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오찬회동 중인 문재인 대통령ⓒ정책브리핑

[뉴스프리존= 손지훈기자] 계파 갈등, 공천권 파동, 국회 공전, 지역주의, 지금껏 여의도 정가가 보여 온 대표적인 구태정치들입니다. 각 정당마다 계파 청산을 외쳐댔고, ‘오픈 프라이머리’다 뭐다 해가며 공정한 공천권을 약속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건 정당까지 출현했으며, 협의정치를 내세우지 않은 국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태정치는 여전합니다. 특히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김병준 비대위 체제로 들어선 자유한국당은 계파 갈등 탓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회는 방탄국회와 정제되지 못한 정책대결로 시도 때도 없이 멈추고, 지역주의는 영토 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그어놓았습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정당별 접근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정치는 국회의원이라는 각 기관들의 모임이 각각의 카운터파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생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제도로 돌리면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 보입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판 뒤흔들 초대형 사건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 지지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지난 16일, 민주당 홍영표, 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권한대행) 등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대통령이 주도할 사안은 아닙니다. (중략)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로 추진될 문제라는 점을 전제로 말씀드리자면,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2년 대선과 지난 대선 때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또한 지난 3월 26일 발의했다가 야권의 반대로 무산된 ‘대통령표’ 헌법 개정안에도 포함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비례성’, ‘대표성’, ‘권역별’, ‘정당명부’, 선거제도를 바꾼다는 건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용어부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편은 다당제와 협의정치의 발전, 지역주의 완화, 사표 방지,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 가능 여부, 여야 가릴 것 없이 벌어지는 공천권 다툼 제어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향후 정치 판도를 크게 뒤흔들어 놓을 사안입니다.

따라서 21대 총선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여의도 정치지형을 큰 틀에서 바라보려면, 유권자로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거제도라는 팩트 너머에 존재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로 들어가겠습니다.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선거에서 의원을 선출한 후, 각 당이 획득한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국회 전체 의석 중 지역구 의석 비율이 매우 높은 탓에 정당의 지지율보다는 지역구 승리가 훨씬 중요합니다.

제아무리 명망 있는 중앙 정치인이라도 경상도 출신이라면 전라도에서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현(순천・곡성), 김부겸(대구 수성갑)이라는 사례는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예외적 사례일 뿐입니다. 심지어 같은 도내에서도 남도와 북도는 갈립니다. 이런 선거 구조는 지역주의를 심화시킵니다.

지역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다 보니 엄청난 수의 사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강원 평창군수 선거에서는 12,489표를 얻은 민주당 한왕기 후보가 불과 24표 차이로 한국당 심재국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는데, 심 후보를 지지한 12,465표는 모두 사표 처리됐습니다.

오로지 1등만 당선되는 탓에 아무리 지지도가 높고 뛰어난 정치력을 가졌더라도 낙선자는 원외로 밀려나고 맙니다. 이처럼 실제 의석수에 반영되지 못하는 유권자 표심의 비중을 ‘불비례성’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각 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므로 거대정당들은 실제 얻은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갑니다. ‘표심 왜곡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런 의석 배분 탓에 거대정당 중심의 양당제 구조가 고착됩니다.

지역구를 나눈 다음 지역 당 대표자 한 명을 선출하는 이런 소선거구제 하에서, 거대정당들은 ‘자연히 생겨나는’ 기득권을 누립니다. 소수정당들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잠재적 경쟁자가 없는 상태, 방탄국회를 비롯한 의원들 간의 부적절한 연대는 여기서 나옵니다.

