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 핵문제로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취소했는데, 왜 취소했을까? 트럼프는 그 이유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고, 그리고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웠다.

황당무계한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북한 핵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할 일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한 속내는 북한이 중국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9.9절 행사에 참석할 것 같고, 이렇게 되면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아주 긴밀해질 것이어서 미국으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겠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6.12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부터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 편에 서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는데, 북한이 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중국 편에 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6.12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방향으로 나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6.12북미정상회담이 있기 직전인 6월 초 북한의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으로 가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이 만남 이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대북강경책을 포기하고 사실상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것은 김영철 부위원장의 다음과 같이 미국을 설득한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지금 아주 나쁘다. 그래서 우리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 편에 서고자 한다. 그러니 북한이 미국 편에 설 수 있도록 북한 핵문제에 대해 너무 압박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아주 반가운 제안이었다. 미국의 최대 대외정책은 북한 핵문제가 아니라 중국포위전략인 터에 북한이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 편에 서겠다고 하니 이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과 등을 지면서 미국 편에 서는 경우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6.12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룬 것이 전혀 없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한껏 칭찬하면서 북미관계가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그 이후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는데도 북한 핵문제가 잘 풀려가고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필자는 6월6일자 ‘트럼프는 북한 헥문제와 관련해 왜 느긋해 할까?’에서 이 점을 밝힌 바 있음.)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해결되면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든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한 것도 북한이 미국 편에 서게 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 김정은 위원장한테 놀아나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미 중국과 굉장히 가까워짐으로써 미국 편에 서는 것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이 이렇게 가까워지게 만듦으로써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중국의 경우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협조했겠으나,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가운데 북한을 미국 편에 끌어들여 중국포위전략에 활용하려 하니 중국으로는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상관없이 북한을 끌어안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북한으로서도 김영철 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편에 서겠다고 말할 당시에는 정말로 미국 편에 서려고 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사정이 중국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된 점이 컸다. 본래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는 것을 감수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기도 했지만, 6.12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다 미국주도의 대북제재가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북한으로서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중국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북한 핵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무능과 꼼수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부터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꼼수를 부리지 말고 본래 자기가 주장하던 대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더라면 어떤 식으로든 북한 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었을 텐데 꼼수를 부리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앞으로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되어갈까? 원점으로 되돌아간 정도를 넘어 상황이 아주 나빠졌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굉장히 협조했던 중국이 이제 협조는커녕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지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한 채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하니 중국으로서는 이를 막기 위해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미국의 북한 압박도 힘을 잃게 되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은 본래도 옳지 않지만, 그나마 그렇게 할 명분과 기회를 잃었으니 말이다. 대북경제제재 또한 중국이 북한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한 미국의 압박이나 제재에 굴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 편에 서면서 미국 편에 서지 않게 되는 것이 확실해질 때는 북한과 중국에 강력한 압박을 가할 것이고, 이것을 북한도 중국도 무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당장 시진핑 주석의 북한 9.9절 행사 참석에 대해서 북한도 중국도 이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시 주석의 9.9절 행사 참석은 북한이 중국 편에 서는 것을 내외에 과시하는 것이 될 텐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북한도 중국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을 해임하고 볼턴 같은 사람을 국무장관에 기용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며, 이와 동시에 중국에 대해서는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북폭의 의사까지 내비칠 것이다. 이미 빛바랜 카드가 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불안해질 것이다.

이러니 남북관계도 좋아질 수가 없을 것이아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장 9월 중순의 북한 방문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까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보았자 아무런 성과를 거둘 것이 별로 없고, 북한과 미국을 중재한답시고 미국을 설득하려 들다가는 미국한테 밉보이기나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북한 핵문제는 민족통일이 되어야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한반도를 통일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를 활용해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이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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