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별화’를 지향하는 혁신성장과 ‘평등화’를 지향하는 경제민주화

본질적인 부정합

[뉴스프리존= 정은미 기자] 최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소득주도성장은 본래 내용이 없다. 소득을 올리기 위해 성장하는 것인데 소득을 먼저 올리면 성장이 이루어지고 다시 소득이 올라가는 경제는 있을 수 없다. 경제는 화수분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의 동력은 혁신이다. 현재 경제정책에서 혁신과 근본적인 부정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라고 봐야 한다. 기업투자 위축 및 고용 둔화 등 현재 경제문제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보다 경제민주화 정책에 더 크게 영향받고 있다.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이라고 내세우지만 경제논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정치구호일 뿐 경제논리가 없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나왔던 ‘경제민주화’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혹은 경제독재?)으로부터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조순 부총리의 경제민주화). 1950년대 이후 간혹 등장했던 ‘경제민주주의’도 정부로부터 민간부문의 자유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 및 IMF 구조조정 등을 거치면서 경제자율화가 대폭 진전된 현재 상태에서 경제민주화의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소위 재벌의 ‘경제독재’로 상정하게 됐다. 재벌의 정치경제 장악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전제하에 이를 해결해야만 제대로 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경제민주화 정책의 추동력이었다.

이는 한국 대기업이 국내 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제 상황이나 이들이 범세계적 경쟁 속에서 혁신을 해나가야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경제성장 동력을 훼손시키고 오히려 분배마저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민주’라는 명분의 ‘경제독재정책’ 가능성

현재 경제민주화 정책은 ‘민주’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광범위하게 관여하면서 실질적으로 ‘경제독재정책’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부터의 ‘경제자율화’,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던 시절로 되돌아가야할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생산과 분배의 과제

경제정책은 이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활력있는 생산활동과 적절한 분배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2. 슘페터의 혁신관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초과이윤 추구와 냉혹한 경쟁

자본주의의 동력은 기업가 정신이며 ‘정상이윤’으로 만족하지 않는 ‘야심과 욕심’이다. 결과를 평등하게 할 방법이 없다. 혁신과정에서 누군가는 파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20개 중 1개만 성공해도 성공이다.

대기업이란 이런 경쟁을 이겨내고 ‘차별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지속적 경쟁환경을 통해 지속적 혁신이 이루어진다. 대·중·소기업 공히 성공에 안주할 수 없고, 지속적 혁신을 통해 경쟁을 이겨나가야 한다.

3. 혁신의 3가지 기능적 조건

혁신이란 기술, 시장, 조직, 정책 등에서 불확실성을 뛰어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 능력이 필요하다.

혁신의 3대 조건은 Δ전략적 통제(strategic control) Δ금융적 투입(financial commitment) Δ조직적 통합 (organizational integration) 등이다.

4. 인내자본(patient money)의 중요성

인내자본의 중요성은 벤처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중장기투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대기업의 신규사업 진출, R&D도 시행착오, 실패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은행대출이 그 역할을 했고, 현재 많은 대기업에게는 사내유보금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사내유보금이 너무 많다는 지적은 헤지펀드의 “disgorging free cash flows” 요구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혁신은 확률이 낮은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처음에 확률이 높은 일은 혁신이 아니다. 혁신은 확률이 낮은 일에 투자하는 것이고 이것이 성공하면 초과이윤 혹은 대박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꾸준히 밀어주는 집행력이 중요하다. “사내유보금이 너무 많다” 혹은 “disgorging free cash flows”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시행착오에 따르는 투자비용을 감안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5. 혁신과 경제민주화의 부정합

전략적 통제

‘민주적’ 결정이 좋은 전략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포퓰리즘에 의한 잘못된 결정, 무(無)결정 가능성은 없는가?

금융적 투입

초기에 대규모 적자를 보더라도 지속적 투입이 가능할까? 삼성반도체는 7년, 대우조선은 13년 간 대규모 적자를 겪어야 했다. 주주민주주의에 입각한 단기이익추구 성향이 강해지면 대규모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는 기업조차도 이러한 공격적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중국기업이 약진하는 데에는 단기이익 추구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자본의 역할이 크다고 봐야 한다.

조직적 통합

경제민주화가 조직의 통합력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떨어뜨릴 것인가? 기업은 위계(hierarchy) 조직이지, 민주적 조직이 아니다. 사장을 사원들의 투표로 뽑지 않으며, 사장은 사원에 대한 인사권을 당연히 행사해야 한다.

6. 맺는 말

구호에 집착말고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과 분배의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분배가 해결되면 생산이 저절로 따라온다”는 단순 일차방정식에 불과하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야 한다. 혁신과정의 위험부담에 따르는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야 기업가 정신의 발현이 가능해진다. 초과이윤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일어날 수 없다.

