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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당당히 앞으로".. 노회찬을 잊지 못하는 이유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8.07.28 23:44
  • 수정 2018.07.29 13:25
  • 댓글 0

한 번으론 부족했을까. 아니, 그러고 싶었던 게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진행되던 지난 26일 저녁, 전날에 이어 빈소를 다시 찾았다. 추도식 장소가 지척이었지만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 인파 속 넘쳐흐르는 통한의 파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 순간에도 영정사진 속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미소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한 주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23일 월요일 오전 실시간으로 접한 사망 소식 이후 우울감이 엄습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라기보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죄책감과 아픔을 반복하는 듯한 무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하필 당신이 왜?'라는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소셜 미디어를 보는 일이 고통이었다. 누군가의 오열을 마주하는 일도, 그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하려는 이들의 패륜을 목도하는 일도 매한가지였다. 그 한 주간 만난 이들 중 "정의당 입당" 의사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는 이도 있었고, 이미 입당했다는 이도 있었으며, 무거운 감정을,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그런 황망하고도 아픈 한 주를 보냈으리라. 27일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도 '노회찬'이란 이름 석자는 내 눈과 귀에서 떠날 줄 몰랐다. 상주란에 가족의 이름이 많지 않은 것조차 아프게 다가올 정도였으니까.

"우리나라 속담 보세요. 속담이라는 말은 속한 말이라는 거예요. 지식인들이 만든 말이 아니에요, 속담은. 속담은 전체가 비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그 상황 상황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비유라는 거예요. 판을 갈자고 해서 정치판갈이를 무슨 관을 세워서 철학적으로 해석해 봐요. 웃기잖아요. 그냥 삼겹살 먹던 불판이 40년, 50년 해쳐먹었으면 빨리 갈아버려야 되지 않냐. 그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노회찬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게 철학에 있어선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우리 시대에 경기고까지 나온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민중이랑 밀착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민중의 언어가 몸에 배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상황 상황에서 민중의 언어로 얘기하기 때문에, 민중이 무엇보다 속 시원하고 친근하고 비근하게 느낀단 말이에요, 이걸."

무심코 재생한 팟캐스트 어플에선 지난 2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중'이란 단어도 반가웠지만, "예수가 바로 '민중의 언어'를 쓸 줄 알았다"던 도올은 그렇게 정치인 노회찬과 민중을 자연스레, 납득 가능한 논리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지금 제 가슴에서 지금 눈물이 끓어오르는데. 정말 이거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가. 모든 사람의 심정이 이런 심정일 거란 말이죠. 저는 국민들이 진정한 민중의 친구와 민중의 언어를 상실했기 때문에 이렇게 애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싶어요."

'민중의 친구' 노회찬

여기까지 듣자, 한 장의 사진이 스치고 지나갔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도로 열해 머리를 숙인 그 비감한 풍경, 슬픔을 머금은 표정의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어느 청소노동자를 안아 주던 그 흔치 않은 장면.

"국회청소노동자들이 고 노회찬 의원을 애도하며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열하는 청소노동자를 이정미 대표가 위로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

노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한창이던 27일 민주노총이 페이스북으로 전한 추모 글이다. "정치인 노회찬"이 "민중의 친구"라던 노올의 쩌렁쩌렁한 육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 '민중의 친구'여던 노회찬 대표는 그 민중의 애통한 마중을 받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을 국회를 뒤로 했다. 평소 국회 노동자들을 위해 의원실 한 편을 내주려고 했다던 노 원내대표를 향한 진심 어린 예의였으리라.

지난 23일 이후 며칠 간,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노회찬 당 대표의 수락 연설이 화제였다(관련 기사 : 노회찬 명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이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정의당 입당을 결정했다고 했다. '민중의 친구'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명연설이라 할 만 했다. 이 영상을 본 수많은 이들이 이찬진 전 대표와 같은 자책 혹은 자각의 감정을 느꼈으리라.

가장 슬펐던 몇몇 장면들 

도올에 목소리에 이어 재생되던 한 팟캐스트에서는 정치인 노회찬의 약사를 훑고 있었다. 그 중 노회찬 원내대표의 부인이자 인천 노동운동의 대모였다던 김지선씨의 사연,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 생활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울컥하는 감정을 실어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란 제목의 글이 회자되고 있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어요...
열여섯 나이에 동일방직에서 일하던 여자사람.

