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에 대한 우리의 꿈과 희망 즐거운 학교, 자유로운 일터, 신뢰의 공동체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대구에서 30년 동안 민간공공형도서관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실천으로 마을공동체와 어우러지는 새벗도서관(기호석 관장)은 16일 2차 강의(이득재 교수) 후 현장을 찾았다. 

최초 대안학교(설립자 양희규 선생)가 된 경남 산청군 간디마을학교(중고등), 간디숲속마을과 남명 조식선생 산천재와 천년 고찰 대원사를 탐방했다.

먼저 지리산 간디마을학교는 교육의 모델을 ‘인격 모형’이라고 한다. ‘점수 기계’ 나 돈벌이에 유용한 ‘인적 자원’으로 길러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발성,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는 실사구시의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목표가 있다.

참교육을 실현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아직까지 대안학교는 귀족학교이고 문제아학교인가? 라고 되묻는 현실에는 부정적 사회관점과 폄하로 빗대는 일도 많다. 그러면 과연 학교란 어떤 곳인가? 새벗도서관 청강생은 답사를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됐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인문학 강의 청강 / 사진 = 문해청 기자

2차 강의를 한 이득재 교수는 즐거운 학교, 자유로운 일터, 신뢰의 공동체를 통해 지금의 교실은 권력 분배의 공간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권력은 각종 교칙, 규정, 반장, 부반장 제도, 체벌을 통해 은밀히, 혹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형태가 드러나 있다. 시험으로 우열을 가르고, 기계적인 점수로 당락을 결정하고 인성을 제단 한다고 했다.

이교수는 그렇게 나온 결과로 우위에 속한 사람은 권력을 부여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질서라는 명분 아래 도태된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력사회도 차이와 구별이라는 폭력이 횡행한다. 이런 일이 지속되는 동안 사회계급과 사회계층은 굳어지고, 같은 계층 안에 속한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는 ‘우리주의’가 발발한다. 집단주의와 다르게 사회적 관계자본과 권력 획득에 기반을 두는 ‘우리주의’는 생존논리가 반영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생존의 승리를 위해 남보다 힘을 기르고, 우리 편을 많이 만든다. 승리하지 않으면 곧 죽는다는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한국 사회에 뿌리가 깊고 불행하게도 광범위하게 형성된 현재진행형의 사회현상이다고 했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화합과 협력 및 진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사회공동체가 가능한지 강의를 마무리하며 또 다시 물음을 던졌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간디마을학교 / 사진 = 문해청 기자

먼저 지리산 간디마을학교는 우리나라 1호 대안학교로 1997년 3월 설립되었다. 정부 주도의 입시 교육을 벗어나 학생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 과 “자발성”을 교육철학으로 삼는다.

그러하기에 자유로운 학교 안에서 교사와 학생은 늘 동등한 입장에 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생활한다. 교사도 수업방식, 진도, 내용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학생도 그 수업을 들을지, 다른 것을 할지 선택한다. 물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진다.

처음 간디마을학교에 발을 들인 학생은 선택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점차 두려움과 열등의식을 벗어나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인간상을 갖춰간다.

간디마을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를 새롭게 시작하며 학교와 마을이 어우러지는 꿈을 갖고 함께 시작했다. 중학교 과정의 간디마을학교는 한 학년에 24명 내외 아이들과 10여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간디마을학교는 전원 기숙사(생활관)에서 생활하며 방학이나 주말에는 본집으로 갔다 올 수 있다. 처음 학생은 방을 같이 쓰는 불편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함께 생활하며 배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능력을 갖게 된다. 이후 학교공동체의 생활의 성숙함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밑거름이 된다.

간디마을학교는 교육청의 미인가 대안학교로 중학교 과정이다.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처럼 국어, 영어, 수학 과목중심교육은 없고 자신이 선택한 관심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생님의 멘토로 공부한다.

자신의 앞날을 살며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을 통해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배운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간디학교 초대 장상훈촌장 / 사진 = 문해청 기자

다음은 간디숲속마을 초대 장상훈(53) 촌장과 새벗도서관 탐방단의 질의답변을 싣는다.

우선 간디숲속마을을 소개하면 13년 전에 간디마을학교와 함께 조성된 귀농귀촌인의 마을공동체이다. 초기 몇 가구가 들어오고 이후 조금씩 마을로 들어와서 현재 39여 가정이 생활하고 있다. 귀농귀촌인이 교육생태마을을 지향하는 간디숲속마을에는 공동체를 만들며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 째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해발 250여 미터 산 속의 나무와 자연이 밤엔 편히 쉴 수 있게 한다는 조그만 배려이다. 둘 째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우리 몸에서 나온 것을 더럽게 버려져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고 배설물을 퇴비화해서 거름으로 다시 자연의 흙으로 되돌린다는 작은 노력이다. 셋 째 제초제, 농약들을 사용하지 않고 비누 등 각종 세제는 천연세제를 사용해서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최대한 줄이자는 의지다.

문: 간디마을학교에 보내려면 어떻게 하면 되고 교육비는 어느 정도인가?

