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특히 죽음에 대한 욕심이 많다. 멋지게 죽고 싶으니 말이다. 멋지게 죽는다는 것은 멋지게 살아온 것을 의미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은 삶의 총화라고 생각해왔다. 살아온 삶이 온전히 축적되어 죽음으로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조계종단의 개혁을 요구하면서 생명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계시는 설조 스님을 뵈면서 이 어른은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길을 찾으신 것만 같아 부럽고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설조 스님은 돌아가셔도 안 되고 또 돌아가시도록 그대로 두어서도 안 된다. 생명의 소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조 스님께서 이번 단식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그것은 설조 스님만의 죽음이 아니라 조계종단의 죽음이요 한국불교의 죽음이며 한국사회의 죽음을 의미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계종단이 죽지 않고 한국불교가 죽지 않으며 한국사회가 죽지 않으려면 설조 스님이 죽기 전에 조계종단의 개혁이 이루어지게 해서 설조 스님께서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설조 스님께서 이번 단식투쟁으로 돌아가시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하지만, 설조 스님께서는 이번 단식으로 죽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음 또한 분명하다.

보름 전쯤 설조 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의 죽음에 대한 결의가 너무나 확고한 것을 보고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어 이런 말씀을 드렸다. ‘‘스님께서 단식을 하시더라도 의사의 말씀은 들으셔야 합니다“라고. 그랬더니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단식을 결심하면서 부처님께 생명을 바칠 것을 다짐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을 나에게만 하신 것도 아니고 이미 공지의 사실이 되어 있으며, 스님의 이 생각이 확고함은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제 종단개혁을 촉구하는 집회를 마무리할 때도 설조 스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조계종 집행부는 설조 스님을 살려내라’든가 ‘조계사 신도들은 설조 스님을 살려내기 바란다’든가, 또는 ‘문재인 대통령님, 설조 스님을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고, 부처님께도 죽음을 서약하고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래서 나를 살리려 할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있는 조계종단을 살리도록 하세요.”라고 말이다.
이런 말씀이 그저 의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죽음에 대한 확고한 결의와 확신이 분명하게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

이처럼 대의를 위해 죽음을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이 청정함을 의미한다. 살아온 삷이 청정하지 않고는 결코 대의를 위해 죽음을 결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설조 스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일일이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스님께서 이번에 종단개혁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서 그가 살아온 삶이 청정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하고도 남는다. 거듭 말하지만 살아온 삶이 청정하지 않고서는 은처자나 재산은닉 등을 규탄하면서 생명을 건 투쟁을 전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리가 이러한데도 어제 집회가 끝나고 조계사 일주문 앞을 지나오는데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설조 스님의 비행은 유튜브를 보면 안다’고 말이다. 도대체 이런 현수막을 건 사람들이 인간일까 싶다. 종단개혁을 위해 생명을 걸고 단식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단식하신 지 30여일이 지나 그야말로 생명이 경각에 결려 있는 분에게 말이다.

저런 인간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참회나 맹성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오직 승적과 승복을 반납하고 불교를 떠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디 더 늦기 전에 그렇게 하기 바란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2018년 7월 22일
장 기 표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