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1층 로비에서 23일 오후 잠시 포즈를 취한 세계 최강의 전해군 UDT 출신 강유성(사진 왼쪽.하후 115기)씨와 SSU 출신의 김상우(하후 141기) 씨.>

[뉴스프리존= 권병창 기자]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당시 생사를 건 수색구조에 참여한 전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예우와 보상에 인색한 정부의 홀대에 급기야 국회 기자회견에 나서 진중의 화제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에서 부사관으로 몸담은 역전의 두 주인공은 다름아닌 92년 하사로 전역한 강유성(하후 115기)씨와 97년 하사로 세이러복을 벗은 SSU 출신의 김상우(하후 141기)씨.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박주민의원과 함께 '故김관홍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 안타까운 현실을 호소했다.

참사 당시 이들은 실질적인 보상과 예우를 떠나 세월호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당시 승조원과 승선객과 달리, 촌각을 다투는 사선에서 인명구조에 헌신했다.

그러나, 이들은 30여m가 넘는 맹골만 해저에서 세월호 구조작전에 투입된 가운데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받은 충격과 후유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귀띔이다.

침몰해 숨진 292명의 희생자 구조는 물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죽음의 사선을 마다했던 뒤로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목숨을 내건 당시의 수색구조는 실전을 방불케 했다.

해군 특수부대에서 전역후 민간잠수사로 활동하던 이들의 결정이 이제는 경제난과 가족과의 괴리로 이어지며 후회막급하다는 성토이다.

악몽같은 세월호 참사이후 곧바로 현장에 첫 투입된 강유성 씨는 그 당시 최초의 민간잠수사로 온갖 악조건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건네받은 장비마저 부실한 데다 일반 공기를 압축해 호흡 매체로 사용하면서 죽음의 현장에서 장기간 수색구조를 하다보면 생체 리듬 또한 깨지기 일쑤였다.

급박한 상황에 체류시간이 늘어나면서 혈관이 수축되는 장애로 여전히 후유 고충을 겪는다고 술회했다.

현역에 있을 때는 안전을 고려한 완벽한 장비를 갖췄지만, 전역후의 산업장비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상기한다.

이는 SSU 출신의 김상우 씨 역시 4월23일께 사고해역 현장으로 투입된 뒤 2개월 동안 구조 및 수중수색에 참여했다.

소름돋는 기억은 생명과 같은 투입 장비가 해군의 특수장비와는 턱없이 열악한 민간장비를 지급받아 사실 목숨을 담보로 한 무모한 짓이었다는 전언이다.

심지어 호흡기로 착용한 마우스가 바다 밑의 와류로 그만 자신의 입에서 이탈됐을 때 무려 35m의 캄캄한 바다 밑에서 올라 가까스로 살아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여력을 다해 숨을 참아내는 기법으로 입수했을 때의 칠흑같은 코스 기억을 되살려 그는 수중현장을 탈출했을 때는 지금 생각만해도 아찔하다는 후일담이다.

요컨대, 역전의 두 용사는 일련의 세월호 참사 당시 ‘故김관홍법’을 뒤늦게나마 개정해 소외됐던 의인들의 재평가를 신독(愼獨)으로 바란다며 다시금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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