답: 학교는 학부모면접과 아이들 면접을 통해서 선발하게 됩다.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입학하는 아이에게 대안교육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한 주장을 얘기하는 것이 유리하다. 학부모님이든 아이이든 스스로의 하고자 하는 열정이 중요하다. 교육비는 매월 80~90만원 정도 이다. 국가 교육청의 교육비 등에 대한 지원이 없이 오직 학부모님의 교육비로 기숙사와 학교운영을 하고 있다. 실례로 대안학교 선생님 월급이 150 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

문: 화장실은 누가 치워주나?

답: 스스로가 치워야 한다. 화장실은 부엽토나 톱밥 혹은 미생물들을 잘 활용하여 퇴비로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으로 오염되지 않게 되돌리는 일이다. 이것을 잘 부식숙성하면 좋은 퇴비로 사용이 가능하다. 농사에 활용되지 않으면 그냥 자연의 흙으로 되돌려 주면 된다. 불편한 점은 있지만 자연인간의 생명존중의 사상으로 조금만 생활하면 충분히 지내기가 괜찮은 곳이다.

문: 집집마다 도구들이 많던데?

답: 산골 혹은 시골에서 살려면 거의 맥가이버가 돼야 한다. 도시처럼 전화하고 돈지불하면 누군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진 않는다. 아주 전문적인 것을 빼면 일상적 수리는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도시에 살며 저 또한 아무런 도구도 사용할 줄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피타고라스원리로 산출하여 집도 스스로 짓고 생활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도 늘어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고 있다.

문: 경제적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답: 처음 마을에 입주한 몇 명이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하다 시작했던 것이 친자연적 방목 유정란 생산이었다. 처음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공동 직거래판매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간디숲속마을 30%는 유정란 등 농업관련 일하고, 30%는 공무원, 교사 등 직장을 하는 분, 나머지 자영업을 하시는 분, 주말부부로 생활하는 분이다.

문: 홈스테이라고 산 아래 있던데 무엇인가?

답: 간디마을학교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홈스테이라는 곳에서 지낸다. 마을에 각자의 집을 지을 때 여유가 있는 분들은 방 한 칸을 더 만들어 학생들이 지내는 홈스테이제도다.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집은 매월 얼마의 경제적 수입이 되니 도움이 되고 학교는 학생들을 사감 같은 역할을 하는 마을주민이 관심과 애정으로 함께해서 서로에게 좋은 성과를 만든다.

문: ‘간디’라는 이름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답: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다. 산하나 너머에 제일 먼저 세워진 간디고등학교가 있다. 설립자는 양희규 선생이다. 짐작하기는 인도 간디 선생의 비폭력적, 평화적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마무리 발언을 했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남명 조식 산청재 / 사진 = 문해청 기자

이어 간디마을학교와 간디숲속마을공동체를 둘러보고 경남 산청군 “행동하는 양심” 남명 조식의 지리산 천왕봉 아래 덕천서원, 산천재를 찾았다. 한 때 이언적과 이림의 천거로 헌릉 참봉 자리를 받았다. 그 후 여러 차례 벼슬자리가 들어왔으나 이를 전부 거절했다.

30세가 되던 해 지리산에 산천재를 지어 학문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데 힘썼고 임진왜란 때 제자의 다수는 영남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남명은 칼 찬 선비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실제로 ‘경의검’을 차고 다녔다. ‘경’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매사에 엄정한 내적 수양을, ‘의’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올곧게 처리할 수 있는 기준을 의미한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남명 조식 산청재조식선생님에 대한 하성흡화가님 강의 / 사진 = 문해청 기자

남명 선생의 ‘경의사상’은 불의와 비타협적 처신하며 타락한 정계의 모순과 사회현실을 적극적 비판하는 토대였다. ‘성성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며 소리가 날 때마다 자신을 성찰하며 경각심을 갖는 자기 수양을 했다. 퇴계 이황이 이론적 심화를 추구하며 성리학이외 다른 학문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남명 조식은 성리학이외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개방적 모습으로 성리학을 민중생활에서 실사구시로 실천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대원사 역사해설 / 사진 = 문해청 기자

새벗도서관 탐방단은 이어 산청군 유평리 천년고찰이라 불리는 대원사로 이동했다. 이 절은 신라 진흥왕 9년 창건했다한다.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일어난 화재로 돌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을 제외하고 전소되었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대원사 석탑 / 사진 = 문해청 기자

잿더미가 된 터에 유일하게 남은 다층석탑은 9층 석탑으로 석재에 철분이 많아 검붉게 보인다. 탑 아래쪽 각 모서리의 석인상 4명이 탑을 머리로 이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탑의 석인상은 사천왕 형상인데, 대원사 9층 석탑의 석인상은 무덤 앞에 세우는 석인상과 비슷하게 생겨 무슨 의도로 석공이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잿더미가 남은 터만 남은 이곳에 1955년 비로소 ‘지리산 호랑이’라 불리던 만허당 법일 스님이 비구니 선원을 개설했다. 지금에 이르러 50여명에 이르는 비구니들이 참선하는 청정도량이 되었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산사를 찾아 올라오다 보면 대원사계곡은 고산식물과 큰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다. 사회에서 보기 힘든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영원히 간직해야 할 좋은 자연환경이다.

새벗도서관 인문학강의 및 역사기행 그들이 걸어가는 또 다른 길 대원사 가는 길에 있는 계곡 / 사진 = 문해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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