노동조합 만들어 사람대우 받으려다
온 몸에 생 똥을 쳐발라 대는
공권력 앞에 온 몸으로 저항했던 한 사람.
서슬퍼렀던 군부독재시절...

여의도 부활절 예배 단상에 올라
노동삼권 부르짖다 구속됐던 사람...

노회찬 만나
동인천 역앞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통금해제 기다리며
그냥...마냥 앉아 말로만 사랑 나누던 여인.

7년 수배중이던 남편은 옥살이로
신혼여행은
시외버스로...
누워 쉴 방도 없던
그런 날들을...
이것도 삶이려니 했던 통 큰 여인...
인천 노동운동의 대모...

1955년 양띠해에 태어나
온몸으로 살며 사랑하며를 실현했던
노회찬의 부인.

27일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김지선씨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남편이자 동지를 먼저 떠나보낸 이의 그 한없는 슬픔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으리라. 그러자 빈소 앞에서 오열하던 유시민 작가의 모습이 스쳐갔다. 평생 처음 "회찬이 형"이라 부르며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라던 추도사와 함께.

'진보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형' 노회찬과 함께 한 어느 팟캐스트에서 '진보어용지식인'을 선언했던 유시민 작가의 오열하는 얼굴 역시 노회찬 대표의 영정사진과 더불어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 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역시나 흘러가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차마 보지 못했던 영결식 장면을 기어이 클릭하고야 말았다. 조사를 읽어 내려가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그 슬픈 얼굴과 목소리는 추도식에서, 발인장에서 오열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기어코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라고 다짐하던 조사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 눈물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은 이들라면 더더욱.

그렇게 5일이 흘렀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인간 노회찬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추도식과 영결식이 끝났어도, 노회찬을 떠나보내기 힘겹다는 이들이 부지기다. 이제는 '민중의 친구'이자 '진보정당의 역사'였던 그 노회찬이 남긴 유산들을 되돌아 봐야할 것 같다. 황망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눈물이 넘쳐났던 2018년 7월 23일과 그 후 5일 간을 뒤로 한 채.

처음이자 마지막, '노회찬 마크맨'으로 지낸 닷새

누군가를 전담해서 취재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 합니다. 지난 닷새간 저는 노회찬 의원 마크맨이었습니다. 정의당에 출입한 지 꽤 됐는데,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제야 그를 취재합니다. 물론 답을 들을 순 없습니다. 이제와 궁금한 게 많지만, '노회찬의 꿈'을 묻고 싶지만, 그는 세상에 없습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영원한 동지를 잃었다"
월요일 오후, 갓 차려진 빈소는 한산했습니다. 빈소 앞엔 기자들만 빼곡했습니다. 감히 단언컨대, 정의당에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진 날일 겁니다. 차차 동료 정치인들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슬픔의 무게는 인연의 깊이와 상관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상임위를 같이 해본 적 없는 사람, 대척점에 서있었던 사람, 모두 고개를 떨궜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한 건 유시민 작가입니다. 고인의 오랜 정치적 동지. 꾹 참은 눈물은 영정사진을 마주하자마자 터졌습니다. 예를 갖춰 고인에게 절을 한 뒤, 유 작가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유 작가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형을 좋아했어요.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 유시민 작가

● 평범한 시민, 7만 명이 건넨 작별 인사

퇴근 시간 무렵, 빈소 앞엔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줄은 병원 지하 2층, 지하 1층, 1층까지 감쌌습니다. 조문객이 워낙 많다 보니, 큰 절이나 기도가 아닌, 묵념만 가능하다는 안내가 들려왔습니다. 그 짧은 작별인사를 위해, 모두가 한 시간 넘는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추모 열기는 목요일 추도식까지 이어졌습니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에 놓인 천 7백 개 의자가 꽉 찼습니다. 기자석에 앉아 기사를 쓰다 뒤로 돌아보니, 식 시작도 전에 이미 통로까지 사람들이 빽빽했습니다. 그분들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건물 밖을 시민들이 가득 메운 겁니다. 미처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스크린을 통해 추도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해가 져도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속에, 시민들은 묵묵히 고인을 배웅했습니다.

