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논설위원장 / 문화커뮤니케이터

한국에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일찍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물질 풍요를 누리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을 상징적으로 웰빙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물질적 여유 속에 정신적 만족을 동시에 누려 삶의 만족도를 높이자는 시대 흐름이었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사회가 초경쟁을 펼쳐야 하는 환경에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안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2010년 즈음부터 힐링이 사회적 트렌드로 등장했다. 곧 사회문화체계가 급변하면서 수반되는 생존 경쟁과 압박감을 치유해 마음과 정신의 행복감이 절실해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곧 문화적 자양분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디지털 기계문명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현대인들의 정서는 오히려 더 고갈되어가고 정신은 더 혼탁해져 가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은 디지털 세대의 최대 수혜자답게 오로지 첨단 통신기기에 얽매여 있다.

이에 영합해 정보통신기술사들은 촌각을 다퉈가며 더 빠른 속도의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그 단 몇 초의 빠름을 가지고 소비를 부추기고 오락으로 가득 찬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래서 그 분야 산업이 대기업의 실적을 올리는 최대의 수단이 되고,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국가경제의 근간이 되는 것을 우리는 그저 경제가 성장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시대가 첨단화된다 할지라도 인간 본연의 정신과 정서는 한결같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 본연의 정서가 중심이 되는 사회적 가치관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속에서 인간은 자존감과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처럼 기계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다보면 일찍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기계화되고 획일화된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성 자체가 사라진 환경에서 과연 행복감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우리사회에 '힐링'이 화두가 되었던 것은 단순한 시류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장수를 누리며 최고의 첨단 혜택을 향유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치유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물질에 식상한 현대인들이 느끼는 마음과 정신의 허허함인지도 모른다.

이는 외형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내면적으로는 갈급한 것이 많다는 반증이다. 물질 영역의 양적인 삶은 화려해졌지만 갈수록 정신 영역의 질적인 삶은 오히려 얕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적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문화란 로젠블라트가 정의한대로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을 부추기는 디지털의 힘보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문화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웰빙과 힐링의 단계를 거쳐 '필링'(Filling) 곧 부족한 마음이나 메말라진 정서를 충족감이나 충만감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지금까지 힐링의 치유 단계를 거쳤다면 새로운 활력을 얻는 행복감으로 채워 넣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문화체계가 일상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여유롭고 즐거운 생활태도를 갖게하는 풍토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그런 사회적 가치 정착이 절실하다. 토머스 제퍼슨은 "행복은 부(富)도 화려함도 아닌 평온과 일이다"고 했으며, 헨리크 입센은 "행복은 무엇보다도 순진무구의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현실성이다"고 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