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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재인대통령이 왜 ‘특전사’에 가야만 했는가? 궁금유신을 반대하는 학생은 무조건 군대에 보내라 ‘강제징집’
  • 임병도
  • 승인 2018.09.15 23:23
  • 수정 2018.09.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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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던 계기 중의 하나가 바로 특전사에서 점프(공중낙하)를 준비 중인 한 장의 사진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고위공직자는 물론이고 재벌, 언론사주 자녀 등 대한민국의 지도층이라는 계층이 대부분 병역을 면제받고 군대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특전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가 삶을 제대로 살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특전사로 남자답게 군생활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전사를 갔다는 사실은 그 시대 상황의 아픔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특전사 입대를 통해, 그의 삶과 그 시대의 암울함을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 박정희 영구집권에 반대하는 자는 무조건 빨갱이

문재인 대통령은 1975년 8월에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입대한 1975년의 상황을 보면 그가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 군대에 갔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입대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1975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대학 교련교육을 강화합니다. 명목은 북한 및 공산 세력에 대한 위협을 대비하겠다는 것이지만, 사실 그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생들의 입을 막으려는 조치였습니다.

박정희는 4월27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터져 나온 부정 선거 시비를 없애기 위해, 서울대 휴업령을 시작으로 10월5일 고려대에 수경사 소속 무장 헌병을 투입하여 도서관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한 후 연행했습니다.

10월15일 위수령을 발표하며 대학가 학생운동을 궤멸시킨 박정희는 1972년 10월17일에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10월 유신을 선포합니다. 한동안 서슬이 퍼런 박정희의 총칼앞에 숨죽였던 대학생들은 1973년 서울대문리대 시위를 시작으로 유신과의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 1974년 용공조작이었던 민청학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

1974년 전국의 각 대학은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이름으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지만, 중앙정보부는 오히려 민청학련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을 수립한다는 정치공작으로 180여 명에게 사형과 무기징역 등을 선고합니다.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면서 인혁당 사건도 조작하는 등 공안정국으로, 대학가는 물론 사회적으로 유신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1975년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대학가는 어느 학교라고 할 것 없이 유신정권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197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반유신투쟁 열기가 재야와 기독교권, 그리고 언론 쪽의 자유언론수호운동과 맞물리면서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승려들의 분신 소식이 이어졌다. 그런 투쟁까지 가야만 유신정권을 깨트리 수 있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1975년 4월 서울대 농대 김상진 열사의 할복은 그런 분위기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문재인의 ‘운명’에서 발췌)

이처럼 1975년 박정희 영구집권인 유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나자 박정희는 1975년 5월13일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합니다.

▲긴급조치 9호를 1면에 보도한 조선일보와 이날 조선일보의 사설

긴급조치 9호는 ‘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이나 반대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긴급조치 9호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게 했으며, 이 조치를 비방하는 사람 역시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생 전체가 7,000~8,000명 규모일 때 5,000명의 학생이 모인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날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시위를 벌인 결과로 구속됐고, 동시에 학교에서도 제적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재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 받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징역10월의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판사가 소신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문제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소신판결했던 판사는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점입니다. (소신껏 법을 판결했지만, 정치 상황에 대해 비판했던 서기호 판사가 재임용에 탈락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저는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9호를 보도한 그 당시 조선일보를 올렸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된 날의 조선일보 사설을 보시기 바랍니다.

- 72년 유신개헌의 이념은 남북대결의 평화적 극복을 통한 국토통일의 성취에 설정했던 정부의 신념을 다시 한번 명시한 것이다.

- 학생들에 의한 일체의 정치적 집회 또는 시위 정치관여행위 등을 금하고 있다. 이 또한 사회적 안정 없이 국가안보의 기조를 다질 수 없다는 논리에서 정부의 단호한 조치이다.

- 긴급조치의 정신이 지향하고 요구하는 이념적 체득이 얼마만큼 절실하며, 그것이 생활실천을 통해 얼마만큼 참되게 표현되느냐에 오로지 애타게 추구하는 국민총화의 관건은 좌우됨을 우리는 명심코자 하는 것이다.

(긴급조치에 대한 조선일보 사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지키기 위한 긴급조치 9호가 조선일보 가치관에서는 남북대결의 평화적 국토통일을 위한 정부의 올바른 신념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자유를 향한 목소리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불안한 사회의 이유로 금지되어야 마땅했으며, 긴급조치 9호는 국민의 생활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국민총화의 일환이었습니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해 국민을 억압했던 ‘긴급조치 9호’를 찬양했던 조선일보는 이제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장악한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통해 집회와 시위를 막았고, 통신비밀보호법을 통해 도청, 감청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는 오로지 박정희만을 찬양하고, 그의 영구집권을 비판하면 국가를 무너뜨리는 좌익 사범 내지는 북한 간첩으로 둔갑하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보여줬던 억압과 정치탄압이 지금도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유신을 반대하는 학생은 무조건 군대에 보내라 ‘강제징집’

‘석방된 지 얼마 안 돼 입영영장이 나왔다. 신체검사도 안 받은 상태였다. 신체검사 통지서와 입영통지서가 함께 날아왔다. 입영 전날 신체검사를 받고 다음 날 입영하는 강제징집이었다.’ (문재인의 ‘운명’에서 발췌)

‘강제징집’이라는 말은 원래 ‘조기징집’을 비판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1971 교련 반대시위. 1972년 이후 유신 반대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하여 무조건 입영영장을 발부하여 조기징집을 시행했습니다. 말이 일찍 군대에 가는 것이지, 강제적으로 군대에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 작업복을 입은 입영제적생(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이 입영열차에 오르는 모습 출처: 동아일보

박정희 정권에서 제일 먼저 이루어진 ‘강제징집’은 1971년 교련반대시위 주도 지도자급 학생 200여 명을 강제 입영시킨 것이 시초였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 주도자급은 신체검사 등급에 상관없이 전원 현역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정치공작을 벌입니다. 한쪽 눈이 실명한 사람도,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소아마비 장애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특히 만 19세 이하로 현역 입영연령이 되지 않아도 무조건 군대에 보냈습니다.