혁신이 일어날 환경을 잘 만들고 그 결과물의 적절한 분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속적 번영(sustainable prosperity),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 그 방향타가 될 수밖에 없다.

본론: 국민연금과 경영개입, 노동이사제, 연금사회주의에 관한 생각

장하준 교수는 전반적인 경제정책 방향이라든지, 세계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본인과 가장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경영개입’ 문제에 관해서는 아마도 장 교수가 기관투자자의 기본기능과 규제철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장 교수는 오늘 발표문에서 “국민연금 등 공공성을 가진 대규모 투자자들이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주요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것이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은 이율배반적이다. 똑같이 돈 가지고 주주권 행사하는데 왜 노동자가 하면 사회주의고 자본가가 하면 자본주의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이냐, 사회주의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투자수익률 전망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자본주의 정책이건 사회주의 정책이건 정부 정책을 따라 의사결정을 하면 모두 연금사회주의가 된다는 사실에 있다.

장 교수의 의견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을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와 달리 가입자의 돈을 모아 대신 운용하는 수탁자(fiduciary)라는 근본적 차이와, 이와 관련된 금융규제에서도 경영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흔히 ‘전략적 투자자’로 표현)와 단순히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는 금융투자자(흔히 ‘재무적 투자자’로 표현)를 구분하는 소위 ‘5%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판단된다.

미국의 1934년 증권거래법(The Securities Exchange Act of 1934)과 1940년 투자회사법(The Investment Company Act of 1940) 이후 전세계적으로 경영과 관련된 정보를 이용한 내부거래를 막고, 한 회사가 잘못될 경우 팔고 나올 수 있도록 하는 투자다변화를 기관투자자 규제의 철칙으로 삼아왔다. 소위 5%룰도 그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 지분을 7% 가까이, 주요 대기업의 지분을 10%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기관투자자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이것을 방치한 정부도 규제 원칙을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도 연금이 주요기업의 10%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일본연금은 주식지분이 높아 보여도 여러 운용사에 나누어져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가 잘못될 경우 거기에 묶일 가능성이 훨씬 적다. 또 의결권도 함께 위탁하기 때문에 연금의 5%룰 저촉 문제가 없다.

다른 나라들은 연금의 국내주식 지분이 1% 부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아래 그림 참조). 한국의 국민연금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국내주식투자에서 굉장히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왜 다른 나라는 연금의 국내기업 지분율이 그렇게 낮은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외국의 연금에게는 기관투자자의 기본 원칙이 상당부분 지켜진 반면 국민연금은 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세계 주요공적연금의 국내주식투자 및 투표권 비중

출처: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 신장섭 저 (2018, 나남)

국민연금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기업지분율을 활용해 경영개입을 한다는 것은 연금운용의 기본 철학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국민연금은 개별 기업지분율을 5%이내로 낮춰야 하고, 주식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한 중간단계 조치로서 일본처럼 주식투자 위탁운용 비중을 크게 높여 ‘내부거래 억제’나 ‘다변화 촉진’이라는 ‘5%룰’의 기본정신에 맞추는 규제 하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한편 국민연금이 정부의 정책에 맞춰 노동이사제를 지지하는 것은 연금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다. 연금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가입자들의 것이다. 가입자들인 국민 전체가 노동이사제를 지지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없다. 국민연금의 가입자들이 공통적으로 기대하는 목표인 ‘장기적-안정적 수익률’이라는 지상목표에 맞춰 운영되어야 한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장기적-안정적 수익률’에 부합되는지 여부는 개별 기업의 사안에 따라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정책으로서의 노동이사제를 국민연금이 지지하는 것은 연금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 원칙에서 공정경제 달성 수단으로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도 연금사회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에 들어가 있고 현 정부도 ‘2018년 경제운용방향’에서 대기업 개혁을 통한 공정경제 달성 수단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연금가입자들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원칙을 공정거래위원회 업무까지 확장한다는 데에 동의한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방향이니까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고 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고 정부 뜻에 따라 국민연금이 대기업 개혁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연금사회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운용자산이 현재 630조 원이고, 2040년경까지 2,500조 원으로 늘어나는, 한국 최대 및 최고속성장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기금운용본부장의 1년 이상 공석상태와, 신임 기금운용본부장 임명을 둘러싼 잡음에서 나타나듯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대비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는 기본 의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공공성은 가입자를 위한 ‘장기적-안정적 수익률’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서 다른 공공적 목표는 이 지상목표에 복속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정책수단으로 동원하려고 하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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