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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의 강제 진압 ‘나비 효과’ MB 청와대 최종 승인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8.08.28 21:59
  • 수정 2018.08.2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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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 김현태 기자] 경영 위기를 겪던 쌍용자동차가 노동자 절반을 해고하려 하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2009년 8월6일, 쌍용차 경영진이 쌍용차의 파산위기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내놓은 2646명의 해고방안에 반발하여 시작되었던 76일간의 파업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참혹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우리에게 쌍용차의 파산위기가 왜 일어났으며 노동자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반발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한다. 쌍용차 위기는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세계 자동차업계의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GM과 클라이슬러 등이 무너졌으며 남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구조조정과 M&A등을 벌이고 있다. 

9년전 쌍용 사태는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하며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경찰은 강제 진압에 들어갔고, 76일 만에 파업이 끝났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은 분명 사측과 정부에 있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4년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됐다. 그 당시 쌍용차의 채권단은 자신들의 돈을 챙기기 위해서 상하이 자동차에 쌍용차를 매각하였고, 정부는 오히려 상하이 차의 인수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는 일에 힘썼다. 지난 상하이 자동차는 우려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차에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차는 단 한 대도 출시하지 않았다. 그동안 상하이 자동차는 헐값에 쌍용차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거나 직접적으로 도면과 연구원들을 빼돌리는 일에 전념했다.

당시 진압 작전을 살펴본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위법투성이였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당시 사측과 정부는 쌍용차의 위기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노조에게 모든 고통을 부담시키려했다. 상하이 자동차와 올해 1월 쌍용차가 파산위기를 맞아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가자 노동자들은 회사의 고통을 분담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임금은 몇 달째 체불됐으며, 임금이 삭감되고 복지 혜택이 축소됐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상하이 자동차는 SUV와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에 관한 기술 등의 기반기술을 축적하는 이득만 얻었지만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고통을 나누자는 노조 측에게 정부와 사측은 되레 2646명을 해고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청산하는 길 밖에 없으며 이는 쌍용차뿐만 아니라 쌍용차의 협력업체들 그리고 평택의 지역 경제까지 위협하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이러한 노사 간의 극명한 의견 차이는 점거 파업으로 이어졌고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한국사회의 불안정한 구조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로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노동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고용상황은 불안정해졌으며 비교적 안정적이고 적절한 보수를 받는 좋은 직장은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부실한 복지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쌍용차에서 해고되고 나면 그들은 다시는 쌍용차와 같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은 당장의 수입원이 사라졌지만 복지제도에 기댈 수도 없다. 따라서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에서는 노동유연화와 더불어서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하여서 유연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덴마크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정책이 있었다면 쌍용차의 노조가 얼굴에 테이져 건을 맞아가면서, 발암물질이 함유된 최루탄을 맞아 피부가 녹아들어가면서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유연성만 강조해온 우리의 방식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쌍용 사태, 헬기를 동원해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 20만 리터를 노동자들 머리 위로 뿌렸고, 테이저건 같은 대테러 장비까지 동원하고 다목적발사기로 스펀지탄을 쏴서 노조원들의 부상이 속출했다. 경찰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을 달아 파업 반대 여론 조성을 시도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2600여 명 근로자의 대량해고로 촉발된 쌍용차 사태. 어느덧 쌍용차 사태가 일어난지 9년이 지났다.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해고의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세상은 점점 그들을 잊고 있었다. 지난달 28일에 찾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몇 사람이 텅 빈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을 뿐 그곳은 썰렁했다. 22명의 죽음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시민들은 분향소 앞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갔다.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전체인력의 37%에 해당하는 2646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한다. 그해 5월 노조는 해고에 정당성이 없다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며 평택 공장을 점거했다.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옥쇄파업에 회사는 직장 패쇄와 공권력의 투입으로 맞섰다. 최루액을 쏘고 단전단수 조치를 감행하는 등 회사는 공장을 멈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전방위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결국 기나긴 싸움 끝에 쌍용차 노동자는 무급휴직 48%, 희망퇴직 52%이라는 굴욕적인 최후협상에 합의 한 채 평택 공장을 떠나야 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그들의 삶
2009년 구조조정 당시 노사는 정리해고 대상자 가운데 48%는 1년간 무급휴직 후에 순환복직 시킨다는 것에 합의를 했다. 하지만 9년이 흐른 지금 더욱 심각한 것은 투쟁이후 사측과 정부 등이 청구한 손해배상건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경제적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금껏 일용직과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던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숨진 상태이지만 정부와 회사 측은 대화도 하려하지 않고 대책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당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정혜신 박사는 “심리치료를 담당할 때 노동자들의 상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며 “이들은 온 몸에 진땀이 흐르고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의 스트레스로 인해 심근경색 사망률이 일반인구에 비해 무려 18.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차 사태를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현주소
한국 사회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코오롱, 콜트콜텍, 유성기업, 재능교육 등 장기 투쟁중인 사업장의 사례는 쌍용차 사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폭압적인 노동자 정책에 있다”면서 노동정책 기조 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의 강제 진압이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경찰 장비 사용기준에 맞지 않았다"며 위법한 작전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상관인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노사 협상의 여지가 있다"며 진압에 반대 의사를 밝히자 강 전 청장을 건너뛰고 청와대 고용 노동비서관으로부터 직접 작전을 최종 승인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론적으로 쌍용차 사태는 정부와 사측에 잘못된 태도와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가 맞물려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경영진들의 책임감 있는 태도는 물론 사회적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대한 개혁과 안정성의 중요함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김현태 기자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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