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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순천 조계산 선암사을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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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순천 조계산 선암사을 가보니,.
  • 강대옥
  • 승인 2018.09.09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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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은 2009년 사적 및 명승 제65호로 지정됐으며, 매년 50만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찾는 산림청 지정 '대한민국 100대 명산'중 하나다. 승선교 아래에는 용모양 장식이 걸려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용의 입 주변에 동전 3개가 걸려 있다. 1713년 호암 스님이 공사를 마무리하고 남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훗날 수리비용에 사용하라며 남겼다 한다. 청렴결백한 스님의 뜻이 통한 걸까. 300여 년 간 다리는 튼튼하게 유지됐고, 동전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계산 동쪽 기슭 장군봉 아래 백제 아도화상 창건 또는 신라 말 도선국사 창건 추정 고려 대각국사 의천 중건 조선시대 정유재란 대부분 소실 영조 1761년 화재예방으로 청량산 해천사로 개명 순조 1823년 다시 화재 후 60여 동 중창하고 조계산 선암사 복명
1948년 여순사건 소실 1950년 6.25 전쟁 소실 지금은 20여 동 보존, 선암사는 특히 조선 왕실의 사랑을 받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한동안 왕자를 얻지 못해 애가 탄 적이 있다. 정조의 부탁으로 눌암대사가 선암사의 원통전 건물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같이 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순조는 즉위 이듬해인 1801년 원통전에 큰 복을 낳게 한 밭이란 뜻의 ‘대복전(大福田)’ 현판을 하사했다. 지금도 순조의 글씨가 남아있는 원통전은 사찰인데도 조선 왕실의 건축 양식인 정(丁)자형으로 지어져 있다. 

선암사(사적 제507호)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802)

조계산 동쪽 기슭 장군봉 아래
백제 아도화상 창건
또는
신라 말 도선국사 창건 추정

고려 대각국사 의천 중건
조선시대 정유재란 대부분 소실
영조 1761년 화재예방으로 청량산 해천사로 개명
순조 1823년 다시 화재 후 60여 동 중창하고 조계산 선암사 복명
1948년 여순사건 소실
1950년 6.25 전쟁 소실
지금은 20여 동 보존

선암사는 태고종
송광사는 조계종

선암사는 태백산맥 조정래 출생지
선암사 부주지가 아버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18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북 보은 법주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해남 대흥사
홍교
무지개 돌다리
건너 갔다 건너 오는 다리
숙종 1698 호암대사 축조
순조 1825 해붕스님 중수

1홍교

1홍교에서 보는 2홍교 승선교
승선교
보물 제400호
강선루
삼인당
가운데 알 모양의 섬은 자각자리(自覺自利),
긴 타원형의 못은 각타이타(覺他利他)

‘삼법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만세루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보는 종각
대웅전
보물 제1311호
삼층 석탑
보물 제395호

불조전에서 보는 대웅전 후면
팔상전
원통전

불조전과 팔상전 사이에서 보는 원통전

좌 불조전과 첨성각 방향 보기

첨성각에서 보는 원통전
원통전 문살과 내부
첨성각, 첨성각과 원통전 사이, 원통전과 첨성각 후면

원통전에서 응진전 영역으로 가는 협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뱃속 근심이 우주의 근심을 만드는 저녁,
염주알 구르는 작은 원융(圓融)의 소리에도 사방 십 리 안 모든 봄 나무들이 깨달음의 문을 열어 꽃등 불을 켜는데,
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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