그렇게 닷새 동안, 추모객 7만 명이 빈소와 전국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 노회찬 없는 '노회찬 신드롬'

빈소와 추도식, 영결식, 고인이 가는 길마다 시민들은 노란색 종이에 작별인사를 적어 건넸습니다. 미안하단 말이 많았습니다. 후원금을 냈다, 정의당에 가입했단 글도 쏟아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회찬이 사라지고 나서야, 노회찬 열풍이 시작됐습니다. 지난주 정의당 지지율은 11%로, 당이 만들어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빈소 앞에 추모객들이 남긴 메시지"살아서는 외로운 분들과 언제나 함께 해주셨던 의원님, 가시는 길은 우리들이 외롭지 않게 함께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 같은 사람은
당신이 살아온 삶도,
당신의 마지막 선택도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당신의 삶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단 겁니다."

"살아계실 때 후원금을 보태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일개 시민이지만, 의원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을 잘 지켜 저희가 힘을 합쳐
의원님께서 만들려고 하셨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마지막까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신님의 절실함을 알기에 오늘 정의당에 입당합니다. 뿌리신 한 알의 홀씨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변화하는 대한민국을 보시면서 환하게 웃으시길 기원합니다."

- 故 노회찬 의원 추모 메시지 중

●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낮은 곳으로'

인연도 없는 정치인의 죽음에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그의 삶의 궤적이, 항상 우리를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를 보지 않을 때도, 그는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낮아지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많지만, 시작부터 낮은 곳에 있었던 정치인은 흔치 않습니다.

'용접공 노씨', 고등학교를 마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평생, '투명인간'들을 대변했습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에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 말로 투명 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들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

-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

그로부터 6년 뒤, 그는 지지율 두 자릿수를 기록한 '정의당'의 원내대표가 됐습니다.
매일 국회에서 열리는 당 아침 회의에 참석했던 그가, 지난 월요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의에서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만 덩그러니 보도 자료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국회에 들러 그가 마지막으로 쓴 메시지는, 복직한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축하 인사였습니다.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 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 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 지 12년 만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두 사안 모두 앞으로 최종 합의 및 입사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잘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10여 년이나 끌게 만들고, 상시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2018년 7월 23일, 정의당 93차 상무위원회 노회찬 원내대표 모두발언


● 노회찬의 꿈, 평범한 시민들의 꿈

닷새 동안 작별인사를 나눴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추모 열기는 이 같은 그의 삶에 대한 화답입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외로운 곳에 서 있었던 그를 기억하겠단 의집니다. 지켜주지 못했단 미안함입니다. 도덕적 흠결을, 그가 말하는 '허물'을 못 본체 하거나,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등을 돌리기엔, 그가 평범한 우리들 삶에 준 위안이 너무 큽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바랍니다.

2018.7.23. 故 노회찬 의원이 남긴 유서

'투명인간' 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그는 남은 사람들이 끝까지 그 길을 이어 가길 당부했습니다. 노회찬이 꿈꾸는 세상은 우리가, 평범한 시민들이 꿈꾸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 이제 우리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이제 저도 고인에게 정말,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게 노회찬 의원은 '장미꽃'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8일, 기자실 여기자들 자리에 누군가 장미꽃과 끈으로 예쁘게 동여맨 편지를 두고 갔습니다. 펼쳐보니 노회찬 의원이 장미꽃을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 그리고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축하와 다짐, 반성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한 여성의 아들이자 또 다른 여성의 동반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 2018년 3월 8일, 故노회찬 의원이 여성의 날을 맞아 쓴 축하편지
故 노회찬 의원 페이스북그런 날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누가 '여성의 날'이라고 축하해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열린 국회 영결식, 땡볕에 서서 가장 먼저 눈물로 고인을 배웅한 국회 청소노동자들도, 또 정의당 여성 당직자, 보좌진들도 매년, 고인으로부터 장미꽃을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내년부턴 받을 수 없겠지만, 여성의 날이 오면 노회찬 의원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너무 늦게 시작한, 닷새간의 짧은 마크맨 생활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숙제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장미꽃 보기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현태 기자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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