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70년 만에 원형 복원… 3·1운동 전 세계에 알린 테일러 가옥, 서울시·문화재청 등 합의… 2019년 시민에 전면 개방

서울시는 3월 1일(화) 정오, 보신각에서 제97주년 3.1절을 기념하는 타종행사를 개최한다.

3.1절 기념 타종은 일제시대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온 국민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의미가 있다.
 

올해 타종행사에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박래학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김영종 종로구청장을 비롯하여 독립유공자 후손, 3.1운동 정신 계승활동 인물 등으로 구성된 12명의 타종인사들이 4명씩 3개조로 나누어 각각 11번씩 모두 33번의 종을 친다.

특히 올해 타종인사로 선정된 9명 중엔 1919년 3.1운동을 해외에 알린 故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 등이 포함됐다.

-독립유공자 故 이명 선생의 자녀이신 이석희 님 : 故 이명 선생은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으며 6.25에 참전하는 등 항일활동 전개

-독립유공자 故 윤명선 선생의 자녀이신 윤용황 님 : 故 윤명선 선생은 3.1운동과 단발령, 창씨개명에 불응해 고초를 당하는 와중에도 마을학당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등 항일활동 전개

-독립유공자 故 조극환 선생의 자녀이신 조희석 님 : 故 조극환 선생은 1919년 4월 영암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는 등 항일운동 전개

-독립유공자 故 김봉호 선생의 손자이신 김창해 님 : 故 김봉호 선생은 1919년 3월 전주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는 등 항일운동 전개

-조광 님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서울시 역사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서울시가 최초로 준비중인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역사도시서울 추진위원회 위원장임

-제니퍼테일러 님 : 1919년 3.1운동을 해외에 알린 故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겸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음

-양준혁 님 :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해설가, 사회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음

-권지웅 님 :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으로 대한민국 청년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위해 구성한 서울시 ‘대청마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김서경 님 :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되살리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전국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제14회 유관순 횃불상’을 수상한 서울한영외국어고등학교 학생

한편 타종식 개최 전에는 무형문화재 재능기부 공연 및 종로구립합창단의 합창공연, 그날의 의미를 기리는 3.1만세의 날 태극기 물결행진이 남인사마당에서 보신각까지 재현될 예정이다.

무형문화재 재능기부 공연에서는 서울시지정 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보유자 이옥천 명창과 제2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 송원조 고수가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을 함께 할 계획이다.

고홍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서울시가 마련한 제97주년 3.1절 보신각 타종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함께 우리의 역사를 알고 의미를 기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사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딜쿠샤의 옛 모습(왼쪽 사진)과 현재. 서울시 제공

세월에 따라 강산도 변한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은 굳이 세월이라고 할 것도 없이 빨리 빨리 변하고 있는 게 서울의 모습이에요.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아파트, 그리고 새로운 빌딩들…. 아주 정신을 못차릴 정도지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 많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도 사방에선 고공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포크레인이 땅을 파내고 있는 모습들 뿐이에요. 이러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찾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변화속도가 빨라졌을까요? 그건 근대화 이후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부터에요. 조선 왕조 이후 한반도의 중심이었던 서울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서울이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시골사람들에게는 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건 알고 계세요? 이에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생겨났을 정도에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울을 매주 소개해볼까 해요. 사진에서 느껴지는 서민들의 삶이 풍요로운 오늘의 기반이 됐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더욱이 강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충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죠. 옛 서울의 모습도 감상하고 변화하는 생활상도 느껴보세요.

 

 

 

1. 고종 인산 전날 대한문 앞에 모인 민중들
 

1910년 일제 강점 후 강압적인 무단통치 아래서도 민족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의식은 더욱 커져 갔다.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독립 의지를 내외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다. 이러한 때 1919년 1월 22일,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갑작스럽게 승하했다. 일제가 고종이 마시는 식혜에 독약을 넣어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2. 고종 인산 전날 모인 민중들
 

고종의 승하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커다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이처럼 반일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국장일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민족지도자들은 국장을 보기 위해 민중들이 서울로 운집하는 3월 1일을 거사의 날로 정해 3·1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3. 훈련원에 마련된 고종의 장례식장

 

 

4. 태화관

서울은 3·1만세운동의 진원지이자 본산이다. 최남선이 기초한 3·1 독립선언서는 종로구 조계사 근처에 있던 보성사에서 2만쇄 인돼됐다. 이 독립선언서는 품에서 품으로 전달돼 한반도 곳곳에 뿌려졌다.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은 태화관(종로구 인사동 YMCA 빌딩 뒤편, 명월관 분점)의 `별유천지`란 명칭이 붙은 구역의 제6호실이었다. 사진 여성 뒤의 건물이 바로 그 곳이다. 태화관은 안동김씨 세도가였던 김홍근의 집터로 한 때 이완용이 살기도 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5. 탑골공원(1940년 무렵)

33인은 원래 독립선언서를 탑골공원에서 민중과 함께 발표하기로 했으나, 비폭력 운동 주장으로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제창했다. 그리고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리고 체포됐다.

 

 

 

6. 종로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 여성들

약속한 대로 탑골 공원에는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학생과 민중들이 모여 33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돼도 33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신학교 졸업생인 정재용이 단상에 올라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군중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종로 일대로 쏟아져 나왔다.

 

 

 

7. 3·1 운동 당시 성곽 위에 모인 민중들

시위 행렬은 종로·광교·경성부청을 거쳐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했으며, 일부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 시위 운동은 해질 무렵에는 마포 등지의 교외 지역으로 확대 돼 서울 전지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3월 하순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일제의 무자비한 발포와 진압으로 4월부터는 독립운동의 양상이 시위운동보다는 비밀 결사 등의 지하활동 방향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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