발령을 받은게 지난 2015년이었습니다.” 발령 후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현장을 다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쪽방촌이었다. “남영동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 쪽방촌이었죠.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로 지난 2015년 9월, 쪽방촌에 ‘찾아가는 현장 복지민원실’이 개소했다. 사회복지담당 직원과 지역 활동가, 지역협의체 위원 등이 매주 화·목요일 오전 쪽방촌을 직접 찾아간다. 민원실에서는 복지서비스에 대한 상담부터 신청·접수, 바우처·물품 지급, 증명서 발급, 민원처리 등이 이뤄진다. 

▲찾아가는 현장 복지민원실이 열린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주민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미로 같은 쪽방촌에 문패가 생겼다. 배치도도 제작됐다. 김 주무관은 이를 두고 ‘쪽방 미로에 광명의 길을 찾다’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쪽방촌은 1개 주소에 여러 세대가 생활하고 있는데 지번과 호수는 건물주 마음대로 정해지는 게 다반사였다.

이 경우 사회복지사나 복지전문가가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와도 당사자를 만나기 조차 쉽지 않다. 긴급상황에서 구조나 대응도 당연히 어렵다. 그랬던 곳에 건물 층별 각 방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호수를 부여하고, 문패를 달고, 배치도를 부착했다. 누구도 찾기 어려웠던 쪽방촌 거주자 주소를 누구나 찾기 쉽게 만들었다.

▲ 마을공방 대표 등의 도움으로 공방 작업장에서 식탁, 수납장, 선반 등 쪽방촌 주민들에게 줄 가구를 만들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식탁·수납장·선반으로 구성된 3종 가구세트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도 김종복 주무관이 발로 뛴 결과물이었다.

“쪽방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주민들이 대다수라 거주기간도 불안정하고 주거환경 개선의지도 약하죠. 가뜩이나 좁은 공간을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다 보니 지저분하고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죠.” 가장 취약한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김 주무관의 진두지휘아래 지역의 자원봉사자들과 재능기부자들이 뜻을 모았다.

이 외에도 고독사 예방지킴이 활동, 일촌맺기 사업 등을 펼치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김종복 주무관. 그의 대한민국 공무원상 수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감동과 도움을 받은 주민들이 직접 그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에서 김종복 주무관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인사를 듣고 있다.

깔판 위에 나란히 앉아 막걸리 한 사발씩을 나누며 김 주무관은 공무원이 아니라 쪽방촌 주민들의 형, 아우, 삼촌이 됐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화를 내고 억지부리는 분들도 있었지요. 공무원이라고 하니 권위의식에 빠져서 형식적으로 일처리 한다며 믿지 않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도 꾸준히 진심으로 대하니 점점 마음의 문을 여시더라고요. ‘이 사람들, 우리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구나’ 인정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들이 협력자가 됐다고 말하는 김종복 주무관. 이제는 쪽방촌 지역에서 행사가 열린다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오히려 이 곳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나서서 도움을 준다. “막상 쪽방촌 주민들과 부딪혀 보니까 재밌었고 일한 만큼 효과도 나타나고, 정도 많이 주시고, 제가 오히려 그 분들 때문에 힐링이 됐습니다.”

▲김 주무관은 “앞으로도 어려운 주민들에게 사업들을 추진하겠다”며 “정부와 국민의 마음을 이어주는 존재가 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김종복 주무관은 다양하게 추진했던 쪽방촌 사업이 행정관청과 주민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신뢰감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또 이를 통해 쪽방주민자치회, 자율방범대 등 마을공동체 기반으로 그들을 끌어내고 이것이 쪽방촌 주민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탈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삶의 활력을 얻은 쪽방촌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고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스스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해 주는 것도 행정관청의 역할이겠죠?”

국민이 없으면 공무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국민이 고객인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김종복 주무관. 그래서 그는 “24시간 국민을 곁에 두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김종복 주무관이 이제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올해부터는 용산구청 행복드림담당관실로 자리를 옮겨 동자동 쪽방촌 주민 뿐만 아니라 용산구 구민들에게 말 그대로 행복을 전해 드리기 위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치매안심마을, 지역 특화박물관 개관, 복지서비스 전달 체계 개편 등 그가 담당하는 업무들은 더 다양해졌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도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작은 김 주무관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자립을 위한 길도 모색할 만큼 변했다. 김 주무관도 쪽방촌 주민들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현재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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