또한 전형적인 승자 독식 시스템인 소선거구제는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네거티브’를 부릅니다. 선거 기간 동안 ‘깎아내리기’에 따른 갈등이 격렬해지고, 선거 후에도 패자에 의한 ‘발목잡기’가 일상화됩니다. 각종 재・보궐선거와 다음 선거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협의정치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소선거구제는 모든 당내에서 공천권 다툼을 불러일으킵니다. 지역과 인물 중심으로 치르는 선거라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당대표의 전횡’, ‘제왕적 대표의 독선’, ‘공천 파동’, ‘계파 갈등’과 같은 문제들이 불거집니다. 어느 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하면,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사표를 양산하며, 거대양당 구조를 정착시킵니다. 협의정치를 실종시키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기득권이라는 현실에 안주하게 합니다. 또한 공천권을 위한 당내 분란까지 부추깁니다. 사실상 우리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가 거의 다 소선거구제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은 그동안 틈만 나면 지역주의 타파와 협의정치 강화, 투명 공천 등을 외쳐왔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정국이 불리할 때는 정신을 차리는 듯하다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즉시, 그 외침들은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설령 누군가 하려 해도 시스템, 즉 각 정당의 내부 권력구조가 강력한 제동을 겁니다.

그런 정치권을 보는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합니다. 되풀이되는 폐해를 고칠 방도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MMP, Mixed-Member Proportional)’로 개편하는 것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혼합비례대표제’ 또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라고도 불리는데, 선거의 비례성과 대표성이 보장되도록 인물 중심 선거와 정당 비례선거를 결합하는 선거방식의 총칭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무산된 바 있습니다. 2014년 10월 말, 헌법재판소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가 인구 비례에 맞지 않다”고 판결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2017년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현안으로 재부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그간 언급했던 선거제도는 정확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큰 틀 중 ‘권역별 비례대표제’였을 뿐입니다. 대선 당시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도 동일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정당명부제+비례대표제’에 반대했고, 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아예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6일 원내대표 5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언급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정확히 공약한 인물은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뿐이었습니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여러 개 권역으로 나눠서 인구비례에 따라 각 지역에 의석을 배분한 다음 지역구 선거부터 치르고, 그 후에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방식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선거에도 적용된 바 있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 1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입니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그런데 독일식 정당명부제(연동형 비례대표제)나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그게 그것 같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핵심은 비례대표를 배분하기 위한 정당 득표율의 적용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할 때,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전국 득표율에 따라 전국적으로 일괄 배분하지만,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권역별 득표율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식 정당명부제 하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정의당이 각각 50%, 30%, 10%의 지지를 얻었고 의석수가 100석이라고 가정하면, 총 100석 중 민주당은 50석, 한국당은 30석, 정의당은 10석을 가져갑니다. 설사 지역구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만약 지난 6・13지방선거가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치러졌다면 정의당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국적으로 6석이 아닌 21석을 차지했을 겁니다.

반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각 권역별 득표율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남과 경북 권역의 비례대표 의석수가 각 10석으로 동일하고, 민주당이 전남에서 80%, 경북에서 10%의 지지를 얻었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은 전남에서 8석, 경북에서 1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두 권역에서 민주당의 비례대표 비율이 달라지는 겁니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원은 200명이 되도록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은 100명 안팎으로 늘입니다.

이 부분은 ‘비례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상의 비례성은 장기적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1:1, 즉 150석씩 배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2:1 비율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다음, 의원 300명을 인구 비례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합니다. 계산해 보면, ▲서울 59석, ▲인천・경기・강원 98석, ▲부산・울산・경남 47석, ▲대구・경북 31석, ▲광주・전북・전남・제주 34석, ▲대전・세종・충북・충남 31석이 됩니다.

이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 200석을 뺀 100석이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로 할당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권역의 경우 59석 중 지역구는 40석, 비례대표는 19석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각 정당은 서울 권역에서 얻은 득표율만큼 19석을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시 유의할 부분은?

그러나 이런 시스템도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24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한 한국당 심재국 후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엄청난 수의 사표를 방지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 사진: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오찬회동 중인 문재인 대통령ⓒ정책브리핑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한 방안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현행 선거법상 지역구 후보는 비례대표로 등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향후 지역구 후보들도 비례대표로 등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낙선하는 후보들이 비례대표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자는 취지입니다.

