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초콜릿, 바나나에서 피냄새가 난다

우리는 차가운 도시 남자(여자)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후,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간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커피다. 스타벅스의 프리미엄 커피를 들고 고층빌딩 사이를 걸으면, 그제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어울리는 바쁜 직장인이 된 듯하다. 주말에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커피 전문점에 들어서면 마음마저 여유로워진다. 고소한 커피 향내를 맡으며 책을 펼쳐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한다. 

 

그런데, 이 커피는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누가 나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커피를 만들까.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김지애 옮김, 소울메이트 펴냄)를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켈시 티어먼은 어느 날 문득 이런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매일 아침 마시는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는 콜콤비아의 해발 2킬로미터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는 커피나무에서 구한 프리미엄 커피로 선전된다. 그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를 만든 이와 만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스타벅스에 최고급 원두를 공급하는 콜롬비아 나리뇨를 찾는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다. 이곳 사람 중 스타벅스가 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스타벅스가 2011년 9월 발표한 콜롬비아 농장 조사 보고서에는 나리뇨 농가 2만2000가구가 자사의 C.A.F.E. 프랙티스(프리미엄 커피 생산 농가를 개별 관리하는 정책)에 참여했다는 데, 이 명판을 붙인 집 주인 중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를 만나긴 쉽잖다.

 

값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다. 이곳 농부가 커피 1킬로그램을 팔아 받는 돈은 2.8달러(약 3000원)다. 커피를 즐기는 이가 점점 늘어나도, 농부의 수입은 변하지 않는다. 1991년에는 커피 재배국이 커피 수입의 40%를 가져갔다. 2012년에는 이 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커피값이 올라도 농부의 주머니는 채워지지 않는다. 커피 가격이 곤두박질치자,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농부는 커피나무 대신 코카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해도 남는 게 없는데, 왜 해야 하나?

 

<식탁 위의 세상>(문희경 옮김, 부키 펴냄)은 켈시 티어먼이 자기 밥상(미국인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식품 다섯 가지의 생산지를 직접 찾아가, 그곳의 노동 현실을 체험하고, 문제점을 고발한 책이다. 책 전반에 특유의 유머가 살아있고, 땀내가 진득하다.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다.

 

켈시가 찾은 곳은 콜롬비아의 커피 재배지를 비롯해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재배 농장, 코스타리카의 바나나 재배 농장, 니카라과의 바닷가재 채집 현장, 중국의 사과 농가다.

 

이건 실화다. 코트디부아르엔 여전히 노예제가 존재한다. 세계 카카오의 35%를 생산하는 이곳에서 가족을 먹여 살릴 달콤한 기회를 잡기 위해, 이웃 빈국인 부르키나파소의 수많은 젊은이가 몰려든다. 이들의 꿈은 극악한 노동 현실과 노예 시스템에 무너진다. 급여는 계약 기간이 만료돼야 받을 수 있고, 함부로 일터를 떠나지 못한다. 곳곳에 독사가 도사리고, 찌는 듯한 무더위가 숨을 막는다. 코트디부아르 농부가 극악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은 카카오 소매 가격의 2.5%에 불과하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여전히 전 세계에 2000만 명이 넘는 노예가 존재한다. 아동 노동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 중 적잖은 이가 먹을거리 산업에 종사한다.

 

이들의 희생으로 코트디부아르의 독재 시스템이 유지된다. 허쉬가 돈을 벌고, 부국의 시민이 달콤한 꿈과 같은 초콜릿을 맛본다. 당연히, 이들 노동자는 초콜릿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농부는 연간 300달러(약 33만 원)를 벌 뿐이다. 카카오 농사에 필수인 마체테 한 자루(5달러)를 사려 해도 손을 벌벌 떨어야 한다.

 

코스타리카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이가 택할 진로는 하나다. 바나나 농부다. 매일 새벽 4시에 노동을 시작하고, 밤이 되면 쉰다. 한 번에 50킬로그램의 바나나를 짊어 매고 정글을 누빈다. 그리고 시간당 1000콜론(약 2000원)을 번다. 이틀 지각하면 해고된다.

 

코스타리카가 미국인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바나나 수출국이 된 사연이 있다. 1871년 미국의 철도 사업가 헨리 메이그스가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에서 카리브 연안 항구도시 리몬을 잇는 철도 공사를 추진했다. 완공에 19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5000명이 죽었다. 뱀에 물려 죽거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일꾼의 먹거리가 필요했다. 싸고, 열량이 높은 먹거리. 그게 바나나였다. 애초 코스타리카의 바나나는 피를 먹고 자랐다. 백인이 지배하고, 흑인과 원주민이 희생했다.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은 돌(Dole)에 합병된 유나이티드 프루트의 하청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하청 계약직 채용 대신 정규 직원 채용을 요구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 지배된 콜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기관총으로 시위하는 이들을 사살했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그곳에서 죽었다. 미국 대사는 이 사건을 "영광"이라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식탁 위의 세상>(켈시 티어먼 지음, 문희경 옮김, 부키 펴냄.) 바나나는 지금도 백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징한다. 유럽의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라틴 아메리카 선수를 야유하며 축구 경기장에 내던진 건 바나나였다. 너는 우리와 다른 원숭이일 뿐이다, 라는 메시지다. 멸시당하고, 배고프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이 더 나은 돈을 위해 코카 산업에 들어간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그 누구도 자기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책이 묘사하는 글로벌 수탈 체제는 우리나라 영토 안으로도 고스란히 이식해 적용할 수 있다. 개발 시대 도시의 농촌 수탈, 비윤리적 소금 산업, 소득 저하에 따른 농촌의 낮은 교육 수준 체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 역시 이 체제를 경험하고서야 글로, 머리로만 생각하던 관념의 세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이르러 저자는 미국으로 돌아가, 음식을 대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한다. 음식의 윤리적 소비는 여유로운 자들의 자기위안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다.

 

이제 농사는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다. 이 고도화한 문명을 떠받치는 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논에서, 밭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먹거리를 채집하는 이들. 도시가 첨단을 향해 솟아오를수록, 이들의 삶은 더 빈곤해진다. 먹거리를 즐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고, 도시에서 충족감을 얻는 우리는 모두, 잔인하지만, 이들 노예의 희생에 빚졌다. 우리가 먹는 음식 한 입이 정치적 선언이다. 책을 덮으면 저자의 말에 백 배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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