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 가요!

행복한 생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마음 가까이에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행복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남에게 전파해 줄 수 없습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인내하고 스스로 찾아야 얻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행복은 미래가 아닌 여기 지금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역시 불행한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다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텔마 톰슨’ 이라는 여인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한 육군 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제이브 사막’ 근처의 육군훈련소에 배속되어 왔습니다. 남편 가까이에 있고자 이사를 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하기만 했습니다.

못마땅한 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훈련 차 나가고 오두막집에 혼자 남게 되면, 섭씨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고작 멕시코인과 인디언뿐이었습니다.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모래 바람이 불어 음식물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절로 신세 한탄이 나왔고,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이곳에 더 눌러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형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당장오라거나 자신을 위로해 줄 거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답장은 간단 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보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 너무 간단한 내용에 처음엔 실망했지만, 이 편지가 그녀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 애를 썼습니다. ‘내 자신에게 밤하늘의 별이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주변을 살피며 원주민들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이 보여준 반응은 그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편물(編物)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 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는 팔지 않던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선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 난초, 여호수아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고, 사막의 식물을 조사했으며, 사막의 낙조를 바라보기도 하고, 1백만 년 전 사막이 바다의 밑바닥이었을 무렵에 존재했을 법한 조개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 시켰을까요? ‘모제이브 사막’은 변함이 없었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변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녀는 ‘힘든 경험’을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기회’로 바꾸었고, 새롭게 발견한 세계에 자극 받아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출판 사인회’에서 그녀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너는 불행하다!’ ‘너는 외톨이다!’ ‘너는 희망이 없다!’ 라고 말하는 ‘마군이의 소리’도 들렸고, ‘너는 행복한사람이다!’ ‘이곳으로 너를 인도한 이는 바로 진리님이다!’ ‘이곳에서 너의 새 꿈을 꾸려 무나!’ 라고 말씀하시는 진리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군이의 소리’에 귀를 막고 ‘진리의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의 이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와 같이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화를 내면, 나머지 가족들까지 화를 내게 되며, ‘부정적 바이러스’는 모두의 기분을 망치게 합니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란 말이 됩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사람들이 저 보고 자꾸 묻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냐?’고요. 다리가 아파 꼼짝 안하는 제가 무척이나 걱정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아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은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 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것입니다.

저는 외향적(外向的) 성격 탓인지 단체를 조직해 발전시켜 가고, 외국여행도 즐기며, 널리 사람들을 사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다 저의 업보(業報)인지 오랜 당뇨병 탓으로 양쪽 다리의 동맥이 막혀 꼼짝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겨우 1주일에 한 번 원불교 여의도교당과 석 달에 한 번 <덕화아카데미> 초청강연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지요.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이젠 제 인생에 막을 내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그나마 다리 아픈 것을 제하고는 별로 불편한 것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 가요!

매일 같이 [덕화만발] 카페를 관리하고, ‘덕화만발’의 글을 쓰기에도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또 틈틈이 마음을 마음대로 쓰는 <삼학수행(三學修行)>에 몰두하여 일심을 기릅니다. 제 나이 이미 80! 아마 이 노년에 저같이 행복한 생애를 누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8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