이처럼 높은 지지를 얻고도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당선자로 결정하는 제도를 ‘석패율제’라고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 시행 중인 제도입니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가 다시 당선됨으로 인해 유권자들의 투표 효능감이 저하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봉쇄조항도 유의해야 합니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과격한 종교단체나 자질이 의심스러운 소수정당도 손쉽게 원내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를 봉쇄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정당 득표율이 5%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에는 의석을 배분하지 않습니다.

정당 득표율 5%는 우리나라의 대한애국당, 녹색당, 노동당 등 마이너 정당들에게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턱입니다. 기준 미달인 정당의 원내 진출은 정치를 혼탁하게 하기에 반드시 걸러져야 합니다. 그러나 한 코미디언의 인터넷 정당으로부터 출발해 원내 제3당을 꿰차고 두 명의 시장까지 배출하면서 이탈리아 정치 변혁의 중심에 선 ‘오성운동’을 보면, 정당 득표율 5%라는 문턱을 조정해 도입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또 한 가지 봉쇄조항이 있습니다. 지역구에서 3석 이상 당선시키지 못한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봉쇄조항 역시 정당 득표율 5% 봉쇄조항과 연계해 조정・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양당 기득권 포기해야 정치발전 가능

“대원칙, 즉 투표수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가져야 한다는 비례 원칙에는 전 국민이 동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7월 18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한 발언입니다. 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지난 6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아직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 논의와 선거구제 개편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선거제도 개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원내대표의 발언 하나로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한국당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부터 선거제도 개편에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소선거구제로 인해 손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소선거구제는 야당보다 여당에, 소수정당보다 거대정당에 유리합니다. 따라서 거대정당이자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서는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거대정당이자 여당인 민주당 역시 선거제도 개편에 뜨악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하필 우리 때냐”는 반발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개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발언도 그렇지만, 지난 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선거제도 개편을 관장할 국회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점도 가능성을 높이는 호재들입니다.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생각이 존중되는 정치시스템이지, 머릿수가 더 많은 진영의 의견만 무조건 채택되는 승자 독식 시스템이 아닙니다. 채택되지 못한 진영의 의견을 얼마나 놓치지 않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수준은 채택되지 못한 의견보다 더 작은 목소리, 즉 소수의견을 내기 위해 시민들이 정당을 얼마나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지, 그 정당의 원내 진입이 얼마나 쉬운지에 따라서도 결정됩니다. 이는 “소수의견이라도 최소한 공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주장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수의견이 인류사 발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선거 때마다 사표로 버려지는 표심이 1천만에 달합니다. 국민의 선택 중 대략 25%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협의정치가 실종된 채 공천권을 두고 싸우는 정치,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가운데 거대양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정치, 이제는 그만둬야 합니다.

매번 구호에 그친 정치발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만 있다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좋고, 독일식이나 뉴질랜드식 또는 스웨덴식 비례대표제도 좋습니다. 선거의 비례성과 대표성만 제대로 담보된다면, 일본은 물론 아프리카 밀림 어느 구석에서라도 제도를 빌려와야 합니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확보할 수 없어 대연정을 비롯한 협의정치가 일상이 되는 정치, 당선만을 위한 당대당 연합이 불필요한 정치, 자질을 갖춘 소수정당이 지금보다 더 쉽게 원내로 진출하는 시스템, 공천권이라는 당 내부 권력이 사라져 이른바 공천을 따라 떠도는 ‘철새 정치인’들이 없어질 정치는 꿈이 아닙니다.

자당의 이익에 매몰되어 결함 많은 소선거구제를 끝끝내 버리지 못했던 한나라당・새누리당 등 보수 진영이 오는 21대 총선에서 절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현 대통령보다 더 정확한 선거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한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국회의장도 나서고 있고, 중앙선관위 역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대안을 이미 내놓았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금만큼 선거제도 개편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여당 자리를 꿰찬 민주당과 소선거구제의 달콤함에 빠졌던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이 합의에 이르는 것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정치발전을 위해 거대양당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롤러코스터식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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