“시력검사 할 때였다. 어쩌는지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모두 안 보인다고 해 봤다. 그러자 검사관은 씩 웃더니 정밀검사를 하지도 않고 ‘그래도 갑종!’ 하면서 신검용지에 ‘갑종’도장을 꽉 찍었다. 그리곤 준비돼 있던 입영영장을 다시 내줬다.” (문재인의 ‘운명’에서 발췌)

유신반대 시위자는 군대에 입대시켜 아예 학생시위를 근절하겠다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탄압은 전두환이 뒤를 이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버립니다. 일명 ‘녹화사업’입니다.

박정희의 ‘강제 징집’이 그저 학생운동 전력자를 군대에 보내는 것이라면, 전두환의 ‘녹화사업’은 아예 이들을 고문하여 프락치로 활용했습니다.

“중학교 동기가 당시 사단 인사처 고참 병장으로 있었다. 39사단에서 훈련받은 친구들 가운데 그 친구 ‘빽’으로 의무병 등 편한 곳으로 빠진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 친구가 찾아와서 ‘강제징집자 다섯 명은 ‘신원특이자’로서 인사기록카드를 특별히 관리하고 있어서 좋은 곳으로 보내줄 수가 없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과거에는 데모하다 끌려온 학생들을 보안사 같은 곳에 배치해 활용했는데, 요즘은 고생시키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일러줬다.” (문재인 ‘운명’에서 발췌)

박정희는 학생운동자들을 전방부대, 그것도 GP, GOP로 보내거나 특전사와 같이 힘든 곳으로 보내 버려, 아예 학생운동을 근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문재인 이사장의 특전사 시절 출처: SBS 힐링캠프 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그 당시 군대 내에서도 생소한 공수부대에 차출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강제징집’ 때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강제징집된 네 명도 기갑부대나 전방부대 못지않게 힘든 곳으로 배치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철저한 공작을 펼쳤습니다.

특전사에서 가장 힘든 훈련 중의 하나였던 공수훈련을 비롯한 폭파, 침투 등 각종 훈련에서 두각을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장군(당시 여단장)에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제징집’됐지만, 특전사에서 열심히 군 생활을 했기에 ‘특전사 출신 문재인’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1975년에 강제징집돼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젊은이들도 있었습니다.

▲1975년 강제징집되어 의문사를 당한 현승효. 출처: http://blog.ohmynews.com/nonla/112884  

현승효는 박정희의 영구집권 음모였던 유신독재를 막기 위한 운동을 벌이다가 1974년 경북대 의대에서 제적당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1975년 2월 강제징집되어 의무병으로 각종 훈련은 물론이고, 의무병으로 병사들을 애정을 갖고 치료하고 돌봤습니다.

그러던 중 만기 제대를 앞두고 소속부대인 박격포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더니 갑자기 온몸이 청동녹색이 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이처럼 당시 강제징집돼 ‘군의문사’를 당했던 학생들이 도대체 얼마였는지, 아직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조차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지난 2008년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인수위원회를 통해 친일, 군의문사, 삼청교육대, 제주 4·3사건 등의 진실을 조사했던 ‘대한민국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폐지한다고 발표했고, 2010년 12월31일 정식으로 해산시켰습니다>

▲ 문재인 이사장의 특전사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특전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남자들이 관심을 뒀습니다. 그것은 청와대 수석을 지냈던 고위 인사가 과거에 군대를 제대로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국방] - MB정부의 ‘병역면제 명문가’를 아십니까?
[정치] - 박재완 장관처럼 고혈압으로 군대면제 받기.

이명박 전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 여당 대표 등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던 사람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과 맞물려 문재인 대통령이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많은 호감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한 인물의 과거를 통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재자의 영구집권이었던 유신헌법을 반대해 제적과 구속과 강제징집으로 고생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국민을 탄압하고 목숨을 잃게 하고, 선량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딸에게 준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사] - 장물 정수장학회를 알면 박근혜가 보인다.

누구의 과거가 올바르고 정상적인지 상식적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오늘 글을 쓰면서 과연 ‘운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만약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1975년 ‘강제징집’으로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정병주 사령관과 왼쪽에 서 있는 전두환 1공수여단장, 노태우 9공수여단장

폭파병 문재인은 정병주 특전사령으로부터 폭파과정 최우수상을 받았고, 전두환 여단장에게도 표창을 받았습니다.

정병주 사령관은 12·12 신군부 쿠데타 때 끝까지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참 군인의 표상이 되었고, 전두환은 그 쿠데타를 이끌고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장악해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통치했습니다.

군대는 남자로서 당연히 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자신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이 무너졌던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한다면,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임병도  sam03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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