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지난 23일 별세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엄수됐다. 국회장(葬)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됐다. 아침부터 내리쬔 불볕에도 영결식에는 동료 의원들과 각계 인사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2000여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문희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영결사에서 “제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라며 애통해했다.

문 의장은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며 “당신은 여기서 멈추었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미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

조사를 맡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다”고 회고하고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다”며 울먹였다.

이 대표는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 명을 잃은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희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했다”며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상정 “노회찬이 있어 심상정이 있었다”

다음으로 조사를 올린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금 제가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라고 결국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심 의원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라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을 당신이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라며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 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고 내내 흐느꼈다.

심 의원의 조사를 듣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심 의원의 울먹임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숙연했던 영결식장이 순간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어 금속노동자 김호규씨의 조사 낭독에 이어 고인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한 시간여의 영결식이 끝나고 노 의원의 영정은 고인이 근무했던 국회 의원회관 510호로 향했다. 고인의 비서실장인 김종철 실장이 고인의 위패를 들었고, 장조카 노선덕씨가 영정을 들고 뒤따랐다.
노 의원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박창규 보좌관을 비롯한 의원실 직원들은 눈물로 고인의 영정을 맞았다. 이 모습에 이정미·심상정·윤소하·추혜선·김종대 의원은 끝내 오열했다. 마지막으로 문희상 의장 등 장례위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한 뒤 오전 11시4분께 영결식이 끝이 났다. 하지만 국회 영결식에 참여한 시민들과 노동단체 관계자들의 헌화와 분향은 식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고인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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