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好我)
호아(好我)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것 보다는 내 것을 좋아하자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400억대 제작비를 자랑하는 tvN의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삽니다. 배우 이병헌과 김태리가 출연하는 이 드라마는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노비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항일투쟁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미 그 당시 1885년 서울시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이 저의 모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86년에 배재학당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梨花學堂)이 설립 됩니다.

그리고 1899년 한국철도의 첫 개통과 함께 여객열차가 운행되었고, 곧이어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되었습니다. 서대문과 초량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급행열차도 등장하였는데, 열차 이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를 딴 ‘융희호(隆熙號)’였습니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 나갔더니 한 인사가 아시안게임 한일 축구를 보고 일본에 적대감을 보이면 안 된다고 거품을 물고 주장을 합니다. 일본의 통치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일본이 없었으면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없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일본의 침탈이 없었으면 더욱 발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에 설명한 것과 같이 치욕적인 1910년 한일합병 훨씬 전에 근대식 교육기관도 설립하였고, 철도도 개설한 근대문명을 열어가기 시작한 나라였습니다. 비록 나라는 일본의 무력과 모략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기는 하였지만, 어찌 일본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나라사랑이 무엇인가요? 저는 나라사랑을 외국의 좋은 문물은 받아들이되, 그러면 그럴수록 내 것, 우리 것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 곧 ‘호아’라는 생각입니다. 나라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는 것이 나라사랑이 아닐까요?

그럼, 우리는 나라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선 이 두 가지를 먼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고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요즘 10대들의 언어를 보면 줄임말과 영어를 많이 섞어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안녕’을 ‘안뇽’으로 바꾸어 쓴다거나 아예 한글을 쓰지 않고 인사말을 ‘하이’ 또는 ‘하이루’ 로 대신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일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용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둘째, 우리 것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자연스레 외국의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 것 보다 서양 것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 우리나라 보다 서양이 더 많이 발달했다는 근거 없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 것, 우리 것을 제대로 안 상태에서 서양 것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계속된다면 나라는 있지만 나라의 혼은 없는 불쌍한 나라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어느 무엇보다 한국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발전으로 내 것,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대두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런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대되어 ‘민족 자아(自我)’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구체화되기 이전에 우리는 ‘존주대의(尊周大義)’ ‘존화양이(尊華攘夷)’라는 관념에 빠져 있었습니다. 중국 것은 높고 내 것은 낮다는 자기 비하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든 것입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숭명배청(崇明排淸)’의 생각이 강화되고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사회의식의 주조를 이루면서 나에 대한 인식은 매우 희박한 상태였습니다.

이러던 시기에 실학자들의 등장으로 자아발견의 인식이 강조되고, 내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대두된 것입니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丁若鏞 : 1762~1836)에 이르면 모든 면에서 중국은 높고 우리나라는 낮다는 그런 생각을 분명하게 타파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다산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중앙에 자리 잡아 중앙에 있는 나라, 즉 중국(中國)이라고 부르는 이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글 <송한교리치응사연서(送韓校理致應使燕序)>라는 곳에 “동서남북의 중앙에 처음부터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라면 가는 곳마다 중국이 아닌 곳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지구는 둥급니다. 한 곳에 자리 잡은 나라는 그 나라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앙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중국만이 중앙에 있는 높고 훌륭한 나라가 아닙니다. 요즘은 성인(聖人)이 계신 곳이 중국이고 세계의 중심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추앙 받는 성인이 여러분 나셨고 현재에도 계십니다.

우리나라는 도덕의 부모국이요, 정신의 지도국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어변성룡(魚變成龍), 즉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주의(主義)라도 도리어 그 주의를 더럽히고 맙니다.

무리(無理)로 나를 선전하고 모략(謀略)으로 남을 공격하는 사람은 혹 일시적 인심 선동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과응보의 진리가 소소영령(疎疎英靈)하기 때문이지요. 대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은 살아도 가치 없는 인생이요, 죽어도 값 업는 죽음입니다.

우리 ‘호아’, 즉 내 것, 우리 것부터 좋아해야 됩니다. 공연히 일본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미개국이나 후진국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친일파적인 철없는 말은 삼가면 좋